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퇴근과 동시에 인천공항행 리무진 버스를 탔다. 꽉 찬 일주일의 휴가를 보내고 일요일 저녁에 컴백해서 다음날 출근. 그후로 1-2주는 여행의 여파로 2배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그래도 미친 사람처럼 기회를 틈타 또 휴가를 내고 떠났다.
나는 왜 그렇게 떠나야 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여행최적화형 인간도 아니다. 어디서든 잘 먹고 잘 자는 타입이 아니라서 여행지에선 늘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누가 썼을 지 모를 호텔 방의 수건이나 침구, 카펫에 무신경한 성격도 못 된다. 게다가 비행기만 타면 다리가 붓고, 눈도 붙이지 못 하는 예민한 여행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여행한 건 광고라는 직업도 한몫 했다. 무엇이든 자극이 되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선진 도시들이 사뭇 궁금했다.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마주치는 아이디어, 본 적 없는 새로운 시도, 다양한 문화 체험으로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달랬다.
하지만 좀더 솔직히는 마냥 여기 아닌 다른 곳으로 벗어나고 싶었다. 나를 버겁게 하는 이런 저런 관계, 끊임없이 새로움을 요구하는 일, 낙오하지 말라고 채찍질하는 도시, 무엇보다 별다른 꿈도 없이 하루하루 나이만 먹는 거울 속 나로부터의 탈출.
그래서인지 돌아와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여행지는 화려한 브랜드, 최신 트렌드로 반짝이는 도시가 아니더라. 그보다는 어른이 될수록 환멸을 느끼는 마음에 위로를 던지고, 다시 달릴 에너지를 채워 주고,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사람들 앞에 맞설 수 있도록 심호흡 하게 해주는 곳들이었다.
시간이 흐른 후,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이너 피스(Inner Peace 내면의 평화)’라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이너 피스를 얻기 위해 그렇게 여행했구나. 조금은 아이러니다. 내면의 평화를 얻기 위해 밖으로 떠난다는 것이.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만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그래서 휴가를 떠나고, 심지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세계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이너 피스 Inner Peace
그 후로도 계속 길을 나섰다. 작정하고 떠돌아다녔다. 무엇을 보고 느낄지는 모르지만, 더이상 내면의 평화를 위해 밖에서 헤매지 않아도 될 때까지. ‘지금, 여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될 때까지. 그래서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했다.
“방황하는 자가 전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Not all those who wander are lost”
- J.R.R. 톨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