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반(半) 의사

by 홍월

초겨울에 첫 애를 낳았다. 한 달간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한겨울에 한 달짜리 애를 데리고 우리 집에 가서야 자기 주도 육아를 시작했다. 내가 의지한 건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백과사전 두께의 책 한 권과 수시로 전화 상담에 응해주었던 엄마와 언니들이었다. 그때는 인터넷과 포탈이 지금처럼 발달되지 않았고 정보도 그리 많지 않았다.


너무 추운 겨울이라 문을 꽁꽁 닫고 누빔 옷을 입히고 솜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에는 열꽃이 피었다. 약간의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나는 열이 나는 것으로 판단했다. 무섭고 혼자 갓난아기를 데리고 병원 갈 엄두가 안 나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오신 엄마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얘가 애를 떠죽일 작정이네"라며 창문을 열고 이불을 젖히고 누빔 옷을 벗겼다. 열꽃처럼 생겼던 붉은 반점은 이내 사라졌다. 엄마 왈, "애가 열이 있었던 게 아니고 더워서 열꽃이 폈던 거다."라고 하셨고 책 대로가 정답이 아니고 아이의 상태를 봐가며 가장 편안한 상태를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느끼는 가장 편안한 상태를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때 엄마가 해주신 말씀을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나는 '복음'처럼 여기며 살았다.


엄마는 반(半) 의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 아이를 키워주었던 엄마 집에는 체온계가 없었다. 있었다 해도 엄마는 체온계 사용할 줄을 모르셨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가 열이 있는지 없는지, 열이 있다면 대략 몇 도 정도인지 근사치를 알고 계셨다.

어느 휴일 아이를 데리고 친정 나들이를 한 날, 나는 아이 몸에서 열이 나는 걸 느꼈다. 이마에 손을 대보니 뜨끈하게 느껴졌다. 불안해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젖병 가방을 챙기려는데 엄마는 "함 보자"하시더니 가만히 얼굴을 아이 얼굴에 갖다 대었다. "열 없다. 지가 용을 써서 순간 열이 올랐던 것뿐이다"확신에 찬 엄마 말을 믿지 못한 나는 체온계를 가지러 집까지 갔다 왔다. 아이 체온은 36.3도.

엄마 왈, "내 입술을 애기 이마에 대어보았을 때 입술이 뜨끈하면 열이 있는 거고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거다. 손을 백날 이마에 대봐야 모른다"라고 하셨다. 이후에 입술 체온 방법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오만 가지 경우가 발생한다. 그리고 엄마들이 제일 당황하고 불안한 경우는 '아이가 아플 때'이다. 사람은 예고 없이 아무 때나 아플 수 있다. 특히 갓난아기와 어린이들은 자기 의사 표현을 아직 할 줄 모르고 의사 표현을 할 줄 아는 나이라 해도 전달이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엄마들은 아이의 표정과 얼굴 색, 몸상태를 수시로 자세히 살핀다. 수시로 살피는 정도가 아니라 온 신경과 마음이 아이에게로 가 있기에 표정과 얼굴색, 몸상태가 조금만 달라져도 금방 알아채는 것이 가능하다.


