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창밖으로는 비가 쏟아집니다. 거실 창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가히 폭포수 같습니다. ‘극한 호우’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말로 불리는 비가 며칠째 내립니다. 노트북을 열었으나 자판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은 아버지 앞에 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무서웠습니다. 아니, 무섭다고 제가 스스로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 곁으로는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 동생은 아버지 무릎에 대뜸 앉았습니다. 저희들은 그때 막내 동생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습니다. 입을 모아 막내가 대단하다고 말했습니다. 더 놀라웠던 건, 아버지가 무릎에 앉은 막내 동생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그 응석을 다 받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정말 놀랐습니다.
아버지, 참 가슴이 미어집니다. 아버지는 저희를 참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아버지의 참모습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무섭다고만 했습니다. 늘 아버지 곁을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어쩌다가 아버지와 둘이서 잤던 일이 생각납니다. 저희는 늘 할머니와 같이 잤는데, 할머니가 고모님 댁에 가셨을 때, 어머니랑 같이 자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와 동생에게 아버지 방에 가서 자라고 하셨습니다. 남자들끼리 자보라고 말입니다. 저희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습니다. 아버지랑 같은 방에서 잔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괜찮다며 저와 동생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동생은 울어버렸고, 그 바람에 저만 혼자서 아버지 방으로 건너갔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아랫목에서 자게 했습니다. 소죽을 끓이느라 불을 오래 지폈던 까닭에 이불속은 참 따뜻했습니다. 저는 이불을 끌어올려 머리까지 덮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불속에서 조심스럽게 숨을 쉬었습니다. 이제 곧 아버지가 큰 소리로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빨리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온몸에 땀이 났습니다. 두꺼운 이불을 덮었기 때문이었지만, 저는 무서워서 흘리는 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눈은 말똥말똥 떠졌습니다. 눈을 꼭 감았습니다. 눈을 떠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생처럼 차라리 울어버렸으면 아버지랑 같이 자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가을쯤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버지가 마당을 쓸고 계셨습니다. 시골에서는 아침저녁으로 마당을 쓸었습니다. 어머니 말로는 아침에는 집으로 찾아오는 분들을 위해서 마당을 쓰는 것이고, 저녁에는 귀신이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더러운 것들을 쓸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저도 작은 빗자루를 들고 아버지 뒤를 따라 마당을 쓸었습니다. 아버지가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마당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므로 아버지가 혼내시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마당에 빗자루 자국이 남는 것이 재미있어서 쓱싹쓱싹 열심히 쓸었습니다. 아버지 뒤를 따라 재미나게 쓸었습니다. 대문 앞까지 다 쓸었을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마당을 쓰는 것처럼 마음도 깨끗하게 쓸어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말씀을 하시는 순간 무서워서 몸을 웅크렸습니다. 그리고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빨리 잠이 들어야 하는데 잠은 오지 않고 지난 일들이 막 떠올랐습니다. 중학교 입학식 날 아버지가 학교까지 데려다주셨습니다. 기차를 50분 정도 타고 가서, 다시 30분 정도 걸어갔습니다. 아버지는 걸어가는 길을 잘 익혀두라고 하셨습니다. 낯선 길을 걷는다는 것보다 아버지와 같이 가는 것이 더 조마조마했습니다. 입학식만 하고 교실에서 교과서를 받아서 교문을 나서는데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식당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국물이 뽀얀 곰탕을 사주신 것 같습니다. 고소한 국물이 맛있었는데 잔뜩 긴장한 채로 겨우겨우 먹었습니다.
자꾸만 지난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랑 낚시를 하며 물고기를 잡던 일, 대문 앞에 있는 개복숭아를 따주시던 일, 비 오는 날 종이우산을 가지고 마중 나오셨던 일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운 아버지와 어떻게 이런 일을 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이것들을 다 떨쳐 버리고 빨리 자야 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어머니랑 같이 자는 동생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교 공부는 할 만하더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야 하는 것이다. 네가 우리 집의 기둥이니까…… 네가 잘되어야 동생들도 잘 되는 것이다.”
이불을 살짝 내리고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이셨습니다. 저는 얼른 이불을 덮어버렸습니다. 아버지가 무서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아버지가 저를 혼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슴이 마구 뛰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에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예, 아버지 말씀대로 잘하겠습니다.”라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잤는지 모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아버지는 벌써 밖으로 나가시고 저만 혼자였습니다.
아버지, 자판을 두드리며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항상 근엄하셨고, 말씀이 없으셨지만 결코 무서운 분이 아니셨습니다. 별말씀을 안 하셨지만, 늘 저희를 사랑하셨습니다. 어린 저희들이 몰랐을 뿐이었습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아버지, 저 역시 아들과 참 데면데면합니다. 조금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대학생이 되어 저의 품을 떠난 뒤에는 어딘지 모르는 거리감이 생겨버린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께름칙한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아버지처럼 한 이불속에서 은근히 말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참 좋으신 아버지셨는데 저는 그렇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놓고는 제 아들이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 벌 받을 일입니다.
글을 쓰다 보니 아버지가 저에게 베풀어주셨던 사랑이 참 많았네요. 그런데도 저는 아버지 앞에서 늘 불효를 했고, 제 생각만 했습니다. 자식이 어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겠습니까? 그러나 자식이니까 부모에게 못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변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버지를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늘 아버지 곁에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겉돌기만 하는 자식들을 보시면서 마음 아프셨을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아버지가 무섭다고 생각했기에 아버지의 눈에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덕분에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저희를 가르치셨습니다. 사랑해 주셨습니다. 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아버지가 하나님의 나라로 가신지 40년입니다. 그동안 저도 비틀비틀 아버지의 걸음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아버지, 참으로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