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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는 사람 Feb 08. 2020

나의 해고, 너의 보너스-내일을 위한 시간

‘내 일(job)'과 ‘내일(tomorrow)’ 을 위한 시간

나는 직원이 16명인 소규모 공장에서 태양 열판을 만드는 공장 노동자다. 오늘은 두 달의 병가 휴직이 끝나기 전의 마지막 토요일이다. 출근을 이틀 앞둔 나는 비몽사몽간에 직장 동료의 전화를 받았다. 나에 대한 해고 투표가 오늘 있었고 동료 16명 중 14명이 내 해고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한다. 자다가 날벼락 맞는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이틀 뒤 갑자기 실업자가 된다는 소식만으로도 땅이 꺼지는 일인데 내 동료 중 단 두 명만이 해고 반대를 했다는 사실이 더 아프다.


상처와 배신감에 몸을 떨고 있는데 ‘14명의 찬성’은 부정 투표의 결과라는 얘기를 새로 전해준다. 사측이 경영상 어려움을 내세우며 동료들에게 적지 않은 ‘특별 보너스’와 ‘나의 해고’ 중 하나만 선택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준 동료는 이것은 투표 부정 개입과 협박이니 이를 항의, 무효화하고 월요일에 재투표를 할 거라 했다. 16명 중 과반수만 나오면 복직될 수 있고 아직 ‘이틀의 낮과 하루의 밤’이 남았다, 자신은 반대표를 던질 테니 나머지 ‘7명’의 반대표를 모아보라고 한다.

나는 아무런 전의도 일어나지 않는다. 완전한 의욕 상실과 낙담에 빠졌다. 나 대신 보너스를 택한 동료들에게 ‘돈을 포기하고 나를 구해 줘’라는 말을 어떻게 하냐. 마지막 남은 티끌만 한 자존심이라도 지키고 싶다. 이대로 순순히 해고 수용을 하는 게 지금의 최선이다. 그럼 다음 달부터 주택 대출금은? 이러다 대출금이고 공과금이고 연체되다 보면 그 좁고 남루한 임대 아파트로 다시 돌아가야 하겠지? 가족은 다시 그곳으로 가기 싫다며 내가 동료들을 만나 설득하고 애원이라도 해보길 바란다. 1박 2일 동안 도대체 뭘, 어떻게 설득한단 말인가?


이상은 다르덴 형제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을 내 상황처럼 재구성해 본 것이다.
영화의 원제는 Deux jours, une nuit, Two Days One Nigh. 해고 대상자인 산드라가 동료들을 설득하러 다니는 '1박 2일'의 시간이 영화 제목이다. 상영 시간은 90분 정도로 짧은 편에 내용도 단순하다. 영화 속 이야기는 지금의 한국에서도 흔한 상황이다. 마치 내 얘기, 친구, 이웃집 얘기 같아서 단순한 이야기를 좀 심란하게 봤다.

아, 복지 국가 프랑스도 저렇구나! 대통령 관저의 가스를 차단하고 경찰도 노조를 만들어 시위하는 노동자, 노조 강국 프랑스도 저렇구나. 가난한 민중의 삶은 세계 어디서나 도긴개긴이구나. 해고를 동료들 투표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인가. 아니야, 그게 더 잔인하겠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한 동료들이 한 달 월급도 안 되는 보너스 때문에 내 등에 칼 꼽은 거잖아. 사장의 보너스 농간과 작업반장의 회유나 협박보다 동료들의 외면과 배신이 더 큰 상처, 원한이 될 것 같아. 아, 저들이 바란 건 결국 우리 사이의 이런 원한이었구나. 큰 권력, 거대 악에 방귀 한 번 못 끼고 못난 우리끼리 원망하고 분열하다 나가란 거로구나.


삼성, 삼성과 한배인 이마트가 행한 노조 방해 뉴스가 다시 생각났다. 노조 가입 저지, 노조원 사찰, 직원끼리의 감시와 분열 조장을 조직적으로 했었지. 노사 장기 갈등 시 사측의 노조 와해 중 가장 비열한 술책이 동료끼리의 분열과 이간이었다.
내가 밥을 번 곳은 노조가 없거나 형식적인 어용 노조만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곳에 있을 때 부당한 근무조건과 임금에 항의에 내가 앞장선 일이 몇 번 있는데 그때 동료 사이의 저런 분열과 이간질을 겪었다.
'모의하고 있는 일에서 너는 발을 빼거나 모른 척해라, 그럼 너의 임금만 가까운 시일 내 별도 인상해 주거나 특별 수당을 주겠다. 같이 불이익을 받던지, 혼자 조용히 재계약 대상이 되 오른 임금을 받던지 잘 계산해 봐라.'

그런 제의를 받은 동료 대부분은 마음도 약하고 귀도 얇아 사측의 회유에 쉽게 넘어갔다. 나는 얌전히 일 잘하는 사람들에게 바람 넣어 물 흐린 문제 사원이 됐다. 일부 동료는 관리자가 지근에 있을 땐 나와 친해 보일까 봐 거리를 두기도 했다.

