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햇살은 따뜻하지만 쌀쌀한 바람이 여전히 뺨을 할퀴는 2월의 어느 날, 나랑 그이는 첫 데이트를 했다. 꽃을 시샘하던 찬 바람이 우리의 연애도 질투하는 듯 매섭게 불어댔는데, 붕어빵과 호떡이 추위를 녹여주었다. 한국 호떡과 붕어빵은 미국에서 인기쟁이가 될 수 있는 마법 주문 같은 음식이다. 그가 내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마법 주문을 나에게 걸었다.
“추운데 호떡과 붕어빵 먹으러 갈까?”
천 원짜리 지폐 두어 장이면 먹을 수 있는 호떡과 붕어빵이 그땐 왜 이리 좋았는지, 그는 천 원 두어 장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단지 한국의 겨울철 먹거리만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아니다. 사랑은 그에 대한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었다. 우리는 같은 언어로 말했고 서로 잘 통한다고 믿었다.
그이는 나의 한국사 박사님 같은 존재였다. 내가 궁금해할 때마다 그는 한국 문화재부터 역사와 유래까지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대학교 시절 누군가가 문화와 역사 이야기로 외국인에게 호감을 살 수 있다며 떠벌리던 게 기억이 났다.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넘어가겠냐며 반론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우스웠다.
그 남자의 연애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그가 날린 낚싯줄에 달린 미끼를 덥석 문 물고기가 나일 줄 누가 알았겠나. 그의 구애에 넘어가지 않겠다 굳게 결심한 사실이 무색하게도, 데이트 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난 그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내가 착하고 사려 깊은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다. 보통은 그가 한국 역사를 꺼내 늘어놓으면 다른 사람들은 지루해하는데 나는 끝까지 경청해서 들어줬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듣자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 사람과 오래 연애를 하니 이제는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잠들 뻔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훈장님과 서당개 이야기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가 모른다고 고개를 내젓길래, 내가 훈장님은 계속해서 연설만 늘어놓으니 학생들은 지루해서 죄다 도망가버리고 서당개만 마당에 남아 있는 모습이 오빠랑 나 같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이는 자기가 그 정도는 아니라며 의아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한참을 속아 넘어간 모양이다. 그도 나에게 홀라당 속아버린 사람이지만—
“난 오빠가 훈장님처럼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줄 몰랐지.”
첫 만남 이후 함께 데이트하며 서로를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화가 잘 통하고 내가 가진 미국 문화를 수용해 주는 듯한 그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행복했지만 동시에 빠져나올 수 없었다. 나는 이미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였다.
우리의 무대는 서울이었다. 돌담과 기와, 역사의 그림자 사이를 손잡고 걸었다.
전쟁기념관부터 서대문형무소, 여러 개의 역사박물관과 미술관을 섭렵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합이 잘 맞는 커플이었다.
여기서 누가 누굴 낚았다고 생각하시나. 이건 지금도 계속되는 우리 커플의 논쟁거리다.
내가 그를 낚았는가.
그가 나를 낚았는가.
서로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다. 사랑 앞에서 끝없이 유치해지는 서로를 바라보면 웃음이 난다. 우리 둘 다 영락없는 도토리와 헤이즐넛인데 말이지.
도토리는 옆으로 통통하고 헤이즐넛은 위로 홀쭉하지만, 크기는 비슷한 견과류 열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꽃이 피고 푸르른 여름이 찾아올 즈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우리의 연애는 사계절을 따라갔다.
꽃이 한창 피는 따스한 봄철, 우리는 즐거워했고 여름이 되자 감정이 깊어졌다. 우리의 사랑은 꽤 오래갔다.
나랑 그이의 눈에 낀 콩깍지가 벗겨지기까지 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보통은 1년 만에 콩깍지가 벗겨져서 심하게 싸운다고 하던데, 나랑 그이는 콩깍지가 눈에 씐 게 아니었다. 도토리 껍질이 단단히 눈꺼풀을 덮은 거다. 첫 싸움 발발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눈에 씐 껍질이 하도 단단해서 서로의 눈을 보호해 준 모양이다.
우리는 처음으로 사소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문화 차이 때문에 싸웠다. 각자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었고 현실은 달랐다. 상대방이 ‘아’ 하면 ‘아’라고 이해하고, ‘어’ 하면 ‘어’라고 이해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나는 그가 ‘아’ 하니 ‘이’라 하고, 그는 내가 ‘어’ 할 때 ‘요’라 대답하는 셈이었다. 서로를 알면 알수록 부딪히는 안 보이는 문화 장벽을 크게 느꼈다.
바닷속에서 서로 다른 물결이 부딪히듯,
우리의 사랑도 충돌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잘못된 타깃을 낚은 낚시꾼 같았다. 낚시터에서 물고기를 낚아야 하는데 우리는 상어를 낚아버린 거다. 낚싯줄 끝에 물고기가 아닌 상어가 걸려 있을 때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모른다. 사랑은 예측 불가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우리 커플에게 갈등과 싸움이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서로 싸우고 소리 질러도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이빨이 날카로운 상어가 살점을 물어뜯듯, 서로 내뱉은 거친 말들은 가슴을 후벼 파고들었다.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3년 내내 계속 싸웠다. 그렇게 6년 동안 소란스러운 연애를 했다.
서로 장점으로 보았던 것들이 단점이 되기 시작했다.
모르는 게 없었던 나의 한국사 박사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이는 내가 경복궁으로 놀러 가자고 하면, 마치 집 안방으로 여행 가자는 말을 들은 듯, 미적지근한 표정을 지었다. 안방에 돗자리를 펴놓고 놀자 하는 거랑 똑같다며 당혹스러워하는 그이의 표정을 그때 처음 보았다. 나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경복궁을 질리도록 방문했었다. 내가 고궁을 좋아했기 때문에 일부러 경복궁에 함께 가 준 거였다. 사랑의 힘으로 지겨움을 극복한 그에게 지금은 박수를 쳐주고 싶다.
반대로 그 사람은 내가 10차원일 줄 몰랐다 한다.
생일 기념으로 그를 놀라게 하려고 일부러 얼굴에 주황색 페인트를 칠하고 주황색 쫄쫄이를 입고 서프라이즈를 했는데, 충격을 크게 받은 것 같았다. ‘10차원’이라는 말이 욕처럼 들린다고 그에게 말했더니, 욕이랑 칭찬은 한 끗 차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돌려서 욕 한 게 분명하다.
그는 나를 알면 알수록 생소한 문화와 언어의 벽에 부딪혔다. 한국에서는 욕먹을 일이 미국에서는 정상이고, 반대로 미국에서 불편한 일들이 한국에서는 당연한 경우가 많았다. 내가 분장을 한 모습이 그의 입장에선 4차원을 뛰어넘은 모습이었다. 지금은 그가 상황을 유쾌하게 넘어가 준다.
그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여전히 많았다. 한국을 책으로만 배웠던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연애 초기 때, 비 오는 날에는 항상 울적해지기 일쑤였다. 사랑이라는 안전지대가 흔들리는 순간, 내 마음속에 혼란이 먹구름처럼 드리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