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요가원의 주말 수업은 평일보다 조금 더 긴 1시간 30분이다. 1시간의 패턴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는 힘든 수업. 게다가 요즘 운동 버퍼를 받아서 중상 코스를 들어버렸다. (일요일 아침엔 이 수업밖에 없어서 선택권이 없기도 했다)
일요일 중상 코스를 들은 게 3번째인가.
처음은 약 한 달 전, 내가 따라가기 너무너무 힘들어서 1시간 정도만 어떻게 버티고 나머지 30분은 시체 자세로 누워만 있었다. 옆 사람들은 다들 열심히 척척하는데 혼자만 누워있는 것이라니… 마음은 좀 불편했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살고 봐야지.
다음은 한 2주 전이었나. 이때는 거의 매일 요가 갈 때라 자신감이 많이 붙었었다. 난이도 있는 동작은 역시나 어려웠지만 그래도 한 시간 반은 full로 따라갔다는 게 내 자신감을 더 붙게 했다. 선생님도 나보고 많이 늘었다고 칭찬을 해줬다.
그리고 어제. 요즘엔 헬스를 한다고 요가원을 그만큼 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올라온 내 체력을 믿고 갔다. 자전거를 타고 슝슝가는데 아침 10시도 이미 더워서 가는 길에서부터 땀이 났다. 요가원에 도착해서 가벼운 동작들로 시작하는데도 땀이 멈추지 않았다. 동작은 가벼운데 땀은 요가원 등록 후 역대급으로 많이 흘렀다. 수건이나 바닥에 까는 천 등 아직 장비가 부족한 나로서는 동작 중간중간 옷 소매에 슥슥 닦았다. 티셔츠가 가슴, 배, 등은 물론 소매도 다 졌었다. 이래서 중급반 이상 언니들은 다 등이 훤히 트인 나시티 요가복을 입고 하나 보다.
그렇게 Flow가 중간을 지나, 물구나무서는 타이밍이다.
이 요가원은 신기한 게 수강생들이 다 물구나무 잘 선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 주춤하는 사람 없이. 선생님이 무슨 자세하세요~하면 척척. 그렇게 땅에서부터 단단하게 올라온 한 그루의 나무가 된다. 아니 일반 나무 같다는 설명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그 단단함과 올곧음과 보고 있음에도 느껴지는 그 힘에 대해서는 말이다. 아프리카 작렬하는 태양 아래 수십 년간 물을 마시지 못한 나무의 뿌리가 오히려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기분이랄까. 이런걸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이 든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가 중상코스에 온 아직은 햇병아리. 초·중급에 있어야 하는 애가 여기에 있으니 선생님도 신경이 쓰일 것이다. 벽에 기대어 서는 것까지는 나도 어떻게든 하겠는데, 일요일 오전 꽉찬 요가원에서는 내 몸을 뉠 벽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혼자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괜히 도전했다가는 앞구르기를 할 게 뻔하니 대충 흉내만 내고 있었다. 될 듯 말 듯. 한 다리를 살짝 드는 그 몇 초의 시간만 빼고는 ‘나는 아니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선생님이 다른 사람들 자세교정을 봐주고 나에게 왔다. 천천히 해보라면서. 나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신나서 다리를 차올렸다. 앗!
늘 조용하고 차분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급박하다. ‘아니 차지 마시고요~ 천천히.’
다리를 차지 않고 어떻게 위로 들어 올리지? 살짝만 차면 곧 위로 뻗을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선생님이 잡아주기만 한다면 나도 물구나무 동작을 완성할 수 있을 텐데 하며 아주 살짝 찬다는 게 그만…
툭!
앗..!
사알짝보다는 좀 더 센 살짝 툭. 선생님의 머리통에 내 다리가 닿았다.
머리카락이 느껴졌으니…. ㅠ.ㅠ
나도 선생님도 당황.
나는 동작을 멈추었다. 아, 살살 한다고 했는데. ㅠㅠ
요가쌤은 가르치다가 학생 발차기에 머리 맞을 상상이나 했을까 나도 생각 못했는데. 쌤에 거듭 사과할 여유도 없이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고 쌤도 다른 회원에게 갔다. 끝나 고라 서도 사과해야지 했는데, 이미 너덜너덜해진 내 몸과 정신머리로 나올 때도 정신이 없어서 그냥 인사만 하고 나온 거 같다.
천천히 다리를 들어 올릴 수 있는 복근과 다릿심이 필요한 과정이 중요했는데, 나는 얼른 결과를 얻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져 버렸나보다. 요즘에 요가 많이 늘었다고 내심 뿌듯해했는데 동작만 한다고 요가를 하는 게 아니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누굴 따라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 호흡의 리듬대로. 머리 맞은 건 쌤인데 나도 한 대 맞은 듯. 암튼 다음 주말에 만나면 다시 제대로 사과해야겠다. 고맙고 미안해요. 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