 


예기치 않은 해고 통지를 받은 산드라는 복직을 위해 16명 동료의 집 대문을 두드린다. 영화를 보는 나는 주인공의 심정이 되어 산드라가 만나러 가는 동료들 수를 어느새 같이 손으로 꼽고 있었다. 동료에게 전화하고 대문 벨 누르는 게 이렇게 힘든 거였구나. 16명 중 이제 몇 명 만났구나, 겨우 두 명 설득했네. 아, 저 친구는 너무 눈물 나게 고맙다. 아, 저놈은 너무 야박하네, 보너스가 필요함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될 것을 뭐 저리 모진 말로 가슴에 칼 한 번 더 박냐. 나라면 당장 발길 돌리고 다 때려치웠을 거야. 아직 다 못 간 남은 동료들 집엔 다시 가기 싫구나. 근무 후 노는 주말은 테제베 같더니 구걸하러 가는 이 시간은 진흙 위 지렁이 같구나. 일할 땐 16명도 늘 부족하더니 지금은 160명보다 더 많게 느껴지는구나.

산드라가 해고 찬성투표 철회를 설득하기 위해 만난 동료들은 따뜻하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다. 복직을 포기하려는 그녀에게 2명 찬성이니 6명의 찬성표만 있으면 된다고 용기를 불어넣는 동료도 있고, 먼저 손 내밀지 못해 미안하다며 우는 동료도 있다. 반면 왜 너 때문에 우리가 보너스를 포기해야 하냐는 냉정한 동료도 있다.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내 눈을 제대로 못 보지만 보너스를 포기할 순 없다는 동료들도 원망할 수 없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보너스 1,000유로는 우리 돈 130만 원 정도다. 선진국 프랑스 소득으로는 많지도 않은데 겨우 그 돈 때문에 동료의 밥줄과 맞바꾸나 싶지만 그들의 삶도 산드라보다 쉬운 이가 없다.



일 마치고도 폐 타일을 주워 와 팔아야 생활이 돼
이 돈이면 1년 치 가스, 전기세야.
진흙에 내려앉은 집수리를 이제 할 수 있게 됐어.



이런 그들은 주말에도 쉬지 못한다. 축구 코치로, 편의점 알바로 투잡을 해야 대출금과 세금을 밀리지 않고 낼 수 있는 삶 앞에서 산드라는 차마 두 번의 애원, 설득을 못 하고 돌아선다. 동료들의 불안과 불만도 느낀다. 해고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일하면서 앞으로 회사에서 겪을 여러 불편함을, 계약직 동료는 다음 재계약에서 탈락할 것이란 불안감을 말한다. 사측의 적극적 회유나 협박이 없어도 그들 스스로 미리 불안해한다. 산드라는 자신으로 인한 동료들의 불안과 불만, 가족 간 불화를 지켜보면서 좌절감에 죄책감까지 가중된다.


“복직한대도 상여금 놓친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겠어. 온종일 내가 어떻겠어. 같은 공장, 같은 기계, 같은 식당에서 어쩌란 말이야.”



누더기 같은 마음으로 산드라는 16명을 다 만났고 운명의 월요일이 왔다. 


2015. 01.01. 프랑스, 벨기에.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주연 마리옹 꼬띠아르


이 영화를 간단히 정의하면 ‘해고 노동자의 1박 2일 복직 로드 무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민감한 관계에 대해서도 짧지만 굵게 나온다. 최근 톨게이트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중에 나타난 정규직 사원들의 반응도 생각났다.
1박 2일이라는 영화 속의 설정 시간이나 90분이라는 상영 시간은 짧지만 해고 노동자의 심정으로 보면 아주 긴 여정이다. 투표 과정과 결과, 결과에 따른 사측의 태도와 산드라의 결단은 대안 없는 문제 제기와 공감의 전시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선택과 결과를 앞에 둔 인간의 나약함과 굳건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절박한 선택 앞에 선 우리는 어떻게 '내일을 위한 시간'을 맞고 반응할 것인가? 산드라는 자신의 선택은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닌 많은 타인과 연결돼 있음을 인식하며 ‘내일을 위한 시간’을 응대한다.

외국 영화의 경우 번역 제목이 원제목이나 내용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내일을 위한 시간>이란 한국어 제목이 꽤 괜찮다. 지금, 오늘이 아닌 ‘내일(tomorrow)’이라는 다가올 미래를 위한 시간, ‘내 일(job)을 위한 설득의 시간’이라는 중의적 의미로 읽힌다.
나의 일, 내일을 위한 시간을 나는 어떻게 맞이하고 선택할 것인가?

덧) 프랑스의 법정 근로 시간은 1일 7시간, 주 35시간이다. 영화 속엔 산드라가 해고되면 15명 인원으로 16명의 일을 해야 한다는 노동 시간 연장 얘기가 나온다. 주당 3시간의 초과 근무를 하게 될 건데 피곤하지 않겠냐는 말에 산드라의 복직 대신 보너스를 택한 동료는 “피로 대신 수당이 생긴다”라고 한다. OECD 가입국 중 최장시간 근무 국가의 명예를 차지한 대한민국 노동자 중에서도 주 60시간 이상 할 때도 많았던 나는 얼른 이런 계산이 들었다.

“에게? 주당 3시간 초과 근무해 봐야 주 37시간, 40시간도 안 되잖아? 그걸 초과 근무라고 할 수 있어?”

주 3시간 초과 근무로 과로를 걱정하는 영화 속 대사를 들으며 탄력 근무제 논란을 생각한다. 정부는 자본가 눈치 보느라 노동력, 임금 착취인 탄력 근로 연장 찬반에 어정쩡하고 일하지 않는 야당 대표는 주 40시간, 52시간 탄력 근로 시간을 더 늘려야 된다는 열변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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