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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Jun 11. 2024

가능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게 먹는 편이 좋다.

요시모토 바나나 <애틋하고 행복한 타키오카의 꿈>



수업과 수업 사이에 잠깐 비는 틈에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했다. 에어프라이기에 치킨 텐더를 굽고, 냉장고에서 상하거나 오래된 반찬을 모두 버렸다. 된장국과 콩나물 불고기를 데우고 싱크대에 나와 있는 플라스틱 그릇은 씻고, 나머지는 식기세척기에 넣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부엌과 식탁을 정리한다. 수업 시작 30분 전, 에어프라이기에서 치킨 텐더가 익혀졌고 학원을 갔던 첫째가 돌아왔다. 따뜻한 치킨 텐더를 주고, 곁에서 나는 이른 저녁을 먹었다. 시간이 들쭉날쭉한 나의 일 때문에 언제부턴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래서 주말에는 꼭 한 번은 외식을 한다.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게 그립기도 하고, 주말만큼은 밥 짓기에서 해방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멋진 일이든 슬픈 일이든, 마치 재해처럼 강력한 힘으로 찾아와 인생의 흐름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너무 강력하게 멋진 것은 거의 슬픔과 비슷할 정도로 힘겨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이야말로 인생이고,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증거다. 18쪽

 

살아 있는 존재라는 감각은 매일 다양하게 느끼고 있다. 먹어야 하고, 자야 하고, 가족들을 위해서 부지런히 집안을 정리하고 돌아다녀야 하고, 일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내 마음을 짓누르는 고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면 내 인생이 흔들리는 것 같다. 이게 살아 있는 증거라면 그전처럼 무던한 일상이기를 바라고 바라보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그저 살아내야 하는 수밖에. 그 안에서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수밖에. 

 

저자는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어릴 때 주로 밥을 지어주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함께 시작에 가서 장을 보고 온 일이며, 뿌리채소를 살 때면 택시를 타고 돌아오고, 재료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 아버지의 성향에 따라 음식은 달라도 내용물은 거의 똑같은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다. 예를 들면 시금치나물, 시금치 된장국, 시금치 계란 볶음 등이라고 할 때 나와 비슷해서 웃음이 났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고, 큰 관심이 없는 나도 그런 적이 많다. 콩나물무침을 하면서 콩나물국을 끓이고, 미역국을 끓이면서 미역무침을 한다. 내 머릿속에 있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다양하지 않을뿐더러 시간도 절약되기 때문이다. 

 

처음 갓난아기가 옆에서 잠들었던 날, 어제까지 없었던 귀여운 인간이 불쑥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 여전히 놀라워, 하염없이 잠든 얼굴을 보고 있었던 일. 작은 손을 살며시 만졌던 일. 46쪽

 

그리고 저자는 자연스레 아버지의 음식에서 아이와의 추억으로 넘어간다. 한참 성장기인 내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분명 나도 저런 적이 있는데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어색하다. 저자는 모유를 쉽게 끊었다고 했지만 나는 두 아이 모두 모유를 힘들게 떼었고, 오랫동안 엄마의 젖가슴에 집착하는 아이들이 힘겨웠다. 그러면서도 모유를 떼어버렸을 때의 서운함이 기억난다. 모유를 먹이는 일은 무척 힘들었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는 기분이 드는 일 중의 하나였다. 내 몸을 통해 한 생명이 살아가게 만드는 일. 감격스럽고, 신비롭고, 내 존재의 이유 같았다. 그런 다음 모유를 떼버린 아이를 볼 때마다 시원섭섭하고, 내 품에 안겼던 아이가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이제는 자기 방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며 앞으로는 더 멀어질 일만 남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런 아이가 내가 해 준 음식 하나만이라도 소울푸드로 기억해 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한다.

 

네가 연인과 먹는 밥이, 언젠가 ‘가족’이 먹는 밥이 되기를. 그리고 그 축적이 둘도 없는 지층이 되어 너의 인생을 빚어 가기를. 가능하면 그 인생이 행복하기를. 72쪽

 

함께 앉아 밥을 먹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가장 행복하다. 그럼에도 얼마나 그 사실을 잊고 살았을까? 밥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겨워하고, 다 먹은 뒤에 치워야 하는 상황을 힘들어하고, 먹고 사는 게 왜 이렇게 빡빡한가 한탄을 하기도 했던 시간들이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미안해진다. ‘인생은 한 번밖에 없으니 가능하면 행복한 편이 좋다. 가능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게 먹는 편이 좋다.’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은 나에게도,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꾸려갈 내 아이들에게도 해 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노력을 쥐어짜야 한다. 요리에 재능이 없으니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고, 시간과 돈을 더 들여야 한다. 대만 일러스트레이터 수피 탕이 그려낸 따뜻한 식탁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건강과 정갈함이 어우러진 식탁에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있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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