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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Oct 05. 2020

이름 패티쉬

나의 개츠비에게

사실 '패티쉬'라는 단어의 뜻을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인상적인 제목을 쓰기 위해 차용한 것인데, 대충 알기로 성적으로 무언가에 집착한다는 뜻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아마 '이름 패티쉬name fetish'일 것이다.

 

-


나는 흔히 말하는 금사빠다. 마음에 에너지가 많은지 사람을 쉽게, 잘 좋아한다. 영 별로라고 생각하던 사람도 어느날 좋은 점을 발견하고는 끊임없는 시선을 쏘아대고 있다. 대학에 들어와 짝사랑한 사람에 대해 친구에게 얘기할 때, A선배, B친구, C오빠 등등으로 알파벳을 붙였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나도 당혹스러웠다. 물론 동시다발적으로 좋아한 건 아니지만, 자의식 과잉에게 짝사랑만큼 내 존재를 붕 띄우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1, 2년 수많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나니 누군가를 더이상 그만 좋아하고 싶어졌다.

연애를 다루는 영화도 드라마도 지긋지긋해졌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소용돌이치던 흙먼지가 가라앉고 남은 한 사람이 있었다.

절대. 절대 좋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

뭐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는데 좀 과장했다.



-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싫어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던 뻔하고 유치한 아이였을적에

나를 좋아해준 사람들도 몇 있었고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도 몇 있었지만

단 한 사람만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이름만이 여전히 손톱을 깨물게 한다.



나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이 사람을 좋아했다.


-


당연히 이따위 장난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리가 없다.

인생은 영화가 아닌지라 연애는 너무 시시하고 지루했다.

그즈음 내가 재밌는 건 차고 차이는 세익스피어의 비극뿐이었던 것 같다.

나는 독을 마시지 않고 부모 가문 밑에서 호위호식하는 것에 만족할 주인공이었는데도!


-


나는 첫 연애였다. 나를 좋아하는구나, 생각했고 나도 그와 연애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ㅂㅈ'이라는 이름과- 우리는 손을 잡았다. 할말이 있는 듯한 얼굴을 가진 그에게 달이 예쁘다는 얘기를 했다.

긴장하면 여유로운 척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그때도 그랬다. 뭐, 손잡자고?

덥석 손을 잡는 나에게

너는 절대 첫연애가 아닐 거야 라고 말하던 그는

본인이 첫연애가 아니었다.

전여친 얘기를 하며 나와 친해졌다는 것을 까먹은 걸까?


-

그는 내 이름이 예쁘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을 들킨 듯이

그때 지금이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끝날 거라고 느꼈다. 가장 설렌 순간 나는 그와의 마지막을 결심했다.  

아직도 이렇게 두고두고 그 말의 울림이 맴도는 것을 보면 그 예감이 아직까지는 틀리지 않은 것 같다.


-

별 시덥잖은 이유로 그와 헤어진 뒤에 몇 번의 거절을 당했고, 울 때도 있었다.

긴장할 때면 여유로운 척하며 허세부린 걸 이제는 알았을까, 원래 알았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첫 연애 이후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름들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다. 이름의 뜻과, 그 사람을 연결지으며 상상한다. 우리가 헤어지는 날 그가 내내 가자고 했던 바를 갔다. 아마 나는 평생 자발적으로 갈 일이 없는 그런 곳에.  많이 생각하고 계획한 듯한 대사들과 어색한 발걸음. 그는 또 편지를 건넸다. 거절당할 것을 알고 쓰는 편지가 내 속내를 다 아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고개를 떨구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말란다.

사실 그거 빼면 할 말이 없는데 어째 그 말을 할수록 미안해지는 기분이다.

이런 무용한 말같으니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나중에 책을 내면 꼭 그의 이름을 주인공으로 하겠다는 말을 했다.


진심으로 기뻐하던 그의 얼굴이란,

내가 그토록 꿈꿔왔던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몇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

매일 밤 왜 사랑하냐고 물었던 나에게 너는

사랑해서 사랑한다고 얘기했다.


이유를 찾고자 했던 나의 질문이 그저 사랑의 반댓말이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너의 대답이 단지 사랑이었을 것이다.


-

솔직히 오그라들 것을 알면서도 딱히 지우고 싶지 않다.

만약 아직도 당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찾고 있다면 이 글을 언젠가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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