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의 밤이 일깨우는 그리움의 존재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생활의 찌든 때 아래 가려져 잊고 있던 스무 살 그리움의 오랜 잔향은 오감을 통해 제가끔 끊임없이 되살아 난다. 허공에 흩어지는 뿌연 담배 연기 사이에서, 어느 계절의 바람 감촉에서, 어느 밤 차오른 달빛의 낯익음에서.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너는 나를 잊었을 수도 있겠지.
벌써 20년이나 지났으니까.
갑자기 너한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 봐.
오랫동안 네 꿈을 꾸지 않았는데, 이상하지.
어제 네 꿈을 꿨어.
나는 가끔 네 꿈을 꾸게 되는 날이면 너에게 편지를 쓰곤 했어."
"잘 지내냐"는 쉬운 한 마디를 떼는 것은 왜 힘든지, 왜 일상을 뒤흔드는지. 어느 날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말간 얼굴은 왜 기억이 잘 나지 않는지, 빛 바래고 끝이 닳아버린 필름카메라 사진처럼 시간을 버티지 못한 희미한 기억인데 왜 그렇게 힘이 센지.
<윤희에게>는 그렇게 누구나 가져볼 법한, 오랫동안 말하지 못하고 간직해온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다. 쥰과 윤희는 두 차례 짧게 재회한다.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성별이나 나이는 영화 속에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리움이라는 보편적인 감정만이 중요하다.
나는 첫눈에 반하는 사랑과 운명적인 사랑과 일생동안 잊지 못하는 사랑의 존재를 믿는다.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이토록 명확하게 느끼는데, 눈을 감고 몸을 뒤채도 가슴 저리게 그리운 마음을 형체 없는 감정이라고 하여 누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사랑의 대상도 마찬가지다. 명백하게 사랑하는 감정의 존재를 당사자가 느끼는데, 다른 사람이 그 사랑의 대상을 재단하거나 한정해줄 수 있는가. 돌아갈 수 없는 슬픈 이야기로 남은 기억과 이제야 화해하고, 차마 직면조차 하지 못한 그리움을 똑바로 돌아서서 마주한 누군가는 누구나 윤희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여분의 삶을 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래서 스스로를 벌주면서 살아왔던 것 같아. 너는 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