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소 Nov 12. 2020

날씨가 변하는 이유

나의 계절에게


요즘은 상담을 받고 있다. 자해 욕구가 계속 드는 원인을 살펴보니, 내가 힘들다는 것을 나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힘들어한다고 내가 나를 혼내서, 나의 고통을 알아달라고 폭력시위하는 기분이었다.

아니, 내가 왜 굳이 나에게 힘듦을 인정받아야 하는가? 공인 인증 기관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상담소를 찾았다. 

첫 번째 상담을 오늘 시작했다. 어색했다. 


2년 전 쯤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정말 별로였던 기억이 있어서 별로 기대는 안 했다. 

어색한 공기 속에서 상담가는 멀뚱멀뚱 앉아있는 나에게 그냥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 된다고 하셨다. 

나는 내 문제를 파헤쳐서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뒤 실천해서 짠하고 해결하고 싶었다.     


저는 너무 사소한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요. 저는 소심하고, 눈치를 많이 봐요. 그런 것들을 해결하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묻는 나에게, 상담가는 해결책이 없다고 했는데, 정말 짜증났다. 내가 이런 소리를 들으러 왔나? 다 똑같네  


상담가는 갑자기 좋아하는 날씨를 물었다. 나는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또 신나게 대답했다.      

비 온 뒤에 막 그쳐서 축축하고 물비린내 나는 그런 날씨요.      

상담가는 일 년 중에 그런 날씨가 몇 번이나 될 것 같냐, 물었다.     

음..한 20일?     

상담가는 기분은 그런 날씨와 같아서, 미소씨가 좋아하는 물비린내 나는 날씨가 될 수도 있고, 장대비가 내릴 수도 있고, 무더울 수도 있고, 눈이 내릴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 그분의 목소리는 낮았고, 덤덤했고, 느렸는데 어쩐지 신기한 기분이었다. 빨려들어가는 기분. 미소씨는 좋아하는 날씨가 아니라는 이유로 나머지의 모든 날씨들에게 ‘나쁘다’라고 가치판단을 하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상담가는 나의 눈치를 보았다. 이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다며.     

나는 확신에 차있지 않고 망설이며 얘기를 하는 그분의 모습에 마음이 열렸다. 그리고 날씨 얘기는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 나는 대답했다.     

음... 그러면 이제부터 제 기분에 날씨 이름을 붙일게요.     

그분은 웃고는, 이 비유가 적절했는지 물었다.    

 

네, 나중에 제가 책을 쓸 건데, 거기에 이 내용을 넣고 싶을 만큼 좋았어요.     

책을 내면 한 권 달라고 말씀하셨다. 인사치레일 수 있지만, 진짜로 그럴 수 있을 것도 같아서 마음이 좋았다. 날씨가 매일 매일 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하루였다. 

이전 14화 지금까지 내가 고흐인 줄 알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