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여자아이는 뒤돌아서지 않는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이를 애타게 불렀지만, 지하철은 점점 멀어져갔다. 그리고는 잠이 깬다. 또다시 새벽이다. 어둑새벽을 마주하기가 힘들다. 바로 일어날 수 없다. 모든 진기가 빠져나간 듯 온몸이 축 늘어진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눈을 뜬 그 자리에서 멍한 상태로 한참을 보낸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상황이다.
군 입소를 앞두고 군 정문 앞에서 아이는 내게 물었다. 군대라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기 전에 꼭 알고 싶은 게 있단다.
“지성과 지식의 차이는 무엇이에요?"
나는 깜짝 놀랐다. 입대를 바로 앞둔 아이의 질문으로서는 생뚱맞아서가 아니다. 그 질문은 삶의 핵심을 관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가 생각났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의 저작 ‘역사를 위한 변명’에 나오는 첫 문장을 떠올린 것이다.
”아빠, 도대체 역사는 무엇에 쓰는 것인가요?“
눈을 떴다. 창밖은 어둡다. 동이 트려면 아직도 몇 시간이 지나가야만 한다.
‘이 삶이 다하는 동안 한 번만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아이를 만나야 하는데….’
목이 탄다. 갈증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날 급히 수유리를 가야만 했다. 충무로역에서 4호선 당고개행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사 안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사람들을 피해 조심스레 신문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무시했다. 계속해서 조그맣고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부천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
여리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난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누추한 옷을 입은 어린 여자아이가 등 뒤에 서 있었다. 그 아이는 나의 코트 한 자락을 잡고 있었다. 절실함이 잔뜩 묻어 있는 행동이었다. 아이의 눈망울을 들여다보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눈망울에서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었다. 그것은 깊고도 깊은 절망이었다. 모든 것을 던진 자의 절망이었다. 그 나이의 아이에게는 결코 찾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망설였다. 영혼은 아이의 눈빛을 무조건 온몸으로 받으라고 했지만, 마음은 당장 현실적인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아이를 부천까지 데려다주면 수유리에 제시간에 갈 수가 없지 않으냐?’
‘부천까지 가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부천에서 아이는 아무도 못 만날 것이고. 너는 아이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방 한 칸밖에 없는 너의 집으로 데려와서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마음은 끈질기게 속삭였다. 간사하면서 달콤한 유혹이었다. 나는 스스로 판 함정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일단 아이의 손을 잡고 충무로역에서 종로3가역까지 이동했다. 그 아이는 내가 어디로 떠날까 봐 내 손을 꽉 쥐고 걸었다. 부천에는 친척이 산다고 했다.
나는 건성으로 아이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이의 말을 진정으로 들었다면 나는 최소한 그 아이가 어디에서 살고, 왜 부천에 가는지 물었을 것이다. 그 아이의 상황에 대해 지레짐작만 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나중에서야 인지했다. 그 아이는 수호천사가 내게 보낸 고귀하면서 가여운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내 존재를 환하게 밝힐 선물이었다는 것을….
종로3가역에서 출발하는 부천행 열차에 아이를 밀어 넣고 나는 손을 흔들었다. 아이는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거의 울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냉정하게 돌아섰다.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둥근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아저씨는 같이 안 가세요?”
등 뒤로 그 아이의 간절함이 전달됐다. 그러나 나는 단지, 수유리 약속을 깨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마음속의 왜소화된 나’는 스스로 위안을 했다.
‘아이는 부천행 열차를 탔어. 그러니 이제 된 거야. 그래서 나는 수유리 약속 시각을 어기지 않아도 되지.’
그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냉소적인 나를, 어떠한 형용사를 동원하더라도 제대로 그려낼 수 없다. 그날 내 영혼은 숨을 죽이고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어둠의 길고 긴 어둠의 터널에서 방황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산자를 표방한 죽은 자의 날들이 이어진 것이다. 절망하는 여린 존재를 외면하는 자는 결코 존재로서의 살 가치를 상실한 자이다.
더욱이 그날은 몹시 추운 날이었다. 특히 여린 자에게는 절망스러운 날씨였다. 그런데 나는 그 날과 비슷한 한 겨울날을 기억하고 있다. 정말 아이러니한 게 운명의 놀음이다.
