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화 밑창이 떨어져 나갔다. 관악산 6봉 능선을 오르는 중이었다. 6봉 능선은 6개의 바위봉우리를 올라야 하므로 관악산의 여러 등산 코스 중에서 가장 힘들고 위험한 산길이다. 그중에서도 3봉은 거의 직벽에 가깝고 안전시설이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은 탓에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무섭고 위험하다. 따라서 3봉을 오를 때에는 거미처럼 바위에 몸을 바싹 붙이고 손과 발을 이용하여 조심조심 올라야 한다. 특히 발에 힘을 잔뜩 주어 순간적으로 몸을 밀어 올려야 한다. 마지막 피치를 오르기 위해 오른발에 힘을 실어 올라서는데 발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이 밀려들었다. 가까스로 올라와서 보니 등산화 밑창이 너덜거리고 있다. 앞쪽 부분만 겨우 붙어 있다.
떨어진 밑창을 들여다보니 모래가 많이 붙어 있다. 어디서 들어갔는지도 모를 나뭇가지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제법 두껍게 보였던 밑창은 올록볼록한 면이 다 닳아 구멍이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밑창뿐만 아니라 등산화를 이루고 있는 가죽 부분도 여기저기 긁혀 있었고, 걸을 때마다 접히는 부분은 아예 갈라져서 틈을 이루고 있었다. 등산화와 발을 한 몸이 되도록 묶어주는 끈도 헤어져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다. 등산화가 이렇게 될 때까지 알아채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산에 올라 다닌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신고 다닐 때는 몰랐었는데 밑창이 떨어진 채로 뒹굴고 있는 것을 보니 등산화가 아니라, 그냥 가죽 조각이고 닳아빠진 고무판이었다. 그동안 내 몸이 짓누르는 하중을 다 받아내느라 볼품없이 망가져 버린 몸뚱이를 널브러뜨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지금까지 내가 디디고 돌아다닌 산길이 고스란히 달라붙어 있었다. 내가 산꼭대기에 올라 일망무제의 조망을 누리고 있을 때, 등산화는 자리자리하게 부서지는 제 몸을 자글자글 달래 가며, 희희낙락거리고 있는 나를 할기족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삶은 언제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였다. 긴장으로 경직된 시간 속에서 마음은 늘 조급함에 짓눌렸다. 어둑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였고, 그 하루하루는 언제나 모질게 부딪쳐왔다. 어렵게 하루를 버티어 낸 밤에는 몸뚱이를 내던지듯 쓰러져버리기 일쑤였다. 그대로 영원한 잠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어디론가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버리고 싶기도 했다. 내일에 대한 기대나 무지갯빛 희망 따위는 그려 볼 수도 없었다. 힘든 생활이었다.
산행은 느긋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그 치열한 삶의 한복판에서 몸을 빼내고 보자는 일종의 도피였다. 산으로 들어가 걸음 닿는 대로 걸어 다니다가 황혼을 따라 내려왔다. 여느 때처럼 쓰러져 잠이 들었지만, 머릿속이 개운하다는 것을 알았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에서 몸이 무너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신적인 고통이 몸으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 다던 소설가 ‘이상李箱’을 이해할 것 같았다. 등산은 무너져 내린 몸을 치켜세우는 숨은 동력이었다.
산길은 힘들게 올라야 하지만 머릿속을 짓누르지는 않았다. 그냥 숨을 몰아쉬고, 땀을 흘리면 그만이었다. 등산에 재미가 붙으면서 이것저것 장비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제법 비싸다는 등산화도 신어보게 되었다. 몇 년을 산에 오르게 되면서 등산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삶을 즐기는 쾌락의 시간이 되었다.
등산화는 발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 본질이다. 울퉁불퉁 솟아있는 바윗덩어리를 오르내릴 때나, 비가 내리는 숲 속을 걸을 때도 등산화 속에 들어 있는 발은 편안했고, 언제나 뽀송뽀송하였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길고 긴 능선을 홀로 걸을 때도 그 비싼 등산화를 신고 있는 발은 따스했고, 아늑했다. 그러나 등산화는 늘 긁히고, 나뭇가지에 찔려 패이기도 했다. 계류를 건널 때 왁스를 잔뜩 발라 놓은 등산화는 물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튕겨내었다. 발을 헛디뎌 발목이 꺾이더라도 등산화는 저 스스로 힘을 써 돌아가는 발목을 단단히 잡아 주었다. 등산화는 언제나 나의 수호신이었다.
