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제너레이션 팀의 문제점
어느 순간 팀에서 점점 회식이 사라지고 있었다. 요즘은 어느 세대, 팀원 누구라도 회식 같은 팀워크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팀원이 회식을 원하지 않으니 모일 기회가 자꾸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최근에는 물가 상승으로 회식비도 꽤 부담되는 터라, 굳이 회식이 자주 있어야 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뿔싸, 팀장이 팀워크를 돌보지 않던 차에 팀원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회식이 없다고 저녁 자리 나 모임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팀장이 주도하는 공식 모임이 줄어든 자리를 삼삼오오 모이는 소모임이 대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것도 트렌드이니 굳이 팀장이 나서서 통제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언제부터 각 세대가 끼리끼리 모이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시니어는 정기적으로 점심이나 회식을 하는 그룹 모임이 있다. 과거 일사불란한 업무 처리 스타일을 보여 주었던 것처럼, 모임의 회장이 있고 총무를 정한다. 모임에 빠지는 것을 터부시 하기 때문에 참석률이 매우 높다는 특징이 있다.
주니어는 시니어처럼 계층 전체가 의도적으로 모임을 하지 않는다. 취향이나 취미에 따라 모이는 경우가 많다. 맛집과 술을 찾아다니는 모임, 함께 영화를 보는 모임, 비슷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끼리의 모임 등. 어쨌든 이들도 몇 개의 모임으로 흩어지지만 비슷한 나이끼리 뭉치고 소통하고 있다.
고민스러운 점은 이들 모임이 각각 해당 세대의 의견을 형성하고 강화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친목을 위한 모임이지만 종종 조직의 정책에 대한 의견이 나온다. 리더에 대한 견해도 등장한다. 그리고 그룹별로 이 의견이 강화된다.
‘최근 우리 시니어들에게 회사가 너무 소홀한 것 같다. 통일된 의견을 마련해서 관리자와 회사에 우리 의견을 전달하자.’
한 시니어 모임에서 나온 얘기라고 한다. 팀장으로서는 각 계층이 각자의 목소리를 높일수록 조화로운 팀워크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또한 각자가 팀 운영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낸다면 팀장이 의도한 방향으로 팀을 이끌어가기 힘들다.
선배와 후배 사이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이 아닐까?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모습. 리더는 이런 팀의 모습을 꿈꾼다. 현실에서는 어떨까? 시니어는 자꾸 가르치려 하지만 주니어는 배울 생각이 없다. 선배들의 방식은 이미 낡았고 이제는 새로운 방식, 새로운 지식이 대세라고 여긴다. 안타깝게도 서로 가르치려 하는 성향은 배움보다는 갈등을 일으킨다.
서로 방향성이 다르고 갈등이 심화하니 성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언제부터인가 성과에만 신경을 쓰기보다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시키기 위한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어떻게든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협업하는 과정에서 곳곳에 불협화음이 들린다.
도대체 멀티 제너레이션은 왜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고, 협력하기 쉽지 않을까?
해외의 조직관리 아티클에는 <다양성>과 <포용> 관련 주제가 크게 늘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를 포용하려 애써야 조직이 성장하고 성과가 커진다. 이와 관련한 연구 결과와 성공사례가 늘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와 같은 전문 매거진에서 다양성, 포용, 존중과 관련한 콘텐츠를 찾기 어렵지 않다.
해외 사례의 다양성 존중은 인종이나 문화에 관련된 내용이 많다. 인종 구성이 다양하고 그에 따른 다툼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이고 기업 조직도 인종이나 문화에서 차이가 없으므로 이런 갈등은 크지 않다.
한국의 조직에서 불거지는 문제 중 <세대 갈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영국 킹스칼리지 연구소와 28개국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세대 갈등이 가장 높은 나라로 꼽혔다.
우리는 단기간에 굴곡진 여러 역사적 사건을 경험했다. 386세대는 민주화의 한가운데에 있었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빠른 경제 성장의 성과를 맛보았다. 밀레니얼 세대는 IMF 시대에 부모가 실직하고 직장을 잃는 것을 목격했다. 이렇게 각 세대가 경험한 사건이 다르고 그에 따라 각각의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다.
