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막강 조지아어

조지아, 트빌리시의 아침

by 낭만히피



이제 난 깨달았어요.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겠어요.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철저히 고독하며 사람들과 섞일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사실도 깨달았어요.


- 이자크 디네센 , 바베트의 만찬 <폭풍우>





식사를 준비하던 테모가 아침 인사를 건넵니다.


“잘 잤어요? 불편하지는 않았어요? 배고플 텐데 이것 좀 먹어요.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집 떠나와 처음으로 버거운 호사를 누리면서도 푹 자지 못한 저는 잠시 어젯밤을 돌이켜 봅니다. 호텔이라고는 보일 것 같지 않은 동네에서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며 고마움과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라했었습니다. 그 ‘어쩔 줄 모르겠음’ 뒤에는 오늘 밤을 어찌해야 하나 하는 걱정과 이 커다란 아저씨에 대한 두려움에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겠죠. 그러나 나보다 더 창백해져 아니, 창백하다 못해 파란 낯빛을 띠고 있었던 건 바로 이 커다란 아저씨 테모였습니다.


“사실 어제는 당신이 고등학생인 줄 알았어요. (서양인들이 아시아인을 대체로 어리게 본 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경험을 통해 아실 줄로 믿습니다.) 이 어린 학생이 말도 안통 하는 곳에서 도대체 혼자 왜 이러고 있나 싶었죠. 아무리 찾아도 숙소는커녕 숙소 비슷하게 생긴 곳도 나오질 않고...... 어떻게든 당신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서 조심스럽지만 여기 와서 자라고 한 거예요. 그리고 혹시라도 불편할까 봐 서둘러 나왔어요. 어쨌든 잘 잤다니 다행이에요.”


맞아요. 어젯밤 테모는 집에 들어와 굉장한 속도로 먹을 것을 내놓고 필요한 것을 알려주고 5분도 채 안되어 허둥지둥 나갔었어요. 본인 집인데 못 올 곳에 온 것처럼. 저와는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고 대충 인사하고는 급하게 나가던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아침 식사를 하며 어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테모의 가족들, 일, 일 외에 비밀리에 벌이고 있는 통조림 사업. 그리고 저의 여행 이야기. 더불어 제가 어찌하다 이 곳 조지아를 오게 됐는지까지. 우리는 서로의 용기와 여유에 감탄하며 웃고 박수쳤어요. 어제는 창백하다 못해 파래 졌던 얼굴이 이제 발게 질 정도로 생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이제 유스호스텔을 찾아보죠. 어제 그 주소로 다시 가 봐요. 그런데 혹시라도 그곳이 불편하거나 위험하다면 여기서 계속 머물렀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나는 가족이 있는 집에 있을 거고 혼자 편안하게 지내면 돼요. 버스를 타면 시내로 나가는 것도 쉽고 금방이에요.”


(하지만 그때 저는 지 배낭은 지가 져야 한다는 철학만큼이나 확고하게 누구에게도 폐 끼치면 안 된다는 철학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어제의 그 주소지로 갔습니다. 차를 타고 그곳으로 가는 내내 조지아에서 어떤 것들을 조심해야 하고 어떻게 외부로부터의 위협에서 나를 보호해야 하는지 등등 각종 기본 안전 수칙에 관해 쉴 틈 없이 들어야 했습니다. 한 손에는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 메모지와 펜을 동시에 잡은 테모는 연락처와 주소, 필요한 말들을 현지어로 적어 주었습니다. (저는 지금 뭐가 더 위험한지 모르겠습니다.)


“여기는 영어가 통하는 곳이 많지 않아 힘들 거란 말이지요.. 조지아어나 러시아어를 할 줄 알면 참 좋을 텐데.”


러시아어라..? 저는 러시아어를 조금, 아주 조오오금 할 줄 알았었습니다. (단언컨대 지금은 전혀 하지 못합니다.) 세상에나 러시아어가 통한다니.

그렇게 안전교육 수칙과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막강 조지아어를 반복 복습하며 어제의 그 주소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대요. 그곳에 호스텔이 있습니다.

어제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곳이 오늘은 떡하니 있더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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