산길에서 즐거운 걸음을 걷고 있을 때, 나의 삶은 잔잔해졌다.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몸도 힘이 났다. 세상이 즐거웠고, 막힘이 없었다. 밧줄에 매달려 힘들게 걸어야 하는 암릉에서도 휘파람이 나왔고, 초원으로 이루어진 소백산 등허리를 걸을 때는 콧노래도 흥얼거리게 되었다. 등산화의 부드러운 가죽과 두꺼운 밑창은 나의 발뿐만 아니라, 나의 몸을, 나의 삶을 든든하게 감싸주었다.
그러나 등산화에 대해 조금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산길을 걸어 다녔다. 산꼭대기에서 무한제의 조망을 즐기면서는 앞날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고, 가파른 바위 절벽을 오르내릴 때는 은근한 스릴을 즐기기도 했다.
밑창이 너덜너덜해진 등산화를 벗었다. 여기저기 찍히고, 긁히고, 갈라진 등산화는 더 이상 등산화가 아니었다. 아무 쪽에도 쓸모없는 가죽 쪼가리에 불과했다. 그래도 이 녀석 덕분에 험난한 산행을 이어왔고, 편안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산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땀을 흘리고, 거친 숨을 쉬며 힘들게 오르다가도 어느 순간 평평해지며 은은한 솔향을 풍겨내기도 한다. 앞을 막아서는 거대한 바위봉우리에 매달려 어렵사리 발디딤 할 곳을 찾아 안간힘을 쏟아야 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등산화는 자신의 몸을 던져 내 발을 감싸 안았다. 돌멩이에 차이고, 나무뿌리에 긁히고, 쏟아지는 빗줄기에 젖어가며 등산화는 나의 걸음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럴 때마다 등산화는 밑창이 닳았고, 옆구리가 터져나갔다.
등산화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거친 산길을 오르내리면서도 부서지고 무너져 내린 몸으로 마지막까지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
등산화는 어머니였다. 가죽이 갈라 터지고, 밑창이 너덜너덜 떨어져 나가 생을 마감한 등산화는 당신의 온몸을 던져 내 삶을 받쳐준 어머니였다. 무거운 굴레에 짓눌리며 이어온 삶의 끄트머리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머니는 살포시 웃고 있었다. 땀에 찌들고 햇볕에 그을린 거칠고 검은 얼굴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다 내려놓은 편안한 얼굴이었다. 참 고운 얼굴이었다.
어머니는 참 힘든 삶을 살았다. 열아홉에 시집와서 혹독한 시집살이를 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열둘이나 되는 식구들 밥상을 차려내고 온종일 논에 나가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일을 했다. 몸뚱이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들판을 건너오는 시원한 바람에 피곤한 몸을 씻으며 속으로. 울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할머니의 눈흘김과 날카로운 음성을 자식들을 보면서 참아내었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무게감이나 고통도 다 이겨낼 수 있었다.
험한 산길을 걸을 때, 내 몸의 하중을 받쳐내었고, 거친 바위를 오르내릴 때 뒤틀리고 뭉개어지면서 발디딤이 되었던 등산화는 바로 어머니였다. 나는 한 번도 등산화의 고마움을 모르고 산길을 걸었다.
밑창이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버리고, 가죽이 찢기고 무참하게 긁혔어도 등산화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무덤덤하게 자신의 종말을 받아들이고 있다. 등산화는 수선하면 긁힌 자국도 말끔해질 것이고, 밑창도 새것으로 바꾸어주면 다시 힘이 팔팔할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 안에 계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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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걸어야 할 산길이 많다. 산길을 걷는 일은 내 삶의 원동력이고 근간이다. 육체가 피곤할 때, 정신이 살아난다는 것을 산길을 걸어 체득하였기에 내가 걷는 산길은 더 험난해질 것이고, 등산화는 더 험한 시간을 제 몸을 던져 나를 안아 줄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어머니도 기꺼이 내 걸음을 지켜보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