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관계를 개선시키고 싶었던 우리는 각자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오빠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지인과 일본 여자랑 결혼한 직장 동료에게 조언을 얻었다. 나는 한국 역사에 대한 책을 열심히 독파했다. 역사를 알면 문화에 대한 실마리가 보일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오빠랑 달리 나는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어 책을 통해 답을 찾아야 했다.
처음에는 책 보다 사람을 통해 조언을 구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내 잘못이라고 말했고, 미국 친구들은 오빠를 특이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내 친구들은 별거 아닌 걸 너무 싸움으로 만들면 너만 힘들어진다며 나를 지지해 주었다. 미국과 한국 문화 차이가 크다는 걸 실감하니, 조언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책을 읽는 게 더 나았다.
오빠는 지인들을 통해 “문화 차이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이해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단다. 미국에서 온 지인은 우리가 싸운 이야기를 듣더니 여자친구가 문제가 있기보단 문화가 달라서 그렇다며 담담하게 말해주었다. 미국인들은 감정을 달래줄 때도 있지만, 감정에 깊이 들어가기보단 상황을 정리해 안정시키는 쪽에 더 가깝다.
미국 지인은 우리 커플이 겪을 고난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본 여자랑 결혼한 또 다른 지인 한 명은 상대방을 혼자 두거나 소통을 멈추면, 더 큰 오해가 생겨 관계가 깨질 수 있다며 조언해 주었다. 지인들을 통해 그는 국제연애가 상당히 힘들다는 현실을 맛보았다.
각자 열심히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를 공부하니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특히 오빠는 나를 외국인이라 생각하고 상황을 바라보니 편안해졌다. 나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조심히 움직이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나보다 오빠가 해야 할 게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오빠가 더 힘들어 보였다.
왜 서로 이렇게 힘들까?
우리가 겪은 일은 개인 성향과 문화가 겹친 결과다.
고맥락 문화는 간접·비언어적 의사소통을 중시하고, 저맥락 문화는 직접·명시적 언어를 선호한다. 그가 고맥락 언어를 쓰고 나는 저맥락 언어를 써서 충돌이 생겼을 뿐. 성별보다 문화와 상황이 먼저 작동했다. 같은 말을 써도 맥락을 읽는 방식은 다르다. 미국 친구들이 오빠를 특이하게 보고, 한국 사람들은 내가 과하게 반응한다고 말한 이유도 맥락의 문화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은 저맥락을 중심으로 말한다. 문제 발생 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명확히 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기분은 잠깐 제쳐두고 일단 이야기부터 하자’는 태도가 자연스럽다. 대화로 정리하는 것이 관계 유지를 위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1. 갈등은 감정이 아니라 “문제 해결 대상”으로 인식.
2. 직설적 표현(Direct communication)을 선호.
3. 침묵·거리두기·애매한 표현은 “부정”이나 “관심 부족”으로 받아들임.
4. 상대를 오해시키지 않는 게 예의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서 불편함도 말해야 한다고 본다.
오빠가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힘들다고 말하면 내가 속상할까 봐 침묵한 것이 싸움의 불씨가 되었다.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기에, 당연히 소통해야 한다 믿었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날 신뢰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서운함이 밀려왔다. 배려보단 선 긋는 것으로 와닿았다.
특히 나는 말을 들여다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숨겨진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이 사람은 왜 자꾸 숨기려 할까?라는 의심의 싹이 튼 것 같다. 사랑한다는 말만 잘하고 다른 건 침묵하는 바람에 가벼운 사람으로 보였다.
그가 나에게 상황을 솔직하게 말해주었을 때, 내가 기뻤던 이유도 문화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이 사람이 드디어 나를 신뢰하고 믿어주는구나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도 적극적으로 동참할 생각이었다. 나에겐 솔직함은 나약함이 아니라 신뢰였다.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땐 감정이 올라오기 전에 빨리 불을 끄려고 했었다. 싸움은 오래 끌고 싶지 않았고, 감정이 건설적인 대화를 방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상대방도 절대 물러서지 않거나, 내가 설득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도저히 말이 안 통한다는 판단이 들 땐 침묵도 방법 중 하나다.
미국은 상대방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으면, 침묵할 경우 각자 갈 길을 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견을 부정하는 말은 미국에선 금기사항이다.
대화로 해결할 수 없을 땐 상대방에게 양보하는 일보후퇴 전략을 자주 사용한다. 저녁 메뉴를 정할 때 의견 통합이 잘 안 되어 내가 한발 물러선 이유기도 하다. 오빠가 절대 치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양보했었다. 그에겐 내가 양보를 한 게 오히려 거절처럼 느껴져 서로 엇갈렸다.
미국은 말을 해야 문제가 해결되는데 한국은 말을 아껴야 관계가 지켜진다. 이건 한국 전체를 묶으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경험한 맥락을 설명하는 일이다.
한국에선 고맥락을 중심으로 말한다. 갈등이 생겼을 때 즉각적인 해결보다 기분을 가라앉히고 흐름을 지켜보는 방식을 선호한다. 대화의 절반 이상이 표정·상황·관계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말 보다 유대감을 중요히 여긴다.
1. 직접적인 말은 부담·압박·예의 없음으로 해석되기 쉬움.
2. 거리 두기와 침묵은 배려로 생각함.
3. 상황이 안정된 뒤에 말하는 걸 예의로 여김.
4. ‘이 정도면 알아야 한다’는 전제가 강함. 전부 말하는 건 오히려 관계가 악화될 수 있음.
오빠의 경우, 대화를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갈등을 다루려 했다. 감정이 더 올라가기 전에 서로 시간을 두는 게 배려라고 여겼다. 하지만 말이 끊기는 순간 나는 오히려 버려지는 기분이었다. 나에겐 관계가 멀어진다는 신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빠는 ‘그 정도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에둘러 말했는데, 나는 그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내 표정이나 분위기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했었다. 나는 그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불편했다. 감정 보다 상황이 먼저 정리되길 기다렸던 그와, 숨은 맥락을 읽어낼 자신이 없었던 나는 애초에 출발점부터 달랐다.
서로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른 맥락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셈이다.
서로 해석하는 방법이 달랐지만 대화 코드도 무시할 순 없었다. 문화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람이 서로 통하려면 같은 코드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머 코드가 다르면 코미디 영화를 볼 때 같은 타이밍에 함께 웃기 어렵다. 대화 코드도 마찬가지다. 각자 갖고 있는 코드가 달라서 서로 공감하기 어려웠다.
시간을 들여보니, 문화는 이해의 대상이라기보다 지나가야 하는 풍경에 가까웠다.
여기서 우리가 느낀 점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문화 장벽은 부술 필요가 없었다. 강 건너듯 넘어가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