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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an 12. 2017

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your name., 2016

돌이킬 수 있다면,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이라는 강한 소망


너의 이름은(君の名は。, your name., 2016)





"충격적이고 허무하게 갑자기 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헌사인 동시에,

남은 사람들의 충격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낭만적 가정" 







인연을 믿는 사람이라면, 영화 속 낯선 정서와 오글거림, 개연성 없이 사랑에 빠지는 남녀에 대해서는 조금 견디면서, 그냥 이건 어떤 주제에 도달하기 위한 아름다운 동화 비슷한 비유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인연인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시공간 속 긴 숨바꼭질 끝에 결국은 기어이 만나게 되는 이야기. 
사랑하기 때문에 둘 사이의 서사에 단 일초도, 의미없이 허투루 넘기거나 소중하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다는 회상.
돌이킬 수 있다면,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바로잡고 싶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 
충격적이고 허무하게 갑자기 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헌사인 동시에 

남은 사람들의 충격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낭만적 가정. 

이야기를 통한 충격과 상처의 치유.





죽음으로 떠나보내야 했거나, 혹은 인연이 닿았지만 인연인지 몰라서 짧은 시간 그저 스쳐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

그들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이 짙어 낭만적 가정을 통해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이랬다면, 달랐다면, 떠나보내지 않았을텐데, 라고.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 

"너의 이름은."

일본 애니매이션이 한국 영화가에서 박스 오피스 1위를 한 것은 내가 아는 한은 처음인 것 같다.

제목부터 일본감성 충만해서 오그라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영문제목인 Your name.(방점이 들어간다는 것도 웃기는 포인트)조차 오그라들고 특유의 감성이 충만하다. 

기획이나 도입에는 문제가 없는데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는 늘 절정에 달했을 때가 문제다. 특히 이번 영화는 필생의 역작이라도 만들겠다고 다짐한건지, 정성이 너무 담뿍 다양하게 들어가서 약간 산만한 느낌도 있다. 그런데 또,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군더더기라곤 없는 아론소킨 각본의 영화나, 더이상 덜어낼 것이 없는 '그래비티'같은 깔끔한 영화들과는 또 다르게 이런 영화들은, 장인의 생각이나 정성이 인간적으로 가감없이 느껴진달까, 정이 느껴진달까.




작화가 아까운 스토리라고 욕할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이번 영화에 담긴 정성과 소망같은 것을 생각해보면 그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기도 한다.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재앙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남일 같지 않아서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사건이 많으니까.





그리움

인연이었지만 아쉽게 인연이 더 닿지 못해 떠나보낸 사람에 대한 회한이나,

어떤 동질적 요소를 하나라도 가지고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다가 어느 날 충격적으로 곁에서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헌사.

도쿄라는 익명성의 도시에서 외롭게 알바를 하고, 취업을 고민하고, 식탁에서 아이패드를 보는 신세대 아버지와 둘이 살며(어머니가 돌아가셨거나, 어쨌든 결손이 있는) 언제고 한 번은 외로움을 느꼈을 주인공. 외로움은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초래한다.




도시와 신사

먼 도시에 살고 얼굴을 본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너무 충격적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 참사는 국민들에게 상실감을 가져다 줬다. 그래서 동화처럼 아름다운 가상의 시골에 사는 풋풋한 청춘에 빗대어, 가정한다. 혜성이라는 아름다운 쇼에 빗대어 대지진을 회상한다. 다시금 되돌아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면, 그것이 손 쓸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면,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이라도 주어진다면.




필연성

고등학생인 남녀가, 만나본 적도 없이, 그냥 문자 텍스트 정도로, 심지어 문자 텍스트를 심도 깊게 나누기 전에 사랑에 빠지는데, 이 부분이 조금만 더 상식적이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 더 몰입이 쉬웠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고등학생이라는 설정, 고등학생의 사랑이 직장인이 되어가는 성인까지도 이어진다는 묘사 같은 것은, 정말 동북아에만 특화된 감성인 듯 하다.

이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고등학생들이 만나보지도 않고 필생의 사랑에 빠져 "소중한 사람이얌! 잃어버려서는 안 돼! 잊지 말아야지!" 라며 조현병 환자처럼 중얼댄다는 묘사에 집중하지 않고, 

아픈 가슴을 치유하기 위한 비유적 동화 정도. 혹은 한 연인이 수 많은 우연과 필연을 거쳐,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숨바꼭질을 끝내고 만나는 일에 대한 아름다움을 조금 비유적으로 표현한 거라고 생각하면, 좀 마음이 편해진다. 일본의 붉은실 전설은 일견 여고생 감성의 유치함으로도 여겨질 수 있겠지만, 인연이나 운명을 믿는 사람에게 매력적이고 안도되는 요소이지 않은가. 씹어만든 술, 죽어서도 이승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실마리, 연인과 연결된 보이지 않는 실. 시공간을 초월해 만나야 할 사람들을 연결하려는 이 안간힘은 실제로 숨어있는 숭고한 소망 때문에 그렇게까지 유치해보이지는 않는다. 




작화에 대해서는 말하기도 새삼스러우니까 다들 영화의 리뷰로서는 말하지도 않는 분위기다. 작화에 관한 한 신카이 마코토는 그 정도 존재다.

마치 '비'와 곽재용 감독의영화들처럼, 신카이 마코토 영화와 비는 매우 밀접하다. 비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화와 사운드를 완성하는 화룡정점인데다가 스토리 상 감정고조의 순간을 완성해준다. 

자연현상 - 빛의 쪼개짐, 빛이 건물과 사람의 머리칼과 손등, 발에 조각조각 부서져 떨어지는 장면을 신카이 마코토는 집착적일 정도로 관찰하는 사람일 것 같다. 

'너의 이름은'의 기후와 자연현상이 얼마나 소오름 돋냐면, 영화 속 밤 장면에서 달에 달무리(달의 주변에 원형으로, 무지개색의 빛 굴절 띠가 보이는 현상)가 끼면, 다음 날 비가 내린다. 눈이 오든지.  




아름다운 정신승리-이런 류의 정신승리라면.

유치함을 걷어내고, 우리에게 다소 낯선 폐쇄적 섬나라 특유의 고유정서를 걷어내고 나면,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랬듯 끊임없이 꿈을 꾸며 과거를 바로잡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의 알맹이만이 남는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바로 잡을 수 있는 작은 실마리라도 있다면, 나는 무엇이라도 하겠어요. 어떤 노력이라도 해볼게요.   

이런 소망은 얼마든지, 꿈꿔도 되지 않은가. 

나약함이라는 공통분모와 연대감을 가지고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비록 얼굴도 본 적 없지만 허무하게 사라져 간 동료들에 대해 이런 헌사를 바치며 남아있는 상처를 보듬고,

잠시동안의 꿈같은 상상으로 모두가 살아 돌아온 양 정신승리를 하더라도,

이런 소망은 얼마든지, 품어도 되지 않은가.


















익숙한 도쿄 풍경. 익숙한 건물과, 익숙한 도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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