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잣대
민족 대 명절인 설날이 끝났다.
설날을 보내며 우리 집에 식구들이 모였다.
어릴 땐 명절의 부정적인 면을 몰랐는데 어느샌가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날이 되었다.
사람들이 묻는 근황이 당당하지 못한 취준생 신분을 아프게 찌르고
회사 잘 다니냐? 이런 말에 부모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또 해외에 있는 잘 나가는 사촌들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어야 했다.
그러면서 그저 일을 열심히 하는 핑계로 부엌으로 피신했다.
아마 오랜만에 모이기 때문에 악의 없이 근황을 묻는 거겠지만
그 근황이 별 볼 일 없는 내 입장에선 참 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자신들의 자식 자랑이 하고 싶으신 거겠지만 그게 우리 부모님에게 어떻게 느껴질까 괜한 죄책감도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남들이 내 인생을 평가하게 두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
어차피 내 인생이고 개썅마이웨이인데 뭐.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러다 한편으로 나도 인간인지라 남들한테 인정받고 좀 떳떳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양가감정이 들다가 결론을 내렸다.
'아 재미없다 이 대화.'
만약 나한테 내가 더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물었다면 나는 훨씬 더 신나서 얘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명절에 눈치 없이 묻는 가족들이 더는 밉지도 않지만 참 재미없게 나이 든 어른들이다.
결국 얘가 잘 살고 있나? 의 척도가
학교 잘 다니냐? 성적은? 직장 잘 다니냐? 어디? 남자 친구는 있냐? 결혼은?
위의 이런 선택지
사실 이런 루트 외에도 사는 방법이 많은데 역시 이런 척도가 내가 잘 살고 있는 삶의 척도가 된다는 건 참 씁쓸하다.
학교 중퇴도, 취준생도, 돌싱도, 비혼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조금 더 알아줬으면 좋겠다.
어쨌든 당신들의 척도에 맞지 않은 울퉁불퉁한 삶이라도 당사자에게는 하나의 인생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나는 그래서 다섯 살짜리 조카에게 '아유 잘했네' '이겼네' '○○이는 똑똑하네'
이런 류의 평가하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관심 있어하는 걸 물어본다.
"넌 반에서 누구랑 친해?" "지금 뭘 그리고 싶어?"
나는 나이 드는 게 두렵다.
나이가 든다고 재미없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아이들에게 따뜻한 어른이 되고 싶다.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들어줄줄 알았으면 좋겠다.
(자존감 도둑이 되지 않기 위해, 자존감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
추석에 이 글을 다시 꺼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