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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을 통해 우리가 얻어가는 것

삶의 지혜 - 25

by 명형인

오늘은 조금 느슨해지려 합니다. 열심히라는 말의 정반대의 온도를 가지고 있는 단어는 쉼이라고 생각합니다. 쉬는 것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환경이 허락하지 못해 쉬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세상이 워낙 성과중심과 성공지향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쉼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느껴집니다. 저도 동일하게 겪고 있는 현상이니까요.


잠깐 쉬어가면 좋은 점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어 이번에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하던 것을 쉬면 '쉼'을 통해 우리가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잘 안 될 때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잘 나갈 때 결정을 내리는 걸 훨씬 더 신중해야 한다는 말을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보통은 잘 안되어 허덕일 때 결정을 하면 쫓기듯 결정을 하게 되니 실수 가능성이 커지는 점은 인정하는데, 사람이 잘 나갈 때에는 시간도 많고 물적인 자원이 넉넉해질 텐데 그때 결정을 더 조심히 해야 한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사람이 잘 나갈 때라는 사실 가정은 휴식을 취할 때랑 빗대어 생각해 보니 힘들 때와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이 잘 나가거나 사람이 쉬고 있을 때에는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여유가 생기고, 내가 오늘 무얼 할까 라는 결정권의 폭이 넓어집니다.


우리가 휴가철이 되는 순간 평소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출하는 이유기도 하겠죠. 평소보다 훨씬 많은 걸 하고 사람들이랑 좋은 시간을 모처럼 함께하다 보니 돈이 크게 드는 겁니다.


사람이 일에서 벗어나 시간과 여유를 갖게 되었을 때에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가짓수가 늘어납니다.

천천히 생각하고 무얼 할까?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비로소 내가 할 것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죠. 여유가 이렇게 사람들의 심리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칩니다.


평소에는 내가 밥을 뭘 먹을까? 고민을 하지 않고 그냥 무조건 맛있고 자극적인 거, 집과 가까운 식당을 찾다 보니 치킨, 고기, 돈가스 등 식사의 가짓수가 많지 않습니다. 귀찮음이 상당하신 분들은 아마 퇴근 후 라면이 일상일 수 있습니다.


휴가철이 되어 4일 휴가를 얻게 되면 사람이 완전히 변합니다. 내가 휴가기간 때 뭘 먹을까? 좀 건강한 음식 먹을까? 채소가 들어간 음식도 찾아보고 도시 바깥에 있는 맛집도 찾아보거나 요리할 수 있는 옵션도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음식의 선택 폭이 간편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자극적인 음식에서 건강식과 자연을 즐기며 식사할 수 있는 곳으로 확 넓어졌습니다. 이것이 '여유'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쉼을 통해 우리는 삶 속에 훨씬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선택지가 다양해진 만큼 그중에 진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숨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걸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에 잘 나갈 때 (여유가 생길 때) 선택을 잘해야 한다 라는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쉼은 생각보다 우리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이끌어줍니다. 아주 힘들고 궁할 때 잠시라도 일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할 때에도 동일한 자극을 줍니다. 이 부분은 글의 마지막에 좀 더 자세히 풀어보겠습니다.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더 잘 나온다


쉴 때 창의력이 풍부해진다는 점은 제가 창작자로서 여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시간에 2일을 연속으로 계속해서 쉬었습니다. 제가 좀처럼 쉬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이 닥친 상황이라 계속 마음이 불편했고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스스로 느껴서 특단의 조치로 일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일을 전부 던져버렸습니다. 제가 딱 1달에 1번 오는 그날이 마침 찾아왔고 억지로 일하면 상황이 악화되는 것도 싫었습니다.

일요일 날은 거의 잠을 많이 잤고 제가 먹고 싶었던 음식을 원 없이 먹고 밤 산책도 했습니다. 오늘도 월요일 눈뜨지 마자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고 택배를 다 보내다 보니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전에는 생각이 별로 안 떠오르고 대부분 뭘 해야 하지, 다음 업무는 뭘 해야 한다는 등 업무 관련 생각만 났는데 오늘은 좀 더 다양한 생각을 접했습니다. 진짜 쓸데없이 시시콜콜한 생각들인데요. 글로 쓸 수 있는 글감이 될 수 있는 생각들이 많았죠.

