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담글 때마다 눈물이 나네.
몇 해전 겨울이 오기 전 어느 날, 집에 놀러 오신 친정엄마가 김장준비를 하는데 왠지 다른 날과 다른 느낌이 드는 날이었다. 이상하게 자세도 구부정한 것 같았고 어딘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엄마 이번엔 내가 할게. 그냥 말로만 알려주면 내가 한번 해볼게” 말해도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요지부동의 자세로 “괜찮아, 나 살아 있는 동안엔 내가 해 주는 김치 먹어. 엄마가 있는데 왜 네가 해?”라고 반문했을 때 나는 눈치챘어야 했었다. 엄마의 건강이 심상치 않았음을... 그래서 앞으론 엄마가 해마다 담가주던 김치를 앞으론 먹지 못 할 수 도 있다는 것을 그때 그 순간엔 미처 알지 못했다. 그저 이상하게 그 한순간은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을 한 컷처럼 엄마가 부엌 앞에 앉아서 하는 칼질하는 엄마의 그 모습이 나름 이상한 신호이자 사이렌이라는 걸.. 그때는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김치가 이렇게 슬픈 음식이었던가?
기미상궁처럼 마지막에 간을 오랫동안 봤던 덕분에 긴 수련 기간이 아니었어도 한 3년차쯤 연차가 되고 보니 엄마가 만들어준 김치랑 얼추 맛이 비슷해져 가는 행운을 느끼게도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김치를 담그는 일은 내게는 하나의 놀이가 된 느낌이다. 추억을 맛을 찾고 순간마다의 맛의 기억을 찾아 헤매게 되는 어떤 또 다른 행복감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김장철만 되면 평생을 자식들 중에서도 엄마의 김치를 가장 사랑했던 나는 엄마 생각에 그렇게 매 순간을 엄마만을 추억하는 울보가 되어 김장을 한다. 그래서 내 오래된 친구들은 정말 마트에서 놓인 김치를 사다가 먹을 것 같은 내가 그렇게 오래된 구식 방법으로 나의 가족들에게 그렇게 만들어준다는 게 낯설기도 하고 상상이 안 간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한 친구로서 걱정되는 마음에 재료준비랑 손이 많이 가는 김치를 담가먹는 일이 진심 귀찮지 않냐고 되물어보기도 하고 정말 보기와 다르다고 말을 건네며 같이 깔깔대고 웃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생각하고 음식을 배운 건 아니었다. 친구들 말대로 힘들면 마트 가서 잘 만들어진 김치를 사다 먹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 되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김치를 담가 먹다 보니 그때마다 엄마와의 추억이 더 오버랩되고 그때마다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듯 기억나는 기억과 추억 때문에 이젠 즐거운 마음으로 김치를 담근다.
엄마와의 그 수많은 추억 중에 무엇보다 음식과 나눈 교감과 기억이 이렇게 내 뇌리 속에 많이 자리 잡고 있는 줄은 예전의 나도 미처 몰랐을것이다. 김치가 주는 어떤 절대미각의 기준이 아니라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맛의 영역에서의 냉정함은 결국 궁한 사람이 찾아 나서야 하는 절실함이었던거 같다. 당연히 처음부터 잘 만드는 사람이 되기도 어렵고 그 맛이 나처럼 타인이 좋아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그 시작점에서는 당연히 연습생 시절을 거쳐야 하는 당연한 이유를 설명했고 그렇기에 배추 1망을 사서 칼로 쪼개고 나눠서 절이는 방법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김치 장인이 내게 말했고 젓갈 넣는 법, 김치 양념하는 법까지 친절하게 가르쳐주신 덕분에 이제는 크게 어려움 겪지 않고도 김치를 담글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김장철이 되어 김장 준비만하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엔 내가 만들어준 김치를 먹으라고 말하셨던 친정엄마 생각에 칼질을 하다가도 울고, 배추를 절이다가도 울고, 양념을 섞을 때도 울고, 매번 순간마다 하게 되는 엄마 생각에 눈물이 그치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 만드는 일에 진심인 이유는 나도 생전에 엄마가 살아계실 땐 전혀 상상조차 못 했던 마음으로 이젠 내가 낳은 아이의 엄마가 되어 음식을 만들고 그 안에 사랑과 정성을 듬뿍 넣어 아이에게 음식을 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