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언어는 양날의 검이다. 비단 언어를 쓰는 것뿐만 아닌 상대방의 말을 마음 깊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모난 덩어리를 온몸으로 품는 일이다.
말은 이성과 감정이 뭉친 덩어리다. 누가 더 나은가? — 이 질문을 마주하기 두렵다.
각자 서로를 마주 보며 덩어리를 들고 있다 상상해 보자. 네모난 말은 품을 때마다 사방을 후벼 파고, 세모난 말은 위로 뾰족해 껴안으면 얼굴을 찌른다. 누가 더 아프다 하기 곤란할 지경이다.
우린 한국에서 만났다.
여기선 한국 문화를 따라야 한다는데, 내겐 그 말이 바늘귀 같다. 너무 좁아서, 통과하려 하면 내가 찢어진다.
연애하면서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진 않았다.
아프면 아프다 말해야 하는데, 그이는 항상 목 밑으로 감정을 삼켰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배려의 언어는 나에게 낯설었다. 그가 꿀꺽하고 말 하나하나 머금을 때마다 난 마음속에 불안을 하나하나 쌓아왔다.
쌓인 말이 빠져나오지 못해 가슴이 근질거렸다. 긁어도 닿지 않는 불쾌함이었다. 그날, 난 ‘괜찮다’는 말 한마디를 믿고 그를 그대로 두었다. 존중이라 착각했다. 덮어둔 마음 위로 천이 휙 젖혀지듯, 그의 한마디가 날 놀라게 했다.
“되게 서운하네!”
오빠가 나에게 큰 불만을 표현했다.
현관문은 큰 소리 내며 부딪혔고, 발소리는 멀어졌다. 무심한 내 모습에 그가 터진 것이다.
그는 내가 본인의 배려를 완전히 무시했다고 말했다.
내가 눈치껏 위로해 주긴커녕 괜찮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으니 짜증 난다며 폭탄을 던지고 나간 거다.
‘아니 이게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처음 닫힌 날, 난 그이에게 아무리 답답해도 문밖으로 나가는 순간 관계는 흔들릴 거라 말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는 내 엄포가 통하지 않았는지 쉽게 문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저 사람이 기어이 미쳤다 단정했다.
‘대화해도 듣지 않을 것 같아서’ ‘대화하기 힘들어서’ '내가 대화가 익숙하지 않아서’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줄줄이 나왔다.
근데,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내 의문도 함께 불어났다.
오빠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서로 대화해야 부딪히든, 서로 반박하든, 여러 가지가 생길 수 있는데 인과관계를 완전히 뒤집은 상황이었다. 대화를 먼저 해야 하는데 행동이 나왔다.
그의 배려심은 나에게 너무 무거웠다. 집을 나가버린 그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질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희어졌다. 마음은 나와 그 사이의 거리와 같다.
이 상황은 미국에선 상상할 수 없다.
얼마나 아기 같은 행동인지 그를 있는 사실 전부 끄집어내 비난하고 싶었다. 답답함이 내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한 사람을 응징해 앙갚음하고 싶어 하는 악마 같은 내 모습을 보고 부끄러웠다. 사람이 악독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숨겼지만 실패했다.
설득이나 회유가 씨알도 먹히지 않는 모습을 보고, 제 발로 나간 그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갔다. 어르고 달래기를 그만둔 것이다. 두 달 내내 그를 차단하고 내 일상에서 지워버렸다. 슬슬 내가 처한 상황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안전하다고 느끼는 나라를 떠나 한국에 와서 깊은 암흑 속으로 미끄러졌다.
언어 속에 담긴 의미를 예상하기 어려웠다. 촉이 전부 비껴간 과녁처럼.
한국이 어찌나 좁은지, 가끔씩 모임이나 사회생활 속에서 그랑 마주칠 때가 있었다.
이럴 때마다 좁아터진 곳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내 시선 안에 들어오려 애쓰는 그의 눈은 어쩜 처량해 보이는지. 측은함을 애써 누르고 시선을 회피했다. 마주칠 때마다 반가움과 괘씸죄가 계속 충돌했다.
마음에 제멋대로 뛰어,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조차 헷갈렸다. 이 원수는 내 마음을 알려나 모르겠다. 모르면 좋겠다. 아니, 몰라야 만 할 거다.
그래야 내가 힘껏 오래 굴려먹을 수 있는데 말이지. 내 인생 처음 악마를 불러들인 남자다. 괘씸한 마음이 자꾸 솟아 나왔다. 난 그랑 헤어졌다 생각하고 그가 다가올 때마다 무시하기 바빴다.
굳은 내 얼굴을 보고 보호본능을 부르는 측은한 연기가 소용없다는 걸 알았는지, 오빠는 전략을 바꾸기 시작했다— 매일 밤 내 집 문 앞에 선물을 조용히 두고 가기 시작했다. 선물을 열어보니 쏟아진 자질구레한 과자와 초콜릿. 고작, 이 달콤한 걸로 내 기분이 풀리려나?
단언컨대 과자 같은 것에 넘어간 게 아니다.
그가 물에 흠뻑 젖은 강아지처럼 보였기에 한 번 눈감아주기로 결심했다. 3개월 만에 우린 함께 식사했다.
나는 그에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오빠는 처음으로 해고당했을 때 괜찮다고 했어.”
“두 번째 괜찮아를 들은 날엔 오빠 할머니가 돌아가셨지.”
