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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쉽게 말하지 않는 사람

3화

by 명형인

그날 이후, 나는 사랑이 말보다 오래 남는다는 걸 알았다.
사랑을 표현하는 건 상대방에게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 주는 것 같다. 사랑이 담긴 말은 아름다워 받는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사랑에 빠진 얼굴은 손에 들고 있는 꽃보다 더 환히 빛나기에 애정표현은 사랑 이야기의 오랜 단골손님. 그이는 내 인생에 찾아온 임이었다.


그는 나에게 아침이었다. 매일 아침, 그가 보내온 첫 문자엔 늘 ‘사랑해’가 있었다. 다른 건 말수가 적었지만, 사랑 표현만큼은 나에게 아낌없었다.
출근한 후 문자로 나에게 사랑한다 말했고, 점심에도 사랑한다, 저녁에도 사랑한다. 나는 삼시세끼 먹듯 사랑한다는 말에 든든했다.


그와 달리 나는 늘 ‘좋아해’를 달고 살았다.
내 가족들에게는 ‘사랑한다’ 표현을 잘했지만, 오빠에겐 아꼈다. 내가 좋아한단 말에 그는 종종 혼란스러워했다. 그는 나를 든든하게 해 줬는데 난 그를 불안하게 만든 것이다. 언젠가 그가 나에게 자기를 왜 만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넌 내 어디가 좋아?”

“놀 땐 장난 잘 치고 재밌고 일할 땐 책임감이 강해서 좋아.”

“그렇구나. 알겠어.”


알겠다는 대답과 달리 그의 아랫입술은 빼죽 튀어나왔다. 나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상황엔 문화 차이가 있었다.


서로 생각하는 ‘사랑해’와 ‘좋아해’의 온도는 달랐다. 좋아한단 말엔 사랑이 한 톨도 없을까? 의미는 넓고 사람 마음은 복잡해 단정하기 어려웠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나는 가끔 사랑한다고 말해 주지만 오빠를 따라가진 못한다. 좋아한단 말은 잘하는 편이다. 어떻게 보면 오빠가 내 가족을 부러워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가족에겐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으니까.

그이는 내가 사랑한다고 자주 표현하지 않는 걸 아직 가족이 되지 못한 거라 여겼다. 반면에 나는 강아지 같은 그 모습을 보고 문제없다 생각했다. 아직 결혼한 사이가 아니니 괜찮은 줄 알았다.



의사 표현을 잘하는 내가 오빠에게 감추는 것이 있다면 사랑한단 말일 것이다.
달맞이꽃이 환히 들어오는 볕 아래 숨을 죽이듯 사랑 앞에 한 발 물러섰다. 사랑에 무게를 매긴다면 어디까지 갈까. 사랑고백을 가벼이 않았다.

난 이 사람과 진지하게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은 관계의 연장선. 난 그랑 결혼하기 전까지 ‘사랑해’를 아꼈다. 열심히 표현해도 남이 되면 무슨 소용일까? — “사랑해”는 신성이 깃든 말과 같다. 말할 때마다 내 인생 다음 장으로 가는 막을 들어 올린다. 지금 관계에서 더 나아가기 위해선 속도 조절이 필요했다.


사랑을 간단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진중히 대하고 싶었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다면, 평생 갈 사람에게 내 남은 횟수를 사용하고 싶었다.


“좋아해”라고 말할 때마다 내 두 뺨은 봉숭아 꽃 물들였다. 마음보다 말이 그에게 먼저 닿았는지— 그는 내 사랑을 애정의 온도로 받아들였다.

수줍은 한 떨기의 꽃도 꿀벌을 만나지 못하면 다음 날 땅에 떨어질 잎사귀에 불과하다. 꿀벌은 엉뚱한 꽃을 찾아 헤매며 “네가 내 사랑이니? 저가 내 사랑이나?” 찾아 길을 잃었다.


“넌 정말 나를 사랑해?”

“응”

“진짜..?”



그 말을 듣는 순간, 출구가 없는 미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오빠의 진심을 모른 채 같은 길을 빙빙 도는 것처럼. 그의 말이 너무 잦아서 오히려 마음에 와닿질 않았다. 말 속에 묻힌 듯했다.


“함께 있어주고, 칭찬을 듬뿍 해주는데 왜 모를까? 사랑한단 말도 가끔 해주는데”


단지 사랑을 받았을 뿐인데 오히려 그에게 확신을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혹감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사랑한다면서 침묵하는 그의 모습이 모순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줬던 사랑을 다시 내놓으라 하니 일관성이 없다 생각했다. 사람 마음이 그리 단순하지 않아 헛된 바람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게 기대를 걸게 된다.
사랑이 기대하게 만들고, 기대에 부푼 마음이 오히려 틀림을 찾아 끄집어내게 된다는 사실을— 그때의 우린 왜 몰랐을까.


상대방이 틀렸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처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비유하자면, 새벽은 언제나 가장 어둡다. 해와 달이 지구에 가려져 빛이 들지 않으면, 잠깐 서로를 놓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만나지 못한 해와 달처럼 나랑 그이는 다른 곳을 바라봤다.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흑백처럼 서로 틀렸다 생각했다.


나는 그가 표현하는 건 당연히 좋은 거라 했고, 연애와 결혼은 다른 삶의 연장선이니 언어는 무게를 두어야 한다 말했다. 그는 내가 잘 파악해서 움직여야 한다며, 연애와 결혼은 같은 감정에서 시작하니 애정 표현은 많을수록 좋다 했다. 서로 원하는 모습이 되려 노력했지만 바람처럼 잘 되지 않았다.
서로 상대방에게 기대를 걸기 시작하고, 각자의 바람은 왜곡되었다.


우리는 모두 눈뜬장님이었다.
다른 점을 ‘틀림’이라고 여겼기에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진실을 보지 못했다.

사랑은 바로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먼 길을 돌아가야만 했다.


해와 달빛이 잠깐 만나는 지점이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놓쳤다. 서로 끼워 맞춰야 사랑이 완성된다는 착각에 빠졌다. ‘틀림’을 제대로 바라보면 '조화'가 될 수 있단 사실은 참 불친절했다. 그때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해가 달을 껴안는 개기일식을 몇십 년째 기다리듯, 우리 둘 다 애가 탔다. 한 계절이 일 년 같았다.


우리는 각자의 ‘틀림’을 극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서로 한 발 물러서 원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제야 미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언어는 통했지만 마음은 늘 반 박자씩 어긋났다.

그 어긋남을 채우려 할수록 ‘공감’은 더 멀어졌다.

어쩌면, 그 거리 자체가 사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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