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우린, 지금부터 오니가 될 거야.

by 기억흡수

하시바의 정찰대는 아직 그림자 마을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채,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미카즈키, 카츠류우를 지하 은신처로 데려가라.”


마고이치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소녀는 주저 없이 소년의 손을 잡고 마을 가장 깊숙한 곳의 작은 오두막으로 달려갔다. 미카즈키는 목재 바닥의 낡은 판자를 밀어 올려 숨겨진 문을 열고, 카츠류우와 함께 지하로 몸을 숨겼다.


“여기서 기다리자. 혹시나 마을이 발견되더라도 네가 없다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어두운 지하 은신처에서 둘은 숨을 죽인 채, 조용히 바깥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저들이 날 찾고 있는 건가…?”


카츠류우가 작은 목소리로 묻자, 미카즈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하지만 그들은 네가 화염에 휩싸여 죽었다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너무 걱정하지 마.”


미카즈키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카츠류우의 표정은 더욱 어둡게 변했다.


“내가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이 마을은….”

“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림자 마을의 모두는, 대부분 누군가에게 쫓기다 이곳에 온 사람들이야.”


그때, 오두막 입구를 막고 있던 나무판자가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츠류우와 미카즈키는 숨을 죽이며 지하의 입구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하실 문이 서서히 열리고, 검은 인영 하나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나와라. 둘 다.”


니시아치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지상으로 올라오자 니시아치는 무표정한 얼굴로 설명했다.


“하시바의 순찰대가 산자락에 있다. 대략 열 명 정도. 쿠로다의 무사들이다.”


카츠류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쿠로다 가문.

쿠로다 칸베에.

히데요시의 지낭으로, 시즈카타케에서 아버지의 군대를 무너뜨린 장본인이었다.


“그들이 우리 마을을 발견할까요?”


미카즈키의 물음에 니시아치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놈들은 분명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의 시선이 카츠류우를 향했다.

냉정하고 차가운 눈빛이, 마치 예리하게 벼린 칼날처럼 날카롭게 꽂혔다.


“네 녀석이 여기 있는 한, 언젠가 이 마을은 위험해질 것이다.”

“제가 떠나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니. 네가 떠나는 것보다 여기서 강해지는 것이 먼저다.”

“저를 내보내고 싶어 하셨던 게 아니었습니까?”


카츠류우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분노와 상처가 섞여 있었다.

니시아치는 여전히 카츠류우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죽이고 싶었지. 지금도, 완전히 그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는 등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대장은 내일부터 사이카성에 입성하여 업무를 볼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직접 너를 가르치겠다. 내 검은 자비가 없으니 단단히 각오하도록”


이 말을 들은 미카즈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니시아치는 사이카슈의 정예병 중 가장 냉혹하고 까다로운 사람이었고 그녀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검술을 가르친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니시아치가 떠난 후, 미카즈키가 카츠류우에게 속삭였다.


“대단해! 니시아치 스승님께서 직접 가르치겠다고 하다니….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어!”


카츠류우는 말없이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멀리 산자락을 오르내리는 하시바 군의 횃불이 어둠 속을 헤집고 있었다. 자신을 찾아 헤매는 적들. 언젠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운명의 상대들.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단단히 준비하겠습니다. 언제든지요.”


속삭이는 그 작은 말소리를 들은 미카즈키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단단히 준비하겠다고? 내일이 기대되는걸.”


카츠류우가 작게 눈을 찌푸렸다.


“설마… 내일도 때릴 거냐?”

“글쎄? 알고 맞으면 재미.없.지!”


‘퍽-!’

‘끄으윽….’




산자락 아래, 하시바 군의 순찰대가 흔들리는 모닥불 근처에 모여 야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코마츠바라 세이지로는 쿠로다 무사들 중에서도 잔혹한 전투광으로 유명했다.


“시바타의 아들은…. 정말 확실히 죽은 거냐?”


그가 모닥불 옆에서 육포를 뜯으며 부관에게 물었다.


