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제너레이션 팀을 성과창출 공식
사람들은 기업의 수명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한다. 미국 S&P의 조사에 따르면 S&P 지수에 포함된 500대 기업의 2015년 평균 수명은 25년 정도였다. 2025년에는 18년 정도로 더 짧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어떤 직장이든 안전한 곳은 없다는 위기감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대체 기업은 어떤 이유로 쇠락의 길을 걷고 생을 마감하게 되는 걸까?
기업은 초기 개성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내세우며 화려하게 등장하게 마련이다. 성장기에는 상품과 서비스를 수준을 높이는 혁신에 성공하면 빠르게 규모를 늘릴 수 있다. 그렇게 성장기를 거치고 나면 어느 조직이나 정체기를 맞는다. 초기의 성공 경험이 시장에서의 위치를 지키고자 하는 고집과 맞물린다. 과거에 성공했던 전략에 집착하며 새로운 도전을 꺼린다.
성장 속도가 줄어들고 수익 폭이 줄어들면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을 쓴다. 비용을 가능한 줄이고 세세한 업무까지 통제를 강화한다. 구성원들은 관료적인 문화에 휩쓸린다. 규정이 점점 늘어나고 제한 사항이 많아지면서 조직은 유연성을 잃는다. 구성원은 그런 조직에 실망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보다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이 크게 변화하거나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면 해당 기업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블라인드 앱에서 우리 조직에 대한 평을 한 번 살펴보자. “저마다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만 한다.”, “적당히 워라밸을 즐기기 좋은 회사다.”, “혁신과 성장을 바라지 말자. 적당히 일하고 적당한 월급 받으면 그만이다.” 이런 평이 자주 보인다면 끝이 머지않았을지 모른다.
기술 발전이 이러한 조직의 수명 주기를 더욱 단축하고 있다. 나의 첫 직장은 증권회사였다. 당시에는 증권사마다 꽤 많은 지점을 가지고 있었고, 지점에는 영업사원이 상담하는 창구가 즐비했다. 내가 증권사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비해 지금은 지점 수가 30%의 규모로 줄어들었다.
주식 투자를 하는 고객들은 증권사 창구를 찾지 않는다.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에서 모든 업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투자 정보를 얻는다. 그 편이 증권사보다 훨씬 빠르고 쉽고 편하다. 모바일 중심의 투자 환경 변화는 증권업의 경쟁 지형을 크게 변화시켰다.
팀이 성과를 만들어내는 방법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높은 성장률을 보여주는 혁신기업이 일하는 방식을 보자.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파일롯 버전의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본다. 샘플링한 가망고객 군을 대상으로 서비스의 성공 가능성을 실험한다. 실험은 드물게 성공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실패로 끝난다.
중요한 점은 이 실패를 그냥 폐기하지 않고 새로운 서비스 개발의 아이디어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나의 서비스의 실패를 전혀 다른 서비스로 론칭시키는 과정을 피벗이라고 부른다. 피벗은 농구에서 한 발을 떼지 않은 상태로 회전하여 방향을 바꾸는 기술을 뜻한다.
놀라운 성과를 내는 혁신기업으로 자주 꼽는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는 이렇게 ‘피벗’을 통해 수익을 내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는 당연히 다양한 인재가 자율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실험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관료제 시스템하에서 하나하나 통제받으며 일을 해서는 이런 피벗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생존에 성공해 지속 가능성을 획득한 조직은 다양한 인재를 모으고 적절히 활용할 줄 안다.
팀은 더 다양한 나이의 구성원으로 채워질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팀 구성은 다채로워질 수밖에 없다. 시니어가 늘어나고 Gen-Z와 같은 신세대가 일터에 들어오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여기에 여성, 외국인, AI와 같은 다양성이 팀에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AI가 얼마나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실무에 AI가 투입되면서 단순한 인간의 자리를 빼앗기보다는 인간과 AI가 어떻게 상호 보완할 수 있느냐로 논의가 확장되었다. 미래에 AI는 인간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도구이자 마치 한 사람의 동료처럼 일하게 될 것이다.
구성원의 다양성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갑론을박해 봐야 이 추세를 바꿀 수 없다. 흐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어떻게 통제해서 탁월한 팀을 만들어낼 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당연히 스티브 잡스가 처음 스마트폰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일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스마트폰의 개념을 처음 제안한 것은 애플의 개발팀 직원들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짐작하지 못했고 장시간 개발을 반대했다. 개발팀은 아이디어를 점진적으로 개선하며 스티브 잡스를 설득해 나갔다. 애플의 개발팀 직원들 덕택에 세상을 바꾼 도구가 등장했다. 한 사람이 아닌 팀의 성과였다.
수많은 사람과 함께 일했어도 ‘참으로 창의적이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은 드물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역량을 가진 평범한 직장인이다. 간혹 새롭게 일하는 방법을 만들어내고 탁월한 성과를 내는 팀이 있다. 그 성과를 세세히 들여다보면 팀원 모두가 합심한 결과다. 즉,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개인이 아닌 집단의 산출물이다.
