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 폭발은 감각을 깨우는 예술이란다.

by 기억흡수

니시아치의 나무 단도가 맹렬하게 카츠류우를 향해 휘둘러졌다. 소년은 간신히 몸을 날려 피했지만,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칼날이 옷자락을 갈랐다.


“느리다. 독이라도 묻었으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다.”


카츠류우는 숨을 헐떡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수련은 정오가 훨씬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상대의 칼끝만 보지 말고, 그 의도를 읽어라.”


니시아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날아오는 공격. 카츠류우가 이번에는 몸을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 목검을 들어 막아냈다.


“좋다. 느린 녀석이 피하기만 해서는 반격의 기회가 오지 않는다.”


이때 언덕 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미카즈키가 환호성을 질렀다.


“막았다! 열흘 만에 드디어 스승님의 공격을 막을 수 있게 됐구나!”


니시아치는 미카즈키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방해하지 마라 미카즈키.”

“스승님! 막아내는데 열흘이나 걸렸는데 조금 쉬게 해 주세요.”

흐음, ···좋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카츠류우는 허탈한 표정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팔과 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고마워···, 미카즈키”

“당연하지! 그런데, 오늘은 특별한 날이야. 기대되지 않아?”

“특별한···날?”

“오늘부터 코우나이 스승님께 화약술을 배우게 될 거야. 니시아치 스승님이 낮 훈련을, 코우나이 스승님이 밤 훈련을 맡기로 하셨대.”

“또 다른 훈련이라고? 하아··· 그럼 그렇지, 수련을 쉴 분이 아닌데···.”


카츠류우는 머리를 헝클이며 투덜댔지만, 미카즈키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 코우나이 스승님은 니시아치 스승님과는 완전히 다른 분이야. 시끄럽고, 엉뚱하지만 실력 하나는 최고야. 기대해도 좋을 거야.”


카츠류우는 한쪽 눈썹을 살짝 추켜올렸다.


“엉뚱한데 최고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직접 보면 알게 될 거야.”


미카즈키의 입가에는 장난기가 감돌았지만, 어딘가 묘한 기대감과 애정이 섞여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카츠류우는 미카즈키의 안내를 받아 마을 외곽의 작은 창고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이미 누군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하하하. 와라, 와! 어서 와라 내 새로운 제자야!”


코우나이는 사이카슈 5인방 중 가장 작은 체구를 지녔지만, 그 목소리와 기세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가득했고, 활기찬 기운이 넘쳐났다.


“시바타 소년! 드디어 만나게 되었구나. 니시아치가 너무 독차지해서 인사 한번 제대로 못 했다네.”


코우나이는 카츠류우의 어깨를 툭 치며 환하게 웃었다.


“이리 와봐. 내가 가르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가 손짓한 작업대 위에는 다양한 가루와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카츠류우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것들을 살펴보았다.


“이건···. 연옥 아닙니까?”

“맞아! 지난번 하시바의 정찰병을 물리칠 때 사용한 그것이지.”


코우나이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재빠르게 몇 가지 재료를 섞어 작은 구체를 만들었다.


“자, 이걸 던져봐!”


카츠류우가 그 구체를 들고 창고 밖으로 나가 멀리 던지자, 폭발음과 함께 눈이 멀 것 같은 강한 빛이 번쩍였다.


“으악!”


미카즈키와 카츠류우는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더듬어 간신히 자세를 유지했다. 하얗게 물든 시야 속에서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이것은 ‘섬옥(閃玉)’이라네. 빛으로 상대의 시야를 앗아가는 용도지. 아···!, 자칫하다간 시전자도 당할 수 있다네. 크하하하!”


코우나이는 이번엔 상자에서 또 다른 구슬을 꺼내어 카츠류우에게 건넸다.


“자. 이것도 던져보시게!”