“예, 키타노쇼 성에서 시바타 카츠이에와 함께 불에 탄 시신들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중에는 어린아이의 시신도 있었습니다. 나이로 봐선…. 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코마츠바라 세이지로는 눈빛은 여전히 의심으로 가득했다.


“어째서 칸베에 님께서는 여전히 의심하시는 건가….”

“그분께서는 본능과 직감이 예리하시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내일도 계속 수색한다.”


부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산에서요? 여기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위쪽은 절벽뿐입니다.”

“아니야…. 분명히 무언가 있다. 바위 하나, 나뭇잎 하나하나 냄새가 다르단 말이지….”


세이지로는 코끝을 찡그리며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부관은 지친 듯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냥 돌아가면 안 됩니까? 여기는 ‘오니(鬼)’가 나오는 산입니다. 병사들 사이에서도 불길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러자 세이지로는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누구 하나쯤 죽어야 돌아갈 명분이 생길지 않겠느냐.”


순간, 부관의 얼굴에 복잡한 미소가 번졌다. 공포인지, 냉소인지 구분되지 않는 표정.

그는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림자 마을 중앙 광장.

외곽을 경계하던 닌자들을 제외한 모든 마을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있었다.


“마고이치! 내가 경고하지 않았나. 저 아이 때문에 우리 모두가 위험해진 게야.”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카츠류우에게 집중됐다. 적대감, 두려움, 그리고 분노가 뒤섞인 악감정들이 소년의 몸뚱이를 꿰뚫었다.

그때, 니시아치가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이 녀석은 오늘부터 내 제자가 되기로 했다. 할 말이 있는 사람은 칼을 들고 와라.”


광장은 일순간 침묵에 휩싸이며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누구도 니시아치가 제자를 들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니시아치…. 하시바의 군대가 바로 코앞까지….”

“시바타! 시바타 가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미 우리는 네고로지에서 송장이 되어 썩고 있었겠지.”


그의 반박에 마을 사람 중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의 목숨은 분명하게도 카츠류우의 아버지, 시바타 카츠이에에게 구원을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마고이치가 앞으로 나와 모두에게 일갈했다.


“나는 약속했다! 시바타의 미래를 반드시 지켜주겠노라고. 긍지 높은 사이카슈의 그림자들이여, 그대들에게 염치라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목숨을 다해 은인의 아이를 지켜라. 오늘 밤도 평소와 다르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겠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마을 사람들은 조용히 흩어져 각자의 자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그림자처럼 빠르고 질서정연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달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칠흑 같은 깊은 밤.

니시아치는 카츠류우와 미카즈키를 데리고 마을 외곽의 숲으로 향했다.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차갑게 굳어 있었다.


“오늘 밤은 실전 훈련이다.”


카츠류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희가 적과 싸운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싸우지 않고 물리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사이카슈의 진정한 힘은 어둠에 동화된 그림자처럼 보이지 않는 것.”


미카즈키가 살짝 웃으며 덧붙였다.


“우린, 지금부터 오니가 될 거야.”


그들은 산비탈을 따라 내려갔다. 가끔 멈춰 서서 주위의 인기척을 살폈다.

니시아치는 두 아이에게 말없이 손짓으로만 신호를 보냈고, 카츠류우는 미카즈키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하시바 순찰대의 모닥불이 보였다.


“저들은 우리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으나 확신은 하지 않고 있구나.”


그는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세 개의 둥근 물체를 꺼냈다.


“공포는 인간의 마음을 흐리게 하고 평정심 무너뜨리는 법이다. 이것은 코우나이가 개발한 연옥(煙玉)이라고 한다. 안개와 더불어 큰 환각을 일으키지.”


니시아치가 풀벌레 소리를 내며 신호를 보내자 멀리서 부엉이 소리가 들렸다. 코우나이와 준시로가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였다.




하시바 군의 야영지.


코마츠바라 세이지로는 모닥불 앞에 앉아 육포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늘어진 자세였지만 그의 날카로운 눈만큼은 줄곧 어둠 속을 살피고 있었다.


“… 뭔가 확실히 있다니까. 확실히.”


