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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Jul 10. 2022

_카페 산노루-2

: 일곱번째이야기, 에필로그




   주문을 마치고 테라스로 나온 내게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어느 먼바다로부터 불어온 바람이었다. 비릿한 바닷냄새를 잔뜩 풍기며 부단히 내 주위를 맴도는 바람을 달래주면서 나는 파라솔이 있는 한적한 자리로 향했다. 새하얀 플라스틱 의자 위를 털썩 주저앉고서 나는 무거움 짐을 내려놓듯 신발을 한쪽에 벗어놓고 그대로 다리를 곧게 폈다. 그리고는 잠시 시간을 멈추려는 듯 가만히 눈을 감고서 아까부터 재잘대던 바람 소리에 이제야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주문했던 크랜베리 스콘과 청보리 미숫가루가 나오자 나는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더위에 지쳐 잠시 잊고 있었던 허기가 서서히 밀려 올라왔고 나는 그것들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미각적 충족감으로 갈음하기 시작했다. 스콘의 포슬포슬한 식감은 습한 바닷가의 공기와 적당히 버무려져 입안에 녹아들어갔고 그 사이사이에서 묻어나오는 크랜베리의 상큼함이 자극적이지 않은 즐거움을 주었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청보리의 구수함도 달콤한 미숫가루와 잘 어우러져 마치 내 앞에 펼쳐진 바닷가의 잔잔한 물결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듯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나는 다시 원래의 자세로 돌아갔다. 옆 테이블에서 두 손을 바삐 움직이며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은 어느새 해안가 쪽으로 자리를 옮겨 잡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앞에는 하늘거리는 이름 모를 꽃과 관목들 너머로 수평선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중간 어디쯤에 무심하게 시선을 던져놓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디서 본 듯한 형태의 새하얀 구름만이 수평선을 따라 느릿느릿 흘러갈 뿐이었다.

하염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내 몸이 차갑게 식어갈 때쯤, 나는 반대쪽으로 의자를 틀어 오뉴월의 풋풋한 햇살에 몸을 기대었다. 잠시 햇볕을 쬐었을 뿐인데도 온몸에 온기가 돌았고 팔 언저리는 따끔거렸다. 참을성이 없던 나는 금세 그늘 속으로 다시 몸을 숨기며 아까 놓고 왔던 시선을 되찾아 새로이 둘 곳을 찾았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그늘 한 점 없는 부둣가가 있었다. 낚시를 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가만히 서 있었고 이따금 유람하는 구경꾼들만이 하릴없이 오고 갈 뿐이었다.

    그러던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한 남자가 있었다. 부둣가에는 파도가 들락날락할 수 있는 경사로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파래나 이끼 등이 모여 초록빛의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예뻐 보였는지 그 남자는 카메라를 들이밀며 서서히 경사로를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어, 저기는 미끄러울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여지없이 미끄러진 그 남자. 다행히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어 앞으로 넘어진 터라 바닷물이 철썩이는 곳까지 미끄러지지는 않았다. 많은 생각이 들었는 듯 잠시 엎드려 있던 그 남자는 힘겹게 일어나 자신의 옷을 털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끼들 틈에 처박혀있던 핸드폰을 주워들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고장 나지는 않았을지, 혹시 아까 찍으려던 사진은 제대로 찍었을지.

   그렇게 경사로 중간쯤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잠시 후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부둣가 위로 올라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괜스레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역시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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