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에게서 도스토옙스키를 보다
죄를 저지르는 것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지만, 죄의 용서와 구원을 받는 일도 이 문에서 저 문으로 '넘어서야!' 되는 일이다.... 무엇이 그를 살인 행위로 이끌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자기 자신의 비참하며 의지할 데 없는 처지가 원인이며..... 요컨대 자기가 사람을 죽이려고 결심한 것은 원래 경솔하고 소심하며 가난과 실의 때문에 한층 불안해진 탓이라고 덧붙였다.
인생은 인간의 의지대로 풀리지 않는다. 뜻밖의 사고와 파산, 재난과 질병과 천재지변은 인간의 의지와 별 관계가 없다. 자신이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지하 생활자의 모든 시도는 실패한다. 그는 아무것도 의지대로 하지 못한다. “나는 사악했을 뿐 아니라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다. 악한 자도, 선한 자도 비열한 자도, 정직한 자도, 영웅도, 벌레도 될 수 없었다.”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민음사
개인의 자유의지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지하 생활자는 “2x2=4”라 명명한다. 그것은 인간이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변하지 않고 변할 수도 없고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법칙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진리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운명, 혹은 자연의 법칙을 의미할 수 있다. 생로병사일 수도 있고 생물학적 결정론일 수도 있다. 그것은 철옹성이다. 이 철옹성을 향해 지하생활자는 인간의 불합리한 욕망을 가지고 돌진한다. “모든 게 도표와 수학에 따라 진행되고 오직 ‘2x2=4’만이 주위에 있을 때 인간 자신의 의지라는 것은 어디 있는가?
나는 당신들이 감히 절반도 실행할 엄두조차 못 낸 것을 극단까지 밀고 나갔다. 당신들은 비겁함을 상식으로 간주했고 거짓으로 스스로를 위로해왔다. 그래서 당신들에 비하면 내가 더 살아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자세히 봐라! 결국, 오늘날 우리는 정확하게 이 ‘살아있는 삶’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그것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나는 닭장을 궁전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 년 동안 임대해 살 수 있고 치과 의사의 이름이 씌어 있는 간판이 달려 있는 아파트의 건축 계획을 내 욕망의 왕관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겠다. 나의 욕망을 분쇄하라. 나의 이상들을 말살시켜라」
<지하생활사의 수기>. 문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