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형 Jul 06. 2022

_가파도-3

: 여섯번째이야기, 에필로그




   사랑에 대해 우리가 반복하는 흔한 착각은 사랑이란 서로간의 상호교감을 통해 서로 주고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이 나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라는 것,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에 대해 어떤 도덕적ㆍ사회적 잣대와는 상관없이 내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 사람을 믿고, 응원하며, 따스하게 껴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사람을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로 인정하고 긍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 즉 내가 사랑받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과 분명 별개의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일종의 자기 위로에 불과한 것일까. 공생과 같은 개념으로 마음 속 무언가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단순히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단어 아래 그저 서로를 이용하는 것일까.      


   마음 속 무언가의 공허함을 '외로움'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면, 외로움이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서 방황하는 마음일 것이다. 외로움, 그것은 그 근원조차 알 수없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것이며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들고 구성해낸 것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대가로 오히려 내 영혼을 속박하며 나 자신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외로운 우리는 무언가를, 누군가를 사랑한다. 외부와의 관계를 통해 내 자신의 신선한 반전을 꾀함에 따라 답답한 마음, 즉 일종의 '속박' 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하여 자기 자신의 삶을 나아가려고 한다.

   따라서 사랑이란, 그 사람에 의해 내가 치유 받는 것도, 그 사람을 이용해 자기만족을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면서 함께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사랑받는 사람이 자유롭게 되어가는 것을 통해 사랑하는 나도 자유롭게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사랑한다는 것은 순수한 마음에서 발현된 혼자만의 비밀에서 시작하여 끊임없이 상대방의 마음을 두드리며 꺾일 듯 하다가도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끝없는 과정을 통해 내 안의 외로움이 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풀어 나가는 것이 사랑 아닐까.   

  

   결국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만큼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해 줄 수 없다는 것, 즉 각자가 그리는 삶의 곡선이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두선은 하나의 선이 될 수 없는 각자의 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관계가 아닐까.










이전 15화 _가파도-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