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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Mar 02. 2020

우리 다같이 좀 덜 열심히 해요

아, 돈이 없다. 

23살 대학생으로서, 그것도 지방에서 서울로 자취를 온 청년으로서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현실 타격제. 

끔찍하게 가난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유로운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의 재정 상태는 사람의 위치를 애매하게 만든다. 

얼마 전에는 엄마가 나한테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나도 억울했다. 


나는 사과하며 대답했다.

어렸을 때는 열심히 공부하라고 해서 했더니, 서울로 대학가라고 해서 갔더니, 이제는 돈이 많이 든다고 혼이 난다. 밥먹고, 잠잔 것밖에 없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엄마도 사과했다. 돈을 조금밖에 못 버는 엄마 탓? 공부하겠다고 돈 먹는 철 없는 내 탓? 우리 중에는 가해자가 없었고, 피해자만 둘이었다.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어떻게 말해, 학식은 먹을 수 있지만, 외식은 하지 못하는 그런 상태.


야, 감사한 줄 알아. 밥도 못 먹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도 감사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자기 전에는 알바몬을 뒤진다. 지역 가능 조건을 바꿔가면서,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리고 빈번하게 지원 완료가 창에 비친다. 

하지만 막상 알바를 하면 30분만에 그만두고 싶어진다. 알바생의 위치로 내가 규정되는 듯한 느낌에, 공부의지를 불태우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알바몬을 뒤지다가 적당한 자리가 없으면 엽서시를 방문한다. 


글 사세요~ 글~


아무도 안 사간다. 아무래도 글보다는 붕어빵이나, 오뎅국물이 더 낫겠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도 피해 안 주고 제 몫하는 사회인이라는 자격을 받으려면 내가 가진 것 중 무언가는 팔아야 할 텐데. 시간이나, 체력이나, 지식이나, 재능. 

쥐꼬리만큼 내가 가진 것들, 이렇게 헐값에 팔아야 하나? 너도 나도 헐값에 파는 바람에 시장 원리에 따라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얘들아, 좀 덜 열심히 하자!!!!!


소리없는 아우성 후 다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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