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지름길을 만들어주는 피드백
단테의 <신곡>이 유명한 이유는 뛰어난 작품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신곡은 당대의 사회를 풍자하면서 한 편으로는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작된 서양문명의 유산을 재평가하는 작품입니다. 게다가 신곡에서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된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의미를 지닌 책입니다. 하지만 신곡이라는 어려운 고전을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 몇 장면만 간단히 살펴볼까요?
신곡의 내용은 주인공이자 저자인 단테가 지옥과 연옥을 거쳐서 마침내 천국까지 여행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어찌 보면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게 느껴지는데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는 지옥과 천국 여행이야말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여행이라고 평합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네요. 그렇게 듣고 보니 또 대단한 작품인가 싶어 집니다.
처음에는 단테 혼자서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산길을 오르다 세 마리의 짐승에게 방해를 받아 그냥 되돌아오고 맙니다. 먼저 표범과 사자가 길을 막다가 마지막에는 암늑대 한 마리가 나타납니다. 단테는 결국 늑대가 무서워 더 이상 산에 오르기를 단념하게 됩니다. 이 3마리의 동물은 음란, 오만, 탐욕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많은 학자들은 단테가 '길잡이'의 필요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인생이라는 힘든 여행에는 많은 고난을 겪기 마련인데 확실한 길잡이가 없으면 홀로 걸어가기 어렵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단테는 로마 최고의 시인으로 아이네이스라는 서사시를 쓴 베르길리우스의 영혼을 만납니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가 문학적으로 제일 존경했던 롤모델이었습니다. 단테는 길잡이와의 만남을 계기로 다시 여행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베르길리우스는 여행 내내 길잡이로서 조언을 하고, 주요 장면의 의미를 해석해 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함께 공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 중 대표적인 학자로 비고츠키가 있습니다. 비고츠키는 19세기 말 러시아에서 태어나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을 보여준 심리학자입니다. 비고츠키는 스승과 동료와 합께 공부하고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비고츠키의 이론 중에서 후대의 학자들이 크게 관심을 기울인 개념이 바로 '근접발달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입니다.
근접발달영역은 혼자서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비고츠키는 지금의 수준에서 당장 배울 수 있는 범위에 상한선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면, 수영을 막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바로 접영을 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개별 동작들을 익히고 나면 쉬운 영법에서 시작해 점점 어려운 영법을 배워갑니다. 근접발달영역은 한 번에 배울 수 있는 덩어리에 해당합니다.
비고츠키는 하나를 가르쳤는데 갑자기 열을 알 수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일 아이가 가르치지 않은 지식까지 저절로 깨우치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의 뇌는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와 같습니다. 컴퓨터가 입력하지 않은 정보까지 처리할 리는 없잖아요? 직관이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 같아도 이미 입력되어 있는 정보 간의 기발한 연결 방법을 찾을 뿐입니다.
그럼 모두가 근접발달영역 안에서 비슷하게 성장해야만 하는 걸까요? 보다 빨리 고수의 수준으로 성장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더 빨리 배울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는 비고츠키의 근접발달영역에서 나아가 <스캐폴딩>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비록 한계가 있다 해도 개별 영역 내에서 최대한 성장한다면 그 단계를 여러 번 나누어 공부하는 사람보다 빨리 마스터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최대한 높게 닿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 스캐폴딩입니다. 스캐폴딩은 우리말로 ‘비계’라고도 합니다. 비계는 건설 현장 용어로써 '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을 뜻합니다. 학습은 개인이 해 나가는 과정이지만 여기에 코치가 살짝 비계를 놓듯이 학습에 도움을 주면 큰 도움이 됩니다.
스캐폴딩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3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로는 피드백이 중요합니다. 독학으로 공부할 때 생길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피드백이 없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현 위치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더 많이 겪습니다. 둘째로는 배우는 사람에게 딱 맞는 맞춤형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학교에는 반별로 선생님이 있지만 학생들의 성장 속도는 제각각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평균적이 아이에 맞춰서 가르치고 아이들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교육학자 벤저민 블룸의 실험에서 여러 명의 튜터를 투입하여 학생 개인 맞춤형 교육을 했더니 반 전체가 우등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셋째로 가르치는 사람은 적절한 때 도움을 중단하고 학습자가 혼자 성장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스캐폴딩의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피드백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스포츠 레슨을 받을 때를 한 번 살펴보시죠. 어떤 운동이든 코치는 기본 동작을 가르치고 지속적인 반복 연습을 시킵니다. 이때 중요한 포인트는 어느 정도 동작에 익숙해져야만 새로운 동작을 알려준다는 점입니다. 익숙해지기 전에는 절대 진도를 나가지 않습니다. 잘못된 동작을 바로잡지 않고 훈련을 하다 보면 바꾸기 어려운 나쁜 습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코치는 하나의 스킬이 완성됐는지 진단하여 피드백을 주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합니다.
어느 정도 숙달 단계에 들어선 사람도 비싼 돈을 들여 계속 코칭을 받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최상급 기량의 선수들도 코치를 기용하여 피드백을 받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동작이 완성되었는지 진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실수도 많을뿐더러 심리적으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설사 어딘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어도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정확한 피드백을 줄 코치과 함께 훈련해야 합니다.
코치는 우리의 현 수준을 진단해주고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에 도전하도록 합니다. 너무 쉬운 과제를 제시하거나 과도한 도움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어려워 학습자가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정도가 적당합니다. 따라서 학습자의 현재 능력 진단이 정확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관계의 무게'를 버거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울 때도 가급적 관계를 피하고 독학으로 공부하려는 성향을 보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는 경우라면 독학으로 충분합니다만 고수 수준의 통찰력을 얻고 싶다면 한계에 부딪히고 맙니다. 내가 지금 어느 수준인지, 어떤 점이 강점이고 또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알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능력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이 마음이 우리를 실제보다 조금 덧칠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보다 빨리 업의 고수가 되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통해 배우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