아울러 단기간에 압축적 성장을 이뤄냈다. 세대별로 경제적인 상황과 피부로 느낀 성장의 속도에 차이가 난다. 베이비붐 세대는 부동산 투자를 통해 자산을 형성했지만, 지금의 세대는 저성장 속에서 부를 늘릴 기회가 제한적이다. 이들이 회사와 팀에 기대하는 바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사회, 경제가 크게 변화될 때마다 새로운 사회 질서가 성립되었다. 어떤 시대를 살았느냐에 따라 주도적인 사회 규범과 질서를 다르게 경험하며 자랐다는 뜻이다. 성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시대가 있었다. 조직이 성공하면 곧 그게 개인의 성공이었다. 반대로 조직이 성공과 개인은 별개라고 느끼는 세대도 있다.
커다란 이슈 하나는 시니어의 역량을 쓸모없이 생각하는 추세이다. 장기간에 걸쳐 산업화를 진행한 유럽은 각 세대가 비슷한 삶을 영위한다. 외국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버지는 회사원으로 30년간 직장 생활을 하고 은퇴하셨는데 자기 미래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곤 했다. 앞선 세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깊다.
반면, 한국은 반세기 동안 급격한 사회 변화를 만들어냈다. 과거 세대의 방식은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고 거부한다. 그러다 보니 시니어의 경험과 지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로 노인은 청년에게 부담을 안기는 불필요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시니어에게 투영된다. 젊음이 곧 경쟁력이라고 여겨진다.
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 소통하며 협력을 이뤄내야 한다. 그 중심에 팀장인 당신이 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소그룹이 모이는 상황, 어쩔 수 없는 현상일까, 아니면 통제하려 노력해야 할까? 사람은 본래 배타적이기보다는 공감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공감이 사회적 연결로 이어지고 이 관계를 기반으로 서로 협력한다. 인류는 사회적 연결을 통해 다른 종에 비해 생존과 번영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지켜야 할 내집단이 생기면 인간은 공격적으로 변한다. 상대적으로 반대파에게 강경해진다. 연령별 소그룹이 단순히 친목을 다지고 서로를 위로하는 정도에서 끝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는 자기들끼리 의견을 공유하고 그 의견을 강화하는 때가 많다. 그러면 다른 그룹을 배척하게 된다.
“이 부장님, 프로젝트에서 강력하게 의견을 내세요. 애송이들이 뭘 안다고 트렌드 운운하며 자기주장만 내세우는지 모르겠어요. 옛날 같으면 말도 못 꺼낼 상황이었는데, 회사가 어쩌다 이렇게 위아래도 없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이 부장 그 꼰대는 왜 프로젝트에 밀려 들어와서 옛날얘기를 꺼내는 거야. 그냥 그 양반 없는 셈 치고 무시해 버려. 시간도 없는데 쓸데없는 소리 들을 필요 없어.”
팀장이 이러한 반목을 중재하고 조율하기도 쉽지 않다. 팀원들은 팀장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위치에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팀장 또한 어느 세대인가에 속한다. 그리고 그 세대의 경험과 가치관을 공유한다. 과연 여러 세대의 입장을 모두 포용한다고 할 수 있을까.
팀장이 세대론에 가장 심하게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팀장들끼리 모여 MZ세대의 세태를 뒷담화 삼아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시니어를 꼰대라 부르며 적당한 때에 스스로 자리를 비워주기를 바라지 않았는가? 나와 비슷한 나이의 팀원은 자신을 스스로 혁신할 생각이 없다고 비하하면서 나는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여기지는 않는가?
팀 내부의 갈등 모두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갈등을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어느 정도의 갈등은 계속 생겨나고 갈등을 해소하면서 팀이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세대 갈등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근원을 가지고 있어 더 파괴적이다. 그 유래가 깊고 파괴력이 크다는 점에서 팀장은 세대 갈등을 더 유심히 관찰하고 대응 방법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