부관이 지친 듯 한숨을 내 쉬며 반박했다.


“시바타의 아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이 산에는 아무것도 없….”

"쉿!"


갑자기 둘 다 조용히 멈춰서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 마치 칼날이 쇠를 가르는 듯한, 아니, 그보다 더 섬뜩한 소리.


“들었나?”


세이지로가 일어서자 부관도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


그 순간, 산속에서 안개가 터지듯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안개가 아니었다. 바람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하시바 군의 쿠로다 무사들은 허둥지둥 일어나 방어 태세를 갖췄지만, 눈앞은 곧 희뿌연 안개에 잠식당했다.

모닥불조차 가물거리며 사라지고, 시야는 완전히 닫혔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거…, 거기 누구냐!”


세이지로가 칼을 뽑으며 외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전투광이라 불린 그였지만 이러한 상황에서의 전투는 피하고 싶었다. 그 순간 세이지로 옆에 서 있던 병사 하나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일장이나 날아올라 고꾸라졌다.


“오니다! 오니가 나타났다!!”

“정신 차려!”


하지만 늦었다. 안갯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니 가면을 쓴 미카즈키였다. 연옥의 환각 효과로 인해 병사들의 눈에는 마치 지옥에서 기어 나온 요괴처럼 보였다.


‘으아아악!’


공포에 질린 무사 중 하나가 활을 들어 오니 가면을 쓴 미카즈키를 향해 쏘았다. 화살은 미카즈키를 향해 정확히 날아간 듯 보였으나 그림자를 관통했을 뿐이었다. 미카즈키의 월영술(月影術)이 그녀와 안개를 하나로 만들었다.


“모두 뒤로 물러서서 전열을 갖춰라!”


세이지로가 명령했지만, 이미 병사들 사이에 공포와 혼란이 전염병처럼 퍼졌다. 한 명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다른 병사들도 따라 달라기 시작했다.


“멈춰! 멈추라고 했잖….”


그때, 세이지로의 등 뒤에서 묵직하고 역겨운 기척이 느껴졌다. 그가 돌아보았을 땐 거구의 오니 하나가 얼굴의 코와 잎에서 시뻘건 연기를 내뱉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니시아치였다. 하지만 연옥의 술법에 걸린 세이지로의 눈에는, 피 칠갑을 한 대 요괴로 보였다. 인간으로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사…, 산개하라!”


세이지로와 남은 병사들은 서둘러 야영지를 떠났다. 안개가 퍼지고 불과 일각도 지나지 않았다.


한편, 카츠류우는 이 상황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누구인가. 그 용맹하던 시바타의 정예병을 패퇴시킨 하시바의 지낭, 쿠로다 칸베에의 부대였다.

자신이 한 것이라고는…, 그저 연옥을 던져 터트린 것뿐이었다.


“성공했어! 녀석들 얼굴 봤어?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지!”


미카즈키가 가면을 쓴 채 매섭게 달려왔다. 가면 아래의 눈빛은 흥분과 짜릿함으로 반짝였다.


“네가 그런 식으로 달려오면 염라대왕도 놀라시겠다.”


‘퍽!’

‘끄으윽….’


“카츠류우, 첫 실전치고 망설임 없이 잘 해내었다.”


카츠류우는 니시아치의 칭찬이 어색했으나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저는 한 게 없는데요…. 그런데 왜 적들을 전부 살려두셨습니까?”

“죽은 사람은 소문을 퍼뜨리지 못하지만, 산 사람은 공포를 전염시키지. 두려움을 각인시키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방패이다.”


니시아치의 가르침에 더하여 미카즈키도 한 마디 덧붙였다.


“만약 저 정찰병들이 전멸했다면, 오사카의 전 병력이 이 산으로 들이닥쳤을 거야.”

“하지만 이런 방식은 잠시뿐이다. 언젠가는 진짜 칼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더 강해지거라.”


카츠류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의 방식이 이제야 이해되기 시작했다.


밤하늘의 달이 다시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니시아치의 지도 아래, 카츠류우의 수련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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