동료의 지지와 정체성
우리는 왜 일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내 일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면 이토록 많은 이들이 ‘퇴사’를 고민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 옛날 장인은 일이 고되고 보수가 적더라도 자신이 만든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자기 작품을 쓰는 고객을 직접 만났습니다. 옹기장이는 자신이 만든 항아리에 김치를 담가 겨우내 주린 아이들의 배를 채워주는 모습을 봅니다. 대장장이는 자기의 낫으로 풀을 베고 농사짓는 장면을 봅니다. 그러나 지금의 직장인들은 내 역할이 무엇인지 느낄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기획자라는 타이틀이 그럴 싸 하지만 내 보고서가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밤늦게까지 야근의 등대를 밝히고 보고서를 찍어내는 수십 명의 기획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쓰는 보고서는 그냥 단순히 참고용 정도로만 쓰이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날 내가 없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없어졌다는 사실 조차 모를 것 같습니다.
모든 직원이 자신의 역할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분명히 안다면 빛나는 조직이 될 겁니다. 그러므로 리더의 역할은 계속해서 너의 일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영학에는 동기 부여와 관련된 여러 이론이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당신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방법이 최고의 동기 부여라고 생각합니다.
"OO 씨가 오늘 쓴 보고서로 경영진이 새로운 판매 채널을 열기로 했어! 대단해!"
"OOO대리가 고객 사와 잘 협의를 해서 우리 회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어."
"OOO과장이 뽑은 고객 연령별 선호도 통계가 시장 흐름을 알게 해 주는데?"
일의 의미는 자신의 희생을 이해하기 위한 틀을 제시해 줍니다. 내 일이 의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문제에 부딪혀도 어떻게든 해결하려 애씁니다. 시간도 많이 들고 고생도 되겠죠. 그럼에도 우리는 애쓸 겁니다.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우리 현실은 이렇게 황홀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의미 없는 고객의 클레임을 반복해서 들어야 합니다. 어제도 읽히지 않는 보고서 20장을 썼습니다. 내일도 떨어지는 매출에 혼찌검이 나고, 늘 그렇듯 뻔한 대책안을 보고하겠죠. 나는 과연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 걸까요?
내가 어떤 도움을 주는지, 사회와 조직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이건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가 사는 이유'를 찾는 존재입니다. 왜 살아야 하지? 여기에 답을 얻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 번 확인해도 금방 까먹기 때문에 계속해서 존재의 이유를 깨닫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정체성'입니다. 내가 누구고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
조직 내 정체성과 관련된 연구 결과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애덤 그랜트 교수는 장학금 펀드를 모금하는 상담사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보통 콜센터는 이직률이 높고 매우 어려운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들의 문의에 상담을 하는 일반 콜센터도 어려운데 돈을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펜실베이니아 대학 장학금 기부 센터도 업무 만족도가 엄청 낮았습니다. 그랜트 교수는 이들에게 일의 가치를 알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습니다.
연구진은 실험 대상을 총 3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A그룹은 이전에 장학금을 받은 경험이 있는 학생들과 5분간 만나서 대화를 하도록 했습니다. B그룹은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쓴 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C그룹은 비교 집단으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하던 대로 일했습니다.
실험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실제로 학생을 만난 A그룹은 모금 실적이 171% 상승했습니다. 편지를 받은 B그룹은 주당 통화량이 늘었습니다. 아마 좀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실제 모금액은 크게 늘지 않았습니다. 편지를 받는 정도로는 단기 동기 부여는 이루어지지만 동기가 긴 시간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C그룹은 실험 전과 후의 성과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혜택을 본 사람을 실제로 만나면 내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깨닫게 됩니다. 실험에서는 불과 5분 만났을 뿐이었는데도, 상담사들의 머릿속에 일의 가치를 확실히 심어 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정체성을 확인하려 합니다. 확인하고 실망하면서도 꼭 그걸 확인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인가 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죠. 공부할 때는 스승과 학습 동료가 그 역할을 하고, 회사에서는 동료가 그 역할을 하고, 때로는 가족과 친구가 그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내가 왜 필요한 존재인지'를 확인할 때마다 기뻐하며 다시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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