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기내식으로 이름난 유럽계 글로벌 기업이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수백 여 곳의 지사 중 하나, 한국지사다. 기내식 센터는 거래하고 있는 여러 나라의 항공사, 고객사들의 기업 로고를 새긴 깃발이 기세 좋게 펄럭이며 나부낀다.
핀란드 국기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이미지)/ 출처. unsplash
기내식 전문회사로 입사를 희망했지만 사실은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왜냐면 누군가의 능력과 상관없이 사람을 뽑지 않기 때문이다. 채용이 언제 날지도 모르고 어느 파트에서 사람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리고 기내식과 같은 특수한 분야의 경우 한 파트에서 오래 근무하신 분들이 많다. 실제 입사하여 한 우물만 판 사람들의 십 수년 내공에 도리어 내가 너무 다양한 일을 한 것인가? 잠시 혼란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곧 나는 한 가지의 일만 할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인정했다.
나는 마침 이 기업의 한국지사가 설립되기 전에 누군가로부터 채용정보를 건네받은 적이 있었다. 최초의 응시에는 연락이 없어 잊고 살았던 곳이었다. 두 번째로 지원을 했을 때 극적으로 입사 확정이 되었다. 6~7개월의 숨돌림으로 모아두었던 돈이 점점 고갈되고 있었는데 그 종료 시점에 맞추어 합격 통지를 받은 것이다. 나의 간곡함이 통했던 것일까, 그 당시 면접을 담당했던 외국인 디렉터가 굉장히 흡족해하며 나에게 악수를 건넸다. 그렇게 나의 직장인 생활은 또 구비구비 흘러가게 되었는디. 얼쑤.
개울의 디딤돌을 넘어갈 때 때론 물에 빠지고 때론 디딤에 성공한다.
개울의 디딤돌을 넘어갈 때 나는 너무나도 두려웠다. 다음의 디딤돌로 무사히 점프하지 못한다면 갑자기 불어난 굽이치는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 갈 것만 같은 오싹한 공포와 불안감을 느꼈다. 잠시 멈춰서 나 자신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러기엔 당시 3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였으므로. 아무도 나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겠지만 나 스스로 '이제 뭘 할 수 있겠어?', '결혼이나 하겠지.' 등의 비아냥 섞인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의 말이 떠올려졌다. 그 상상 속의 하이에나들에게 지기 싫었다. 그런 마음과는 달리 나는 한동안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필요한 시기엔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한 줄기 빛이 비치어졌다. 누군가 나와 같다면 희망을 가지시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이루어질 줄 알았으면 주의 환기를 위해 시급히 떠난 여행에도 늘 한편에 채비하고 다녔던 걱정과 불안을 탈탈 털어버리고 맘껏 즐거워할 것을! 후에 안타까워했다.물에 빠진 사람이 수영을 못해서가 아니라 패닉으로 급격히 산소를 잃고 스스로 어려움에 빠지듯 초조해할 것이 아니라 마치 물놀이를 하는 사람처럼 힘을 빼고 몸을 맡긴 채 둥둥 떠있으면 되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유연해야 했던 것이었다.
세 번째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그 기회에 감격스러웠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휘몰아치는 급류 속 그렇게 무사히 다음의 디딤돌에 무사히 안착했다. 나의 구겨진 자존감 또한 쫙쫙 다림질되는 기분이었다. 회사에서 지급한 '레노버' 랩탑을 들고 항상 지나는 길인 공항을 활보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먼저 아는 척을 해오며 지금은 어디에 있냐고 반가워할 때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잘 될 줄 알았다며 감사하게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분들은 해당 분야를 잘 모를 텐데도 말이다. 어떤 사람은 퇴사한 나를 지척에서 보았다며 나에게 직접 아는 체를 하지 않고 나의 지인에게 은근슬쩍 문의해 왔다고 한다. 그 상상 속의 하이에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