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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보철 Jul 12. 2021

방랑의 여정-사막의 정적


“언제 떠나시나요?”


‘방랑자에게는 시간을 묻는 법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야 하는지 고민이 살짝 들었다.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한점 오차도 없는 푸르고 텅 빈 허공이다. 


그러고 보니 통역의 눈빛도 허공을 닮았다. 맑고 푸른 눈망울이다. 그녀의 투명한 눈을 바라보면서 60∼70년대 할리우드를 뜨겁게 달구었던 미국의 여배우 셜리 매클레인이 갑자기 떠올랐다. 


셜리 매클라인은 중간 기착지인 인도의 봄베이에 내린다. 그녀는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인도를 떠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인도를 떠나지 못하고 이후 3년을 머물게 된다. 그녀는 인도를 왜 떠나지 못했을까? 그녀가 인도에 머문 것도 그리고 서둘러 떠나는 것도 이방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리 신기할 일이 없다.


이방인은 스스로 묻는 자이다. 남에게 묻는 자가 아니다. 일상이 주는 지겨움의 강도를 물어야 하고, 지겨움의 강도가 어느 정도일 때 떠나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그들에게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하다. 물으면 물을수록 삶은 안개 속이다. 이를테면 이방인에게 일상이 주는 안주(安住)는 터무니없는 일이다. 안주는 반복을 의미하며, 반복은 지루함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누쿠스, 다시 누쿠스에서 쿤그라드에 다녀오는 여정이었다. 누쿠스는 우즈베키스탄의 자치공화국 카잘크파크스탄의 수도이다. 사람들은 누쿠스는 몰라도 세계에서 4번째로 큰 호수였지만 지금은 사막화되고 있는 아랄해는 알 것이다. 누쿠스는 아랄해를 끼고 있다.


 

호텔 9층 창가에서 누쿠스 시내를 내려다본다. 9층은 이곳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속하는 편이라 누쿠스 전경을 볼 수 있다. 소박함이 엿보이는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3, 4층 건물들이 올망졸망 무리 지어 서 있다. 멋도 부리지 않는 단순한 사각형의 건물들이다. 밤의 야경도 별 볼 일 없는 화려함과 거리가 먼 도시이다.

 

이 말은 서구화의 시각으로 보면 개발이 덜 된 도시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단순한 도시가 단박에 맘에 들었다. 도시의 단순함은 낯섦이다. 나는 어둠이 주는 고요 속에서 낯섦이 온몸으로 몰려오는 것을 즐겼다.


새벽이 물러가고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창밖을 바라보았다. 점점 윤곽을 드러내는 시내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두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간 것 같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바라보는 해지만 매번 새롭다는 것을 느낀다. 항상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삶을 꿈꿔왔다. 틀에 박힌 일상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일상의 탈출은 자유를 준다. 오늘이 바로 그날 중 하나이다. 열린 창문으로 아침 햇살과 바람이 수줍은 듯이 밀려들어 온다. ‘아, 행복하다’라고 순간적으로 느낀다.

 

누쿠스 일정은 아마 방랑의 길을 떠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공장 탐방과 회의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비즈니스 여정에 불쑥 이방인인 내가 끼어든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업차 출장이지만 나에게는 ‘여행’이라는 미명 하의 방랑이었다. ‘언제 어디로’라는 목적어 분명하다면 그것은 방랑이 아니다.


방랑에는 목적이 없다. 언제 어디로 떠나야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방랑자에게 목적지는 잠시 머무르는 정거장일 따름이다. 방랑은 즉흥적이어야 한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과의 경계 선상에서 어디로든 머물지 못하는 것이 바로 방랑이다. 따라서 낯선 곳, 낯선 시간을 수시로 넘나드는 게 방랑자의 숙명이다.


오전 10시께 누쿠스에서 출발했다. 쿤그라드까지는 두어 시간 걸린단다. 일단 눈을 감았다. 전날 호텔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 탓이 컸다. 잠을 잔 것이 주효했다. 쿤그라드에 도착해서는 피곤함이 사라진 것이다. 반면 사람들은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5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에 빡빡한 일정이라 다들 지쳤다. 사막 근처에 건설된 공장과 마을을 잠시 들러본 후 곧바로 이어진 회의를 마치자마자 누쿠스로 바로 돌아가잔다. 


누쿠스로 돌아오는 길. 길은 길게 나 있다. 멀리 지평선이 보인다. 지평선 너머로 외길은 직선으로 뻗어 있다. 나는 지평선이 수평선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지평선 너머의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허허벌판 길을 달리는 것은 우리 일행 차뿐이다. 오고 가는 차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사막 한가운데임을 새삼 느끼는 장면이었다.


