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로 오시죠."
카톡 메시지가 전달 되었다. 메시지를 받은 것은 오늘 오전이다. 아무런 부연 설명도 없이 22일까지 오라는 내용이었다. 모로코라면 카사블랑카이다.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부터 가슴과 머리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코로나 특히 모로코의 악한 코로나 상황, 아직 백신을 맞지 않았다는 것, 오고 감에 따른 격리 기간 그리고 지금 펼친 사업들이 오버랩되면서 ’가야 한다‘는 감성과 ’가서는 안 된다‘는 이성이 충돌한 것이다.
메시지를 받고 곧바로 애월의 바닷가로 향했다. 태양은 한마디로 작열했다, 해안선을 따라 걷는 내내 따가운 햇볕이 얼굴을 강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굳이 햇볕을 피하지는 않았다. 햇볕과 열기로 내 몸은 점점 지쳐갔지만 그래도 나는 걸었다. 온몸이 땀에 젖은지는 이미 오래다.
걷는 내내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 삶을 지켜보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하곤 했다.
“지루할 틈이 없겠어요?”
이것은 나를 전혀 모르는 소리다. 내 삶은 항상 지루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지루하니까 걷는 것이고, 걷기만 하니까 지루한 것이다. 나의 삶은 지루함 투성이다. 몇 시간을 걸었는지 모른다. 오후 늦은 시간, 나는 애월 바닷가에 자리한 건물을 찾았다. 낡고 오래된 건물은 카페로 활용되고 있었다. 한때 양수장으로 활용되던 건물이란다. 회칠한 외벽은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다. 이곳, 바다를 끼고 있는 근사한 카페건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외양이지만 묘하게 사람들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온 곳은 카페의 유명세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한가지 단순한 이유 때문이던, 회칠로 뒤덮인 하얀색 건물, 더욱이 덕지덕지 때가 묻은 하얀 색상이 나의 발길을 잡은 것이다. 문득 카뮈의 소설 ’이방인‘이 떠오른다. 주인공 ’뫼르소‘가 중얼거렸다.
“태양이 눈 부셔서”
그가 아랍인에게 총을 쏜 이유다. 이처럼 이유는 항상 단순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단지 건물이 하얀색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곳을 찾은 것이다.
건물로 들어섰다. 외벽 못지않게 실내도 우중충하니 보잘것없다. 작은 창문을 통해 빛이 약하게 들어오는지 건물 1층은 다소 어둡다. 주문은 여기서 받고 있었다. 갑자기 짜증이 확 몰려왔다. 화려한 실내를 생각했었는가 보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낭만이 깃든 실내 분위기를 내심 기대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실내 분위기는 핑곗거리에 불과했다. 내가 짜증이 난 것은 오전부터 우울했던 마음 탓이다.
나는 오늘 줄곧 한가지 물음에 사로잡혀있었다. 메시지 때문이다. 메시지는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일상이 지겹지 않은가?'
일상이란 내가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를 말한다. 답이 정해진 질문이지만 나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언제부터 삶이 지겨워졌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렇다고 지겨움으로부터의 탈출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다. 그저 살아가는 것에 급급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는 말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에만 의미를 둔 채 틀에 박힌 일상 속으로 사라져버린 나의 파면만 보인다. 이리저리 표류하는 삶의 순환을 철저히 깨부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였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과 직접 대면할 용기를 잃은 지가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선택을 미룬 채 서성거리는 나를 발견할 뿐이다. 그리고 삶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가치관의 부족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 점을 알면서도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 세상은 너무나 지겹다'
지겨움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이 광대처럼 허공에 손을 뻗어보았다. 부질없는 일이다. 그리고는 이내 무거운 걸음을 이끌고 카페 이 층으로 올라갔다.
’세상에나‘
나는 나지막하게 탄성을 질렀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햇빛이 사정없이 이 층 실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실내는 황금색으로 출렁이는 빛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장엄한 광경에 넋을 잃을 뻔했다.
저녁 무렵, 하늘은 황금빛에서 붉은빛으로 변하는 그라데이션 효과를 시시각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늘에 동조하듯 점점 검푸른 색으로 변하는 바다, 이와 동시 파도가 불러일으키는 하얀 포말은 허공에 대고 맹렬한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붉음 푸름 하양 등 3가지 색상의 콜라보가 연출하는 창밖의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창밖의 세상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건물에 들어서기 전과는 달리 지루할 틈이 없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온몸의 세포가 이글거렸다. 이런 경우는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에 전율이 일 정도다. 시간이 흐르자 창밖은 짙은 색으로 물들어 갔다. 태양이 사라지자 창밖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러고 보니 커피에 손도 대지 않았다. 이제는 차디차게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는 나는 카사블랑카를 다시 생각했다.
내가 오늘 하얀색 건물을 찾은 것은 아침에 받은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일상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내게 메시지는 분명 자극이 되었다. 자극은 감정을 극한대로 끌어올리고, 고조된 감정은 연상을 일으킨다. 연관성이 별로 없는 것을 한데 묶어버리는 파레이돌리아 심리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카사블랑카는 하얀 집을 뜻한다. 카사블랑카는 하얀색 일색의 건물들이 압도적이다. 커피 한 모금에 애써 ’릭스 카페‘도 기억해낸다. 영화 카사블랑카에 나오는 낭만의 장소가 바로 ’릭스 카페‘다. 불현듯 하얀색의 건물 2층에서 릭스 카페의 커피를 마시는 나를 발견한다. 버티 히긴스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카사블랑카‘ 노래도 듣는다. 옆에서는 젊은 커플들이 웃고 떠든다. 물론 이들도 릭스카페의 손님들이다. 나 역시 웃고 떠든다. 덩달아 산다는 것에 대한 열정이 솟구쳐오른다.
내 영혼은 순식간에 시공을 넘나든다. 시대를 거스르고 공간의 벽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제주도 애월의 ’라지펌프' 카페와 카사블랑카의 '릭스'카페가 하나로 겹쳐진다. 카사블랑카는 특별한 순간에만 방문하는 곳이 아니다.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떠나고 도착하는 곳이다. 굳이 중요한 시간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평범하고 미미한 시간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 떠나냐 한다. 이 순간은 열정의 시간이고 또한 호기심의 시간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제주도 바닷가 하얀색 건물 2층의 공간은 카페이기 전에 경계선이었다. 그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을 나누는 문턱에 서 있다는 말이다. 경계 선상의 문턱에서 서성이는 사람은 모두 이방인이다. 이방인의 눈에는 모든 게 낯설다. 낯설기에 모든 것이 새롭다. 새로우면 호기심으로 모든 시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다. 지겨움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도무지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열정으로 온몸이 불타올랐다.
뜨거워진 영혼을 부여잡고 나는 카톡을 열었다.
'태양이 뜨거워서'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