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소 Dec 08. 2019

우리 엄마 첫사랑 찾기

엄마에게


엄마.

걸음마를 뗀 지가 언젠데

여즉 응애응애 거리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해?

 

세상에 태어난 게 아프고 무서운 갓난아이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했나 봐.

그동안 나는 어떻게 달리고 날았을까?

꿈결 같고 바람 같고 웃음 같아     

엄마.

엄마는 어떻게 엄마가 된 거야?

다만 당신이 나를 미워하기를 바라


- <소원> 中


습작시인 소원으로 나의 글 첫머리를 열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모든 이에게 좋든 싫든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사랑의 희망도 절망도 모두 나의 그녀를 통해 알아갔다. 지금까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나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나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이름은 '순희'이다. 순할 순 順 계집 희 姬

순응하는 계집아이가 되라며 이름을 지었기 때문일까, 엄마는 3명의 남동생을 기르면서 반항 없이 자라왔다. 부모들은 모두 첫째를 자식이 아닌 친구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지만 엄마는 친구도 아니었다. 딸은 남의 자식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할머니는 강인한 분이셨다.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해서 가족을 먹여살리시고 쉼없이 돈을 벌으시며 살아오셨다. 할머니는 뭐를 해도 잘하셨다고, 외삼촌들은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장사를 그만두시고 골프 비슷한 것(뭐였는지 까먹었다)을 치시며 몇 개월만에 전국에서 2위를 했다나.   

나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별로 없었다. 서먹서먹하게 안녕하세요. 설날이면 용돈받고 감사합니다. 가 전부였다. 잠에 들기 전에 엄마한테 과거 얘기를 물으면 나오는 이야기 속에서 할머니는 악역이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대학교 2학년, 학식을 먹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미소야, 할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지금 병원에 가는 중이야.

 할머니 살아있을 수 있도록 기도 부탁해."


음, 나는 전혀 슬프지가 않는 것이 슬펐다. 스스로가 비인간적으로 느껴져서 슬퍼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가 않았다. 주말이 되어서 고향에 내려갔다. 할머니는 살아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심하게 다치셨다고 했다. 아, 대체 왜 나는 슬프지가 않은 건지. 면회시간이 되어 마스크를 끼고 중환자실로 할머니를 보았다. 서울로 대학을 간 후 처음이었다.

그후 일반병실로 내려간 할머니는 간병사들이 다 꺼리는 환자가 되었다. 코마상태에 계셨기 때문에 아무런 거동도 의사소통도 하실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간병사분들을 모셨지만, 얼마 되지 않아 다들 그만두셨다. 다른 환자들보다 할머니는 몇 배로 손이 가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직접 할머니를 돌보겠다고 했다. 간호사는 할머니가 중환자라 위험하다며 말렸다. 엄마는 의지가 확고했다. 할머니를 짐짝처럼 취급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나는 의아했다. 엄마에게 할머니가 밉지 않느냐 물었다.


"엄마는 평생 동안 할머니를 미워하면서 살았어. 나는 피해자라고 생각하면서 원망했어. 그런데 이제 엄마가 되고, 너희를 키워보니 알겠더라. 얼마나 할머니가 삶이 버거우셨을지."


엄마는 할머니가 이해된다고 했고,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 느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1년 가까이 할머니를 돌보고 계시다. 24시간 할머니 옆 작은 간이침대에서 먹고 자면서, 행복하다고 했다. 처음으로 엄마를 독차지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나는 어린아이가 된 순희를 보았다.  

어느 날은 할머니 똥 색깔이 참 예쁘다고 웃었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눈물을 흘렸다고 우셨다. 어느 날은, 또 어느 날은, 엄마는 첫사랑을 찾은 듯이 행복해보였다. 엄마한테 행복하냐, 물으면


"응 너무나 행복해. 나도 엄마가 있었어."


엄마가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도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할머니도, 엄마도 나도 전부 영원히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말이다.


#엄마

이전 12화 우리 다같이 좀 덜 열심히 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