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고 싶었다, 이곳에서

한라산보다 높았던 마음의 벽

by Hippy

카페를 그만두고 백수가 된 나는, 모든 것이 싫어졌다.

사람도, 동네도, 고향도. 좁디좁은 지역, 서로 다 연결된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한 선택과 그 결과가 어떻게 흘러 다닐지 뻔히 보였다. 괜한 걱정인 걸 알면서도, 그 시선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내가 도망치듯 떠나고 싶었던 건, 사실 고향이 아니라 '그때의 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엔, 고향을 벗어나는 게 유일한 탈출구처럼 느껴졌다.


남은 퇴직금과 모아둔 월급을 털어 제주 한 달 살기를 결심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숙소비, 교통비, 식비까지 다 포함하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었다. 게다가 혼자 낯선 땅에 남겨진다는 건, 생각보다 더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제주 힐링센터'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단식원이었지만, 단순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곳. 아침부터 저녁까지 힐링식이 제공되고, 올레길 트래킹, 오름 산책, 한라산 등반까지 일정이 꽉 채워져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내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숙소도, 식사도, 이동수단도 모두 준비된 이곳이라면 나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힘든 일은 잠시 내려놓고, 걷고 먹고 쉬는 데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다시 나를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비행기 표를 끊고, 제주도로 향했다.

정말로, 아주 오랜만에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어디까지가 '도망'이고, 어디서부터가 '회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