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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Sep 14. 2024

뻘짓의 카르마, 수영복!

아이고야, 내가 왜 그랬지?

 A와 나는 수영 초보답게 여러 가지 고충을 자주 이야기했다. 그 중에서 수영복 입기가 단연 주된 화제였는데, 도대체 수영복을 어떻게 하면 쉽게 입느냐가 관건이었다. B에게 물어보니 몸에 비누칠을 한 다음 입으면 훨씬 수월하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바로 몸에 바디워시를 바르고 입어보았지만 그것도 불편했다. 바시워시를 많이 바르고 입으면 수영복을 입은 상태에서 다시 거품을 씻어내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A와 이야기하다가 탈의실에서 수영복을 입고 가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거기서 이야기가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우린 그 일을 실행해버렸다!     


  지금도 탈의실에서 샤워장 안으로 수영복을 입고 들어갔던 순간을 떠올리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무슨 객기였을까? 분명 수영복은 샤워장 안에서 샤워 후에 입으라는 안내도 받았고, 안내문도 써 있었는데 무슨 용기로 수영복을 입고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이런 객기를 부릴 수 있는 건 수영을 배운지 얼마 안 된 초보라서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한 번 내 생각을 실행해 보는 것.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 때로는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을 또 다시 느낀 경험이었지만 아마 둘이여서 가능한 분명한 객기였다.     


  탈의실에서 수영복을 입고 샤워장으로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행동이었다. 일단 모두들 탈의를 하고 샤워장으로 가는데, 수영복을 입은 어른 두 명이 샤워장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단박에 눈에 띄었다. 거기다 그날은 A와 내가 굉장히 튀는 색깔의 수영복을 입은 날이었다. 초록색과 흰색의 수영복을 입고 있는 우리는 한쌍의 덤앤더머로 보였을 수도 있다. 용감무쌍한 우리는 첫 날 무사통과를 했다. 아무도 우리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고, 수영복을 잽싸게 입고 샤워장으로 가서 샤워를 하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마치 비누칠을 한 뒤에 수영복을 입은 상태인 듯 수영복에 물을 적시고 수영복을 벌려 맨몸을 씻어냈다. 그렇게 고양이 샤워 같은 샤워를 하고 수영장으로 나가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A와 나는 승리감에 도취 돼 규칙을 어긴 걸 알고 있음에도 너무 편하다고, 또 이렇게 해보자고 합을 맞췄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그날도 자신만만하게 수영복을 입고 샤워장으로 들어간 우리를 누군가 따라왔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샤워장에 수영복을 입고 들어오면 안 된다고, 탈의실에서 누군가 말을 해달라고 해서 전해주는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순간 이미 낯이 뜨거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A는 집에서 샤워를 하고 왔다, 수영복을 입은 상태지만 샤워를 하고 들어갈거다, 수영복이 너무 입기가 힘들어서 그랬다라고 당당히 맞섰다. 그때부터 나의 멘탈이 나가기 시작했다. 대문자 I성향인 나는 누군가 이렇게 지적을 하면 그때부터 완전 소심해지고, 깊은 몰입을 하며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후회와 자괴감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수영장으로 들어왔건만 수영에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얼마나 뻘짓을 했는지를 알게 되었고, 이게 마음 속에 오래 남아 있을 거라는 사실이 짐작이 갔다. 계속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자책은 며칠 동안 이어졌다. 집안일을 하는 도중에 생각이 났고, 그러면 혼잣말로 “아이고야, 내가 왜 그랬지?”라는 한탄이 나왔다. 수영장을 갈 때마다 주눅이 들었고, 나에게 뭐라 한 분이 또 나를 알아보면 어떨까 하는 쓰잘데기 없는 상상력이 더해졌다.  

    

  A와 나는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며 며칠을 곱씹고 털어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정말 꼬박꼬박 수영복을 챙겨 샤워를 한 뒤에 입는다. 나름 요령이 생겨서 비누칠을 꼭 한 다음에 수영복을 아래서부터 차곡차곡 끌어 올리면 처음보다 힘들이지 않고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수영복을 입을때는 갑옷을 입는 것 같고, 벗을 때는 허물을 벗는 것 같은 답답함과 민망함이 교차한다. 하지만 물 속에서 그렇게 딱 붙는 수영복을 입지 않으면 안그래도 맑디 맑은 수영 실력에 신경쓸 게 하나 더 늘어난다는 생각에 그 과정을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다.      


  그렇게 힘들게 옷을 입고 나와 수영모와 수경까지 착 쓰고 준비운동을 기다리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나름 근사해보인다. 초급반이지만 준비를 모두 마친 수영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준비운동 할 때 몸이 생각처럼 쫙쫙 펴지지 않아서 또 애를 먹긴 하지만 수영장 안에서는 나의 괴나리 봇짐 같은 뱃살이 아주 쏙 들어간다. 그러면 물 속에 나는 잠깐 자신감을 얻는다. 출산하기 전의 뱃살 같아서 감격하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숨차오름에 오늘은 몇 칼로리라도 소비했구나, 건강해지고 있구나, 옆구리가 날씬해 질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에 만족한다. 비록 민망한 뻘짓을 하긴 했지만 그것 또한 뼈저린 자양분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 더운 여름에 캠핑장에서 찍었던 바닷가. 수영장 수영도 못하는 나는 바다 수영은 아예 꿈도 못 꾼다. 바다는 보는 것으로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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