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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Jan 28. 2020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때

아버지에게

문득 심리학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다시 대학을 들어가기는 웃기고, 이런 저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심리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이론'을 읽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오이디푸스 이론에 따르면 어머니의 태에서 합일되어 존재하던 자식은 세상에 나올 때 어머니와 분리된다. 따라서 그는 어머니와 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다시 하나가 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의 곁에는 아버지라는 경쟁자가 있다. 그는 크고 강하며 무섭기까지 하다. 나는넘어설 수 없는 존재인 그를 인식하고, 마침내 관계에 순응하게 된다. 또한 아버지를 닮아가고자 하는 새로운 욕망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태어나 사회화되는 과정이다. 


엄마, 아빠, 오빠, 나로 형성된 우리 가족은 팔다리 빼고 모두가 비정상적이었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우리는 늘 가해자와 피해자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당하기만 하는 어머니는 순결한 피해자, 소리를 지르는 저 사람은 명백한 가해자. 사춘기가 오자 우리는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두 살 터울인 오빠보다 내가 먼저 사춘기가 찾아왔다. 나는 대들었고, 항상 맞음으로써 미약한 혁명은 종결되었다. 그 후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투명인간처럼 대했다. 일년 뒤 오빠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오빠의 혁명은 나보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마도 오빠는 힘이 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지만, 그는 아니었으니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된 그의 폭력을 오빠는 막아섰고, 그가 아빠를 제압하는 순간, 그의 세계는 무너졌다. 그는 오이디푸스가 되어 비릿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때, 그의 얼굴은 착한 살인자처럼 슬프고 괴로운 모양을 가졌다. 그 날 아버지는 술을 잔뜩 마시고 돌아와서 말했다. 


"뉴스에서 자식이 부모를 죽였다는 얘기가 있더라? 언젠간 저 새끼가 칼을 들고 나를 찌르겠지. 그래, 니들이 나를 죽일 거야." 


자신의 죽음을 저주하듯 말하는 그의 뒤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에 갇혀 더러운 비극을 목격해야만 했다. 나는 아버지가 난동을 부릴 때 언제나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그 말의 실체를 마주하자 역겨운 시체를 마주친 기분이었다. 오빠는 그 날 이후 서서히 병들어갔다. 오이디푸스의 최후였다. 그는 미쳐갔다.


결국 정신병동에 입원하고 오는 날,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날씨와 상황이 딱 알맞네' 생각하는 비정상적인 중학생이었다. 어쩌면 우리 가족 중 정상적인 사람은 없었다.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 싸이코패스 아버지, 절대 반항 따윈 하지 못하는 우울증 어머니, 정신병원에 입원해버린 조현병 큰아들,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소시오패스 딸내미. 완벽한 가족이었다. 끼리끼리는 사이언스.


하지만 5년 뒤 그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건 아버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였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그는 아버지의 비위를 맞췄고, 강박처럼 그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그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강약약강. 강한 사람한테는 약하고 약한 사람한테는 강한 그를 보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읽고 받은 감동과 기쁨이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이론에 어떻게 매료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이제야 사회화되어 가는 것 같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의 성장에 돌을 던질 순 없다. 어쩌면 반쯤은 그를 존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를 죽이고, 또 살려내고 싶다. 그제서야 그를 사랑할 용기를 내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심보선 시인의 시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청춘'이라는 제목의 사랑시다.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며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 뿐이라는 청춘이라는

  

심보선,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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