“지금도 오빠는 안색이 나쁜데 괜찮다 말하고 있어. 세 번째야.”
이 정도면 새빨간 거짓말이다,라는 게 요점이다.
내가 세 번이나 반복했음에도 침묵은 이어졌다.
듣는 둥 마는 둥 속을 알 수 없는 그의 표정이 내 마음을 멱살 잡고 흔들었다.
나도 침묵하기 시작했고, 정적이 꽤 오래 흘렀다. 화가 많이 난 상태였지만 서로 참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힘껏 질렀다.
“말을 해야 알지! 오빠는 내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어. 내가 무슨 탐정이야?"
술 마신 것도 아닌데 내 얼굴이 인생에서 제일 벌게진 날이었다. 화에 취해 버렸다.
속없는 말이 터져 나왔다.
오빠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아기 같은지 알려주려고 짧고 강렬한 한 마디를 던졌다.
“가출하는 것은 어른답지 않아. 난 너의 엄마가 아니야.”
3분이 3년 같은 순간 — 그가 골똘히 생각하다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내 말 듣고 나 혼내면 안 돼. 알았지?”
아니, 누가 누구를 혼낸다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말 하나가 혼날 만큼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는 건가 의아한 분위기 속에서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내 직장에서 조금 문제가 있어서… 내가 힘든 상황이야. 너랑 연애하면 내가 사줘야 하고 좋은 거 해주고 싶은데 지금 좀 힘들어.” 이 말 한마디가 나한테 시원한 냉수 한 잔 같았다.
너무나 갑갑하던지 고구마를 천 개쯤 먹고 있었는데 드디어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셔 속이 트였다. 나는 있는 힘껏 그의 등을 짝하고 때렸다.
“아, 진즉 말하지! 직장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누가 오빨 괴롭혀?”
솔직히, 난 자세한 사정도 모르고 지금까지 그가 사준 선물을 웃으며 받은 호구가 된 기분이었다.
'아, 선물 받지 말걸.'
집에 있는 선물들을 전부 팔아 지폐를 그이의 손에 쥐여줘도 모자랄 판이었다.
깜짝 놀란 그가 반사적으로 되묻기를, “화내는 거 아니었어?”
순간 냉수 한 잔으로 트인 속에 다시 고구마가 쌓이는 느낌이었다. 내 인내심이 시험받았다.
“아니, 이게 왜 화낼 일이야? 오빠가 피해자. 직장이 가해자. 내가 피해자를 혼내?”내가 쏘아붙이니 그가 응수했다. “데이트하려면 돈 써야 하는데 쓰지 마? 난 널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어.”
이제야 남자친구가 나를 배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빠, 내가 돈 쓰면 되지!”
그날 그의 발걸음은 훨씬 무거워져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쿵쿵 울렸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내려앉은 것 같았다. 오빠 발소리는 평소 무겁지 않은데 나 들으라 하나. 나는 그를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어 오빠 어머님께 문자를 드렸다.
어머님을 만나 뵈었을 때 받아놓은 번호가 빛을 발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오빠 직장에 문제가 좀 있는 모양인데요. 직장에서 제공해야 할 소모품을 사비로 구입하는 것 같아요. 낯빛이 요즘 안 좋아 걱정되어 어머님께 알려요.”
전송 버튼을 누르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1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 나는 안도했다.
그 후 둘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오빠가 한동안 조용했었다. 앞으로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을 가졌고 다가오는 날, 그는 결단했다.
직장을 떠났다. 미련을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아직도 그가 괜찮다며 말하는 날엔 내 마음속에 긴장감이 돈다. 미국에선 표현하면서 살아왔고, 말하지 않으면 오히려 얼간이 취급을 받았다. 표현은 곧 내 권리이자 방패다.
나는 끊임없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살아왔고 그는 반대로 껍질을 몸에 둘러 자신을 지켜온 것이다. 한국에서 의사 표현하는 사람은 꼬투리를 잡히기 쉽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환경에서 자라왔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해 왔을까.
돌아오는 주말, 그이는 맥주 거품을 인중에 묻힌 채 나에게 긴 이야기를 토해냈다. 학창 시절부터 사회생활까지 — 그도 나름 살아내려 발버둥 친 사실을 미처 몰랐다. 맥주를 마시면 그는 수다쟁이가 되었다.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참 신기한 일이다. 미국에서 영어를 모르는 동양 여자로서 거친 세상 속 살아남은 내 영웅담도 경청해 주었다. 학생 때 처음으로 비꼼을 당해 부끄러웠지만 당당히 맞받아칠 때 미국 친구가 생긴 희열을 함께 공유했다. 슈퍼히어로가 된 기분이었다.
미국에선 화끈해야 살아남기 쉽다.
그를 만난 이후로 화끈함은 무슨, 도를 열심히 닦고 있다.
지금은 그가 괜찮다고 할 때마다 “아~ 무슨 일이 있었구나. 그래도 날 배려해 주네.” 하며 요리를 해주거나 피곤하니 잠 푹 자라고 어깨를 두드려주면 효과가 좋다. 그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한참을 기다리면, 돌아와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해준다. 마침내 득도했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배워갔다.
인내심을 조금 더 기르면 되는 것을 —
가끔 괜찮아가 다시 불쑥 고개를 내밀 때마다
“안녕, 기분은 어때?”
라고 반기면 금세 수그러들었다.
그는 여전히 괜찮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이 무섭다.
그래도 듣는다. 이번엔 도망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