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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레 Apr 07. 2016

임신기를 보낸다는 것

몸안에 뛰는 두 개의 심장


나의 몸 안에

두 개의 심장이 뛴다


하나는 나의 심장

그리고 하나는 새롭게 태어난

어느 존재의 심장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생명이

나의 자궁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낯선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로 본 작은 형체는

심장을 생성하여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


내가 임신기를 보내기 시작하자마자 즐겨 마시던 맥주도 가끔 피워보던 담배도 단번에 끊게 되었다. 좋아하던 커피도 입에 대기 조심스러워졌다. 일순간에 내가 먹는 것들을 선택적으로 더 이상 즐겨 먹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뱃속의 어느 존재를 위한 배려였다.


달리는 일도 멈추게 되었다. 후다닥 곧잘 뛰어다니던 내가 코 앞에서 버스를 놓치게 되더라도 다음 버스를 오래 기다리는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것 또한 뱃속의 어느 존재를 위한 배려였다. 아주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보건소에서 임산부 등록을 하러 갔는데 새삼스레 내가 임산부라는 호칭을 얻게 된 것이 겁이 났다. 받아 온 임산부 명찰이 낯설고 무서웠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과정이었다.


임신 출산에 대한 지식이 완전히 전무했던 나는 공부가 필요했다. 인터넷으로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찾아보고 계속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어 나갔다.


기존에 내가 하던 일은 멈추어졌다.

 이상 나만을 위한 시간이 아닌 어느 존재를 위한 시간- 그리고 나만을 위한 몸짓이 아닌 어느 존재를 위해 나의 몸을 쓰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자연스러웠고 천천히 진행되었다.

마치 겁이 난 나를 안심시키듯


아기와 내가 자연스럽게

한 몸 안에서 어우러질 수 있게


아기와 내가

천천히 서로의 역할을 준비할 수 있게


인간이 아기를 잉태하는 40주의 시간

그 시간 동안_


나는 내 몸의 또 다른 심장을 위해

해가지고 달이 뜨고 계절이 변하듯

스르르르

변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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