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by_지니
오늘은 날씨가 무척 서늘했어. 운동복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문득 발길을 돌려 서점으로 향했어. 오랜만에 책을 사 와 집에서 천천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지. 서점 안에는 조용한 듯 은은한 말소리들이 오갔어.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남은 한마디가 있었어.
“글을 쓰는 예술가들은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그 말에 깊이 공감했어. 내향적인 성향 탓에 늘 욕심도 많고 의욕도 있었지만,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 그래도 가만히 지난날을 돌아보면, 내게는 사람을 이끄는 역할이 자주 주어졌던 것 같아. 당시에는 늘 부족하다고 느꼈지만, 돌이켜보면 그만큼 용기 있던 때도 없었지.
그런 고민 끝에 내가 선택한 곳이 바로 제주도 김녕이라는 마을이었어. 김녕은 고즈넉하고 조용한 곳이야. 그러나 이곳은단순히 조용한 마을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제주 특유의 마을 신앙과 공동체 문화를 지켜온 곳이기도 해.
특히 마을 곳곳에는 신앙과 관련된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중 한 곳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어.
마을을 산책하던 중, 조그마한 언덕배기에 자리한 오래된 돌담을 마주했어. 돌담 너머로 울창한 팽나무숲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아래로 작은 제단이 놓여 있어. 처음에는 그저 오래된 마을 공간이려니 하며 발걸음을 들였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도 모르게 팽나무 앞으로 이끌려 갔어. 거기서 한참을 머물며 주변을 둘러보았지.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은 김녕리의 본향당이었어. 마을이 커지면서 여러 당이 생겨났고, 이곳 또한 그중 하나였어. 농경신인 ‘큰도안전 큰도부인’을 섬기는 본향당이야. 팽나무 아래 낮은 터에 자리한 제단, 돌담으로 둘러싸인 공간, 그리고 세월이 스며든 듯한 고요함. 비록 지금은 본향굿이 행해지지 않지만, 이곳은 여전히 마을의 한 부분으로서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 나는 단순히 오래된 공간을 지나치는 행인이었을 뿐이었어.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이곳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었지. 김녕이라는 마을이 품고 있는 시간의 흔적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씩 내게로 다가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