차 안의 사람들은 조용하다. 운전기사 빼고는 모두 잠이 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잠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서늘하리만큼 고요한 침묵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사막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차창 밖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푸른색 일색의 하늘을 배경으로 뭔지 불타오를 것 같은 허공, 그리고 키 작은 풀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사막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깊은 적막 속에서 사막이 숨 쉬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소리 없는 침묵의 소리, 살아 있는 사막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현존이었다. 압도적인 광경에 그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단어도 생각나지 않았다. 사막의 무시무시한 정적이 마음을 사라지게 한 것이다. 태고의 우주가 있었다면 바로 이런 거대한 침묵 속에서 잉태했을 것이다. 태초의 침묵이 주는 아름다움에 취한 나의 영혼은 요동치고 있었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그때 고요한 갑자기 적막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 멈추는 덜컹거리는 요란한 소리에 잠자고 있던 사람들이 눈을 뜬다. 차에 내려서니 기사가 건너편 길가를 가리킨다. 낙타 한 마리가 보였다. 


‘세상에나 낙타라니.’


낙타가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순간 온갖 생각이 들었다. 낙타는 어디서 왔을까?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리고 낙타는 왜 무리를 떠나 홀로 걷고 있을까?


누군가 말했다.


“집에서 기르는 낙타입니다. 지금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낙타는 우리가 오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인가로 보이는 것은 전혀 찾을 수 없는데, 집이라니 다소 의아했다. 낙타는 아마도 지평선 너머의 머나먼 길을 가야 할 것이다. 한 마리 외로운 낙타는 그나마 돌아갈 곳이 있다. 낙타에게 동행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낙타가 가는 길 위로 새 한 마리가 날갯짓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타박타박 걷는 낙타를 한참을 보다가 재촉하는 소리에 자동차에 올랐다. 통역이 뒤를 돌아보며 묻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낙타 구경에 잠이 깬 통역은 다시 잠들지 않았느냐보다.

 

“언제 떠나시나요?”  


누쿠스에서 2박 3일을 보냈다. 일행들이 이곳 정부 관리와 회의를 하는 와중에 나는 틈틈이 통역과 얘기를 나눴다. 누쿠스 출신인 그녀는 카잘크파크스탄의 개발을 열망했다. ‘개발은 곧 자유를 가져온다’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녀는 한국의 대학원에서도 공부하고 고국으로 돌아온 재원이었다. 사람들은 항상 돌아온다,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떠나는 날, 그녀는 호텔로 마중 나왔다, 


‘이제 돌아가네요?’ 인사를 건네는 그녀에게 말했다.


“집을 떠난 이후 한 번도 돌아간 적이 없습니다,”


나는 여행을 한 것이 아니다. 방랑을 떠난 것이다. 목적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떠나는 시간도 없다. 방랑자에게는 시공간의 법칙이 없다. 길이 있기에 떠나는 길의 법칙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방랑자에게는 돌아올 곳이 없다.


셜리 매클라인이 인도를 바로 떠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예정대로 하룻밤만 자고 떠났다면 그녀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닫고 말았을 것이다. 낯섦의 세계의 문턱에서 낯익은 세계로 돌아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시간의 법칙, 공간의 법칙을 절대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틀에 박힌 일상에서 탈출, 자유를 얻은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일상은 반복일 따름이다.


인도 수도승 얘기가 떠오른다.

한 도시의 동굴에 사는 수도승이 있었다. 그는 도시를 한 번도 떠난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수도승에 대해 말하기를 즐겼다. 그는 도시를 떠난 이래 단 한 번도 도시에 돌아온 적이 없다고.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은 매번 떠나고, 그리고 반드시 돌아오는 사람들이다.



타슈켄트로 돌아가기 위해 누쿠스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누쿠스 공항을 떠나기 전에 한 가지를 보고 싶었다, 한적한 공항 한구석에서 우두커니 시간을 기다릴 때도, 비행기를 향해 활주로를 천천히 걸어갈 때도 내내 생각한 것은 커다란 새 한 마리의 비상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낙타의 허공 위로 날아가는 새가 못내 아쉬운 탓이다.

 

그리고 자유를 향해 골짜기에서 산정상 위로 치솟아 오르는 커다란 새, ‘엘 콘도르 파사’를 들으면서 비행기에 올랐다. 폴 모리아 악단이 연주하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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