나는 헐거운 옷을 입고 있었다. 옷은 구멍이 숭숭 나 있고, 맨발에 운동화는 이미 젖어 있었다. 비쩍 마른 몸의 나는 10살 정도였을 것이다. 아침부터 산 위에 있는 어떤 집의 마당 한군데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전날 밤 쌓인 눈으로 마당은 꽁꽁 얼어붙었고, 매섭게 부는 하늬바람에 온몸은 마비되었다.
계모는 그 집의 따뜻한 안방에 앉아 간혹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어둠이 한바탕 몰려오고서야 계모는 일어서라고 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산 위의 집에서 내려왔다.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떼었다. 다리는 마비됐고,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구멍 난 운동화에서 삐죽 삐져나온 엄지발가락은 감각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나는 언덕길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모른다. 다만 여러 번 주저앉았던 기억이 난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어린 나를 짓눌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내가 왜 무릎을 꿇어야 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이었다. 당시 나는 이 절망을 감당할 수 나이는 절대 아니었다. 부천을 가려는 여자아이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절망을 쉽게 얘기한다. 그것은 절망하니 도와달라는 강력한 신호이다. 그러나 정말 절망하는 사람은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도움이 무엇인지 인식한다면 그것은 절망이 아니다. 그리고 힘없는 여린 자들의 절망을 굽어다 보는 것은 극한의 아픔이다. 그리고 도와줄 힘이 없는 것 또한 고통 자체일 수밖에 없다. 이것 또한 또 다른 절망이다.
절망의 끝자락에 서서 나는 그 아이를 만나고 싶다. 언제 그 어린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이 생애에서 그 아이를 찾을 수나 있을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강, 스틱스를 언젠가는 마주할 것이다. 내가 스틱스강을 건너서야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시간은 삶을 구속하는 강력한 프레임이다. 나는 지금껏 시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특히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그리고 미래의 기대로부터 한 발짝도 움직여본 적이 없다. 당연히 시간은 나의 삶을 철저히 구속하고 있다.
“아저씨는 같이 안 가요?”
30여 년 동안 그 아이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 종로3가역의 지하철 안에 그 아이는 있었다. 그 아이를 찾으러 가야 한다. 시간을 거슬러가서 그 아이를 만나야 한다. 잊어버린 그 30여 년의 시간을 찾으러 가야 할 것이다. 30여 년은 결코 잊어버린 시간이 아니다. 잃어버린 시간이다. 잃어버렸기에 나는 찾아야 한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을 향해 나는 다가간다. 그리고 나는 목에 밧줄을 매다는 상상을 하며 잠자리에 든다. 아이를 만나지 않는 것은 죽음이라는 무의식의 연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잠이 들지는 않는다. 밤새 뒤 치적 거리다가 가까스로 잠이 든다. 잠이 들면 지하철 역사 안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그곳은 종로3가역이다. 역사 안으로 부천행 지하철이 들어온다. 나는 아이가 서 있는 칸을 발견한다. 그런데 아이는 항상 나를 등 뒤고 있다.
헛구역질로 아침을 시작한다. 헛구역질을 거를 날은 하루도 없다.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튼 절망에 헛구역질하는 것이다. 새날을 맞이하는 것은 절망스러운 일이다. 아침이 밝아오면 낯익은 사람들을 마주하기가 견디기 힘들다. 아니 스쳐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도 마주하고 싶지 않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다. 나만의 피난처를 찾는다. 이른 아침, 내가 매일 낯선 곳을 헤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투우사의 칼에 맞아 죽기 전에 투우가 머무르는 공간, ‘케렌시아’는 어원상 사실 죽음을 앞둔 자의 마지막 숨 쉬는 공간이다. 칼에 맞아 사라질 투우처럼 마지막이 될지언정 나는 그곳을 찾아가고 싶다. 절망한 자에게 마지막 남은 공간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마지막 공간마저 허용되지 않는 것일까?
내가 방랑을 떠나는 것도 현실에서 가팔라진 숨을 고를 수 있는 ‘케렌시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오직 그뿐이다. 이상향인 샹그릴라를 찾아서 떠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부천은 그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마지막 남은 피난처, ‘케렌시아’일 지도 모른다.
