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쓰렴
일상은 다시 조심스럽게 흘러갔다.
나도, 남자 친구도, 부모님도 가족들도 조금씩 아기의 존재를 받아들였고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찾아갔다.
나는 임산부들은 모두 배가 볼록한 채로 걸어 다니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꽤 상당의 기간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다니면 길거리의 사람들은 내가 임산부인 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외적으로 별로 티가 나지 않았다. 내 몸도 가볍게 느껴져서 여기저기 평소처럼 돌아다니거나, 용돈을 벌기 위해 고용주 몰래 움직임이 적은 소일거리들을 하거나 했다. 임산부는 그저 누워서 늘어지게 자거나 아니면 푹 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매일 부지런히 운동을 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직접 임산부가 되어 보고 나서야 알았다.
마지막 달에 다다라서야, 내가 생각했던 임산부의 모습을 거울에서 비춰볼 수 있었다.
아기의 태명은 '온누리'로 지었다.
남자 친구에게 태명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자마자 그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나온 단어였다.
어렸을 적 소원이"온누리에 행복을-"이었다라나.
내색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아빠가 되어 버린 그도 나만큼이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태담을 하는 것도 어색해했다. 이제와 이해하건대, 여성은 직접 온몸으로 아이를 받기 때문에, 아이를 매 순간 느끼며 천천히 엄마가 되어갈 수 있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천천히 이루어지는 변화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출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주로 나는 지역 카페에서 [드림] 해주는 아기 용품들을 조금씩 받아 모아두었다. 욕조와 옷 양말 모자, 조그만 것이라도 나에겐 매우 귀한 것이었다. 드림을 받으러 가면서 항상 주방을 뒤적이며 무언가를 답례로 챙겨갔다. 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나눠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천을 끊어다가 씻고 빨고 삶아서 스탠드를 켜 놓고 직접 한 올 한 올, 바느질을 하며 천기저귀를 준비하는 시간도 참 좋았다. 바느질에 흥미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너무 재밌는 게 또 재미있었다. 마치 우연히 만났는데 잘 맞는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임신기간 동안, 며칠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애경을 읽고 기도와 명상을 했다.
두려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아직 머물러 있다.
엄청난 피할 수 없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온누리는 내가 조금의 입덧도 하지 않게 하고, 몸이 붓지도 않게 하고, 살이 트지도 않게 해 주며 엄마가 힘들지 않도록, 조용히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는 착한 아기다.
마음의 두려움도 기꺼이 받아들이리.
그리고 사랑을 내어주리.
오늘도 온누리를 품고
감사하게 하루를 보내겠습니다.
임산부로 처음 해보는 것들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배
그리고 조금씩 불편해지는 몸
네가 살아갈 세상
너의 우주
아가야
엄마는 괜찮아
내 몸을 쓰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