아이의 변화가 감지될 때마다 병원으로 달려갈 수는 없다. 불안한 엄마가 별 것 아닌 것을 크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고, 사람 많은 병원에서 병이 옮을 수도 있고,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고 병원으로 외출 나갔다 오는 것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이와 엄마 모두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큰 애의 fake 열꽃처럼 간단한 처치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엄마들은 우리 아이가 진짜로 아픈 건지, 집에 있는 비상약으로 해결이 가능한 간단한 것인지, 서두르지 않고 사람 적을 때 병원에 가도 될 일인지를 판단하고 있고 판단할 능력이 갖춰지게 된다. 반(半)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이런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첫째는 이런저런 질병과 사고로 병원 출입이 잦았다. 그중에서도 초등학생 때까지 만성 질환처럼 편도선이 자주 부어서 환절기만 되면 편도선 염증으로 병원을 다녔고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 못해서 고생을 했다. 고생하는 아이를 보며 동네 단골 의사 선생님은 편도선 제거 수술을 권유하기까지 했다. 환절기마다 이런 일을 겪으니 나도 이 병에는 진짜로 반(半) 의사가 되었다. 집에 프로폴리스를 항상 구비해두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감기 증세를 보이거나 목소리가 이상하거나 목으로 손이 자주 가거나 하면 일단 프로폴리스로 가글을 시키고 꿀을 하루 두 번씩 먹이고 목에 수건을 둘러주고 환절기 체온 변화에 주의를 시켰다. 이러기를 몇 번 경험하니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자체적으로 증세가 호전되기도 했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자주 체했다. 어린애가 무슨 소화력이 그리 부실한 지 어른보다 더 자주 체하곤 했다. 처음에는 속이 메슥거리고 게우기도 해서 뇌진탕을 의심하여 CT도 찍어보았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병원에서 진단도 받고 약도 먹었지만 금세 낫지를 않았다. (당시 내 주변 선배 엄마들 말로는 체한 경우, 병원 약이 더디게 낫는다고 했다) 나는 엄마로부터 배우고 경험했던 '손가락 따기' 신공을 둘째에게도 시전할 수밖에 없었다. 조막만 한 아이에게 바늘을 찌르다니! 처음에는 혹시 실수라도 할까 봐 손이 떨렸지만 밥을 멀리하고 자꾸 구역질을 하는 아이를 보며 양 손가락을 시원하게 '똑' 땄다. 내가 배운 대로 양 손 엄지손가락을 따고 등을 훑어 내리고 한참 동안 배를 주물리고 쓰다듬어 주었다. 한 밤 자고 나니 아이는 씻은 듯이 나았다. 이후로 우리 집에서는 어떤 종류든 체한 증세는 병원에 가지 않게 되었다.


한 번은 첫째가 초등 1~2학년쯤 되었을 때다. 아이가 걷는 것이 조금 불편해 보였다. 흘낏 보면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자세히 한참을 관찰해보니 걷는 것이 평소와 달라 보였다. 혹시 어디 아픈지 물어보아도 아이는 없다고 하였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고 생각하고 지나치려 하였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내 눈에는 아이의 걷는 모습이 분명히 평소와 달라 보였다. 다시 아이에게 물었다. 어디가 혹시 불편한지. 아이는 아프지는 않은데 왼쪽 발 느낌이 조금 다르다. 고만 대답했다. 직감적으로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면 판단한 나는 당장 데리고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 사진 결과 왼쪽 4번째 발가락에 금이 가 있었다. 아마 태권도 학원에서 겨루기 연습을 하다 상대편 친구의 몸에 잘못 부딪힌 것 같았는데 아이는 걸을 때 크게 힘이 들어가는 쪽도 아니다 보니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의사 선생님도 그냥 두면 저절 붙기는 하겠지만 만에 하나 잘못 붙으면 발가락 모양이 잘못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괜찮다는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간 나의 혜안에 자가 칭찬을 해주었었다.




작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 2화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4~5살쯤 된 아이가 병원 응급실을 왔다. 하지만 병은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이었고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 자주 있는 병이었다. 아이에게 큰일이 난 줄 알고 놀란 아이 엄마에게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아이 엄마에게 물어본다. "첫째 아이시죠? 첫째 아이 엄마들은 대부분 그래요. 둘째 셋째를 키우는 엄마들은 전문가가 다 돼서 그러려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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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둘째 셋째 아이 엄마들은 '다 그러려니'한다는 걸까? 바로 그 엄마들은 이제 '반(半) 의사'가 다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엄마들이 들이는 온 시간과 집중력과 쌓인 경험들이 엄마들을 반(半) 의사로 만든다.

나는 다행히 가까이서 아이를 키워 준 친정엄마 덕분에 첫째를 키우면서 반반(半半) 의사 정도는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우리 엄마와 언니를 포함한 수많은 반의사가 된 선배 엄마들-사회생활 경험과 상관없고 나보다 나이가 더 어리더라도-을 보면서 그들이 못해낼 일이 없는 슈퍼맨처럼 보였다.


신이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엄마'를 만드셨다. 는 모성애를 강제하는 듯한 말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처럼 엄마 노릇을 반편이 정도밖에 못한 엄마라도 아이를 낳고 길러본다면 이 문구를 마냥 마뜩잖게 볼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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