한때 '1명의 핵심 인재가 1,000명을 먹여 살린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핵심 인재의 높은 가치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러한 생각이 퍼져나가면서 창의적 개인의 기대감을 높였다. 특별히 창의적인 사람은 따로 있다는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테레사 아마빌 교수는 기업 구성원들이 어떻게 창의를 발현하는가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 소수의 창의적인 인재가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팀원들이 상호 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창의성이 발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만, 창의성이 발휘되려면 기존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정보를 다르게 연결할 수 있는 다양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창조성이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존에 서로 연결되지 않았던 정보와 아이디어를 연결하는 데서 나온다. 구성원의 다양성은 더 다양한 정보의 연결 가능성을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시니어 팀원은 풍부한 경험을 가졌다. 문제는 이 경험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묻어있다는 점이다. 비슷한 아이디어를 시도해 본 적이 있지만 실패했다. 이런 걱정을 자주 꺼내 놓는다. 이것을 단순히 부정적인 의견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면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시니어 팀원은 실패를 통한 교훈 데이터를 가진 셈이다. 이전에 실패했던 교훈을 활용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주니어 팀원은 조직의 관행에서 자유롭다. 기존의 구성원이 ‘당연히 안 될 것’이라고 버린 아이디어에서 황금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또한 신기술에 밝다. 새로운 기술에서 업무 개선 기회를 찾아낼 수 있다.
중간 세대는 아이디어 흐름의 다리가 되어 준다. 스탠퍼드 대학의 알렉스 펜틀런드 교수는 구성원 간의 아이디어가 원활히 흐를수록 창의적인 해결안이 나온다고 했다. 이들이 소통과 아이디어 교환의 중심축으로서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신제품 개발, 미래 트렌드 분석, 증권 시장과 같은 금융 시장 예측, 신기술 연구는 복잡성과 비정형성이 큰 업무이다. 팀 내부에 이런 업무가 늘고 있을까, 줄어들고 있을까? 대부분의 조직에서 비정형성이 큰 업무 비중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불확실성이 높은 업무는 집단 지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 사람이 해결하기 어려운 이들 과제는 여러 사람의 머리를 모을수록 효과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대중의 지혜(Wisdom of Crowds)라고 일컫는다.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방송을 보자. 몇몇 전문가들이 나와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예측이 틀리는 때가 많다. 반면 여론 조사와 같은 집단 지성은 꽤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한다.
개인이 이뤄낼 수 없는 탁월한 성과를 올리기 위해 팀이라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팀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업무 성과를 단순히 덧셈한 이상의 결과를 내놓으려면 다양성이 중요하다. 미래에 팀이 직면하게 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팀원의 장점을 모은 다양성을 포용한 팀이라야 한다.
“부장님은 항상 우리를 가르치려 들어요. 이미 낡은 방식인데 뭘 배우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멀티 제너레이션 팀으로 일하다 보면 가르치려는 선배와 굳이 그에게서 배우려 하지 않는 후배 간의 마찰을 자주 보게 된다. <인생의 재발견>의 바버라 해거티에 따르면 인류에게 중년은 다음 세대를 키우는 멘토의 시기였다고 한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후배를 육성하고 싶은 본능이 있는 셈이다.
나 또한 주니어 시절에는 시니어 선배들의 조언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일부는 들으나 마나 한 뻔한 이야기 같았다. 어떤 것들은 보수적인 관점이어서 혁신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관점이 바뀌게 된 것은 어느 정도 직장 생활을 하고 난 다음이었다. 한동안 ‘논어’, ‘맹자’, ‘손자병법’ 등의 고전을 재해석한 책들을 재밌게 읽던 때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시니어 선배님들의 조언이 <작은 규모의 고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선배들의 이야기는 잘 메모해 놓으면 일을 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 것들이 많았다. 문제는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주니어들이 시니어 팀원의 조언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표현과 전달 방식이 세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팀장이 이것을 정리해서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전달하도록 돕는다면 팀 내에서 상호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 다양한 연령과 관점을 가진 팀원이 모였다는 건, 배움의 기회도 더 다양하다는 뜻이다.
지식 경영의 대가,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는 <조직 내 지식순환> 이론을 제안했다. 우리가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지식의 상당수는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이다. 좋은 글을 쓰는 기술은 말로 다 전달할 수 없다. 실제 글을 써보고 피드백을 거치면서 실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팀원 상호 간에는 서로 다른 암묵적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들은 암묵지이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이 노하우가 서로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이러한 노하우를 많이 공유하고 여기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해 발전시킨 조직일수록 뛰어난 역량을 가진다.
선배에게는 경험에서 온 노하우가 있고, 후배에게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얻어낸 실험 결과가 있다. 멀티 제너레이션 팀은 지식 순환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좋은 토대를 가졌다. 다만 세대 간의 마음의 강이 이 흐름을 막고 있을 뿐이다.
모든 세대가 배움에 장에 함께 참여하기에는 장벽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시니어가 조언을 하는 방법과 화법이 세련되지 않다. 주니어는 신기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친절하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팀 내에서 지식이 더 유연하게 흘러갈 방법을 개발한다면 멀티 제네레이션 팀은 다채로운 배움의 터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