이제서야 고백하건대 사실 나는 그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10여 년 전의 일이다. 나는 당시 백화점 유통에 관여한 적이 있었다. 수원의 행사장에서 옷을 판매하는 여자가 지인을 통해 내게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백화점 입점이 가능한지를 물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보육원에서 자랐다고 했다. 자란 곳은 인천이라고도 했다. 비껴간 세월을 적용하면 얼추 그 아이의 나이와도 맞는다. 허나 나는 그 당시에도 역시 그 여자의 말을 한 귀로 흘러들었다.
물론 그녀가 그 여자아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연관성은 충분했다.
어느 날 나는 별안간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간절하게 손을 내민 그 어린아이를 두 번이나 내쳤다는 것을….
‘그 아이가 그녀이고, 그녀가 바로 너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영혼이 나를 각성시킨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이후 나는 여러 해 동안 깊은 잠이 들지 못했다. 잠이 들다가도 곧 깨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새벽녘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낯선 거리에 나서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 방식의 형벌이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나왔던가? 차라리 저세상에서 영겁의 시간 동안 시지프스처럼 산정상으로 커다란 돌을 옮기는 신의 형벌을 받고나 있지.’
그런데 오늘 새벽. 기어코 그가 나타났다. 그토록 갈구하던 그가 모습을 보인 것이다. 온몸에 황금빛 갑옷을 걸치고 황금빛 투구를 쓴 전사가 산 정상에서 태양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내게 등을 지고 그는 서 있었다. 나는 울컥 눈물이 났다. 나는 그가 누군 인지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의 수호천사였다. 그는 빛의 천사 ‘미카엘’이다. 그는 어린 여자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미카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말했다.
“전체는 하나이다. 하나로 전 세상은 연결돼 있다. 그 아이가 그녀이고, 그녀가 바로 너이다.”
미카엘은 또 말했다. 나는 그 말의 정확한 의미는 모른다. 허나 그 말을 듣는 나의 가슴에는 조그만 파문이 일었다.
“선물은 바로 너다.”
미카엘의 현현은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가슴앓이로 고통받았던 절망에 대해 터트릴 수 있는 용기를 말하는 것이다.
이제 조금은 확신을 갖고 서두에서 말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지성과 지식을 가르는 기준은 인간다움이다. 남의 절망에 함께 부딪히고,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받아들이는 존재의 기준을 말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사회는 공동체를 말한다. 공동체는 관계의 그물망이다. 지성인들만 건강한 관계의 그물망을 짤 수 있다. 여린자들의 절망과 고통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식인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그 무엇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 특유의 특성 때문에 제대로 된 관계의 그물망을 짤 수 없다. 지식이 차단하는 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신들만의 안위를 위한 그 벽은 그들에 속하지 않은 타인들에게는 통곡의 벽일 수 있다. 따라서 지식인들의 그물망은 병들어 있다.
지식인들은 거의 늘 표면에서 산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표면은 거의 유일한 프레임이다. 남의 절망과 아픔은 그 프레임을 뚫고 들어올 공간이 전혀 없다. 너무 아픈 기억이지만, 내가 지성인이었다면 아무리 현실이 험악하다 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부천행 열차를 탔을 것이다.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일반 지식인들의 경멸과 냉소적인 풍조를 반박했다. ‘역사의 대상은 인간’이라는 기치 아래 ‘역사를 위한 변명’을 서술했다. 지식인이자 교수로서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가 나치에 의해 처형당했다. 그의 삶을 통해 시대의 절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 시대를 여는 지성인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아빠, 도대체 역사는 무엇에 쓰는 것인가요?“
’아저씨는 같이 안 가요?‘
이 두 가지 물음에 영적으로 바로 응답할 수 있는 자는 지성인이다. 지식인은 이 질문 자체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다시 행장을 꾸린다. 지성이라는 긴 여정을 떠나야 할 것이다. 통곡의 벽을 허무는 그 여정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거칠고 고독한 길일 수도 있다. 그 긴 방랑의 여정에서 최백호 씨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을 다시 듣는다. 20대의 최백호보다 70대의 최백호 노래가 방랑을 떠나는 나의 동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