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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Dec 18. 2019

나 혹시 나를 사랑하나? 의심해보기

나에게

어느 날 문득 내가 나를 동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바에서 밥 대신 빵을 질겅질겅 먹으면서 말이다. 참 과장된 삶을 살았구나 했다. 나에게는 비장하고 장대한 글이 타인에게는 오글거리는 형용사 대잔치에 불과했다. 나라도 내 글을 사랑해줘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글들이 애정과잉이 되어 도무지 발전이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에게 선배는 스스로를 동정하는 것이 가장 바보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읽을 당시 뇌리에 박힌 문장이다. 나에게 취약한 부분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고, 경계하려고 노력했는데 전혀 되지가 않았다.


한참 우울증이 심할 때 스스로 이름을 부르며 제발 죽어달라고,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제발 한번만 용기내 보라고 애원했다. 툭하면 가슴 속 불덩이가 튀어나올듯이 아파와서, 간절하게 죽음을 구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이 겁쟁아! 스스로를 비하하고 경멸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생각해보면, 죽음은 나에게 무기였고 증거였다. 내가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증명해보이려면 죽어야만 할 것 같았다.

누구에게 증명하냐고? 스스로에게.

내가 정말 힘든가? 대체 뭐가 힘들다고 그러지? 슬픔을 허락하지 않는 못된 나에게 아파하는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면 보여줄께. 이런 심정이었다.


예전에는 내 감정을 숨기고 가면을 쓰면 쓸수록 어른스러워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스스로에게까지 가짜만 내세웠다.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동정과 연민, 특별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인정하기 싫어서 아닌 척, 나는 어리광쟁이가 아니라는 발뺌으로 살아왔다.


자기혐오에 기인한 자살 충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치유되어갔다. 나는 스스로를 너무나 미워한다고,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끔찍하게 사랑하고 있었다. 올바른 사랑이 아니었을 뿐이다. 나를 나로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입장에서 사랑하려고 했기 때문에 용납되지 않았다. 그 결과 스스로가 점점 싫어진다고 착각하며 살았다.


일분 일초 끊임없이 타인의 눈을 상상하는 습관을 버리고,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인생.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전에는 싫어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입밖으로 말들이 전달될수록 다른 온도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정말로 더 이상 내가 불쌍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싫어하나, 한번쯤 물어보는 것.

아니면 사랑하나, 의심해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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