좋은 아이디어가 오늘 제일 많이 떠올랐습니다. 일이나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매여 끙끙댈 때는 현실적인 생각이 많았는데 일을 내려놓고 쉬니 비 현실적이지만 창의성이 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창작자들은 어느 정도 환경을 미리 대비하고 정리를 해 두고 창작활동을 준비해야 한다 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고통 속에서 작품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지속적인 고통과 고난은 창의력을 저해하는 사실도 분명히 팩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쉼을 통해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영감들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돈이 급하면 돈이 먼저 보이고, 사람이 급하면 사람이 먼저 보이고, 먹는 것이 급하면 먹는 궁리만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 안 풀리고 매일이 항상 똑같을 때에는 의도적으로 쉼을 갖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사색시간을 하루 일정에 추가해 두는 편입니다.


사색시간은 항상 루틴을 지키기 쉽지 않기 때문에 필요시 특단의 조치로 오늘처럼 하루 이틀은 일을 던져버리기도 합니다. 쉼은 창의성의 근원입니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된다


쉬어가는 시간을 우리가 천천히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쉬는 시간을 흘러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걸어가며 그 시간을 따라간다고 느낍니다.

스마트폰이 발명됐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쉼을 그저 시간을 흘러 보내는 듯 편안히 쉬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저도 스마트폰을 일부러 멀리하거나 꺼놓고 쉼의 시간을 가지는데, 그때만은 내가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역으로 내가 시곗바늘 초첨을 째깍째깍 따라가면서 시간을 보내는 느낌입니다.


시간을 내가 천천히 느긋하게 따라가는 겁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본인의 시간을 필요 이상으로 추월해 빠르게 살아왔다는 반증입니다. 저도 제 주어진 24시간이 있는데 일하고 공부하고 살아온 건 48시간을 보낸 것 같으니까요. 그래서 쉬는 동안은 내가 내 시간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지루하고 어떻게 보면 고요한 쉼을 깨버리고 싶습니다. 다시 스마트폰을 들어 평온함을 깨부수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의도적으로 꾹 참고 내 시계를 천천히 내가 따라가다 보면, 내 주변을 내 눈으로 천천히 살펴보게 됩니다. 사실 지루해서 뭘 할 게 없으니 주변을 살펴보는 겁니다.


주변을 보는 순간 내가 평소에 주변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지하철을 탈 때에도 솔직히 사람들 옷차림 본 사람들 몇 명 있을까요? 쓱 하고 빠르게 훑어 본 사람들은 계시겠지만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겠구나 신발도 어떤 차림인지 유심히 볼 시간은 없었을 거예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구나, 나랑 비슷한 사람들부터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얼굴만 봐도 이 사람은 기분 좋은지 침울한지 알 수 있거든요.


가게를 지나가다 보면 이런 게 유행이구나, 실제로는 유행인데도 사람들은 유행과 달리 이런 걸 꾸준히 찾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자동차를 봐도 내가 잡지에서 맨날 보며 열광하는 명품 차들보다 더 많이 보이는 차들이 있습니다.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왜 세상 돌아가는 것에 무딘지 아시겠죠?


주변을 돌아보면 뉴스나 SNS에서 접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반응은 항상 SNS 보다 눈에 딱 보이는 게 더 빠르니까요.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출퇴근길에는 그저 평범했던 길인데
새롭게 보이는 경험을 합니다.

쉬어가다 보면 이렇게 안 보이는 부분이 많다는 걸 깨닫습니다. 사람들과 모처럼 인사를 건네고 가족들을 만나다 보면 모르는 것도 알게 되니까요.

내가 쉴 수 있는 휴식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으면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딱 스마트폰이 전송하고 꾸준히 주입하는 디지털 세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휴식시간에는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을 멀리합니다.

릴스나 숏폼도 일하는 시간에 아이디어 차원으로 보는 것 만으로 충분힙니다.


쉼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좋은 것들을 3가지 나열하고 글을 마무리하니 이 생각이 떠오르네요.

쉬는 것을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거부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쉼을 표현하는 것들은 대부분 안 좋은 것들이었으니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나, 악마들 중 대표적인 악마로 알려진 이름들을 찾아보세요. 신화나 설화 속에서도 쉼과 휴식에 관련된 것들은 안 좋은 존재로 많이 등장합니다. 동양에서도 쉼은 안 좋은 쪽으로 터부시 되었습니다. (저도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알면 알수록 역사와 인간들의 삶을 기록한 문헌들은 참 재미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농경사회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큰일 나기 때문에 당연한 부분이었지만 요즘은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바쁘게 지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적당히 휴식을 취함을 추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저도 요즘은 쉬는 게 나쁘지 않습니다.


지친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쉼을 얻어가셨다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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