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마지막 술이 아니길

조지아, 트빌리시의 밤

by 낭만히피




"12월 말이었어요. 눈을 밟으며 계곡을 올라가다 보면 종종 어디로 가야만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 위에 가만히 서 있는 토끼와 마주치곤 했습니다. 보이는 모든 곳이 길이었는데도 토끼는 길을 잃었더군요. "


- 김연수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제가 조지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수도인 트빌리시에 유스호스텔이 하나 있다는 것과 그곳의 정확하지 않은 주소뿐이었습니다.


2011년 10월의 어느 날 중국의 우루무치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아제르바이잔을 거쳐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12시경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여기가 지구의 어디쯤 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영어도 들리지 않던 조지아의 공항에서 한국말이 들려왔습니다. 저는 그 목소리를 향해 다가갔고 다짜고짜 말을 걸었습니다. 중동 어디쯤의 한국 기업 본부에서 출장 나온 한국인 세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불쌍히 여겼고 (맞습니다. 당시 제 꼴은 말이 아니었을 겁니다.) 신기해했으며 (혼자 여행하는 여자를 신기하게 보는 사람은 꽤나 자주 만납니다.) 간절히 도와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번 출장 여행을 가이드해줄 한국 기업 조지아 본부의 매니저가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테모.




커다란 조지아 아저씨였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테모의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갔습니다. 테모는 먼저 이분들을 시내의 고급 호텔에 내려주고 다음으로 제가 유스호스텔을 찾는 것을 기꺼이 도와주었습니다.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어갑니다.

그리고 아무리 찾아도 정확하지 않은 주소지의 유스호스텔은 나오질 않습니다.

같은 자리를 뱅뱅 돌고 이제 시간은 새벽 2시가 넘어갑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마음속에 머뭅니다. (두려움도.....)

테모가 제안합니다.


“우리 집에 와서 잘래?”



저는 고민했습니다. 쟤가 더 위험할까... 길거리가 더 위험할까....

집에 가족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가족이 있는 집이 있지만 중심가와 약간 떨어진 곳에 가족들도 모르는 개인만의 공간이 있으니 거기서 묵으면 된다고 합니다.

저는 길거리가 더 안전할 거라 확신합니다. 근데 말은 왜 “고맙습니다!”로 나가는지요. 결국 저는 테모 와 함께 ‘가족들은 모르는 테모만의 개인적인 공간’으로 향합니다. 중심가와는 약간 떨어져 공기 좋은 곳에 위치한 새로 지은 깨끗한 복층 집이었습니다.

테모는 불쌍한 저에게 피자와 과자 물과 술을 주었습니다. 저는 술부터 한잔 마시며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 술이 아니길 빌었습니다. 테모는 욕실과 침실을 알려주었고, 열쇠를 주었고 내일 아침에 다시 유스호스텔을 찾아보자며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했습니다. 여전히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 샤워가 아니길 기도하며.

저는 포근한 침구에 누웠고 그렇게 조지아의 첫날을 안전하게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테모가 간단한 식사 거리를 사 들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습니다.

추운 조지아를 여행하는 내내 테모와 같은 따뜻한 마음을 수도 없이 마주하게 될 줄은.

첫날의 그 술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길 바랐던 기도에 큰 응답을 받게 될 줄은.

(조지아를 여행하던 한 달 남짓한 시간 물보다 술을 더 많이 마셔야 했습니다. 조지아에 대해 아무 정보가 없었던 저는 집집마다 와인을 두 드럼씩 담그고 있다는 정보도 알지 못했지요.

네... 저는 조지아의 와인을 피해 아르메니아로 갔고 아르메니아 코냑에 취해 지독한 술병을 겪은 뒤 술이 없다는 이란으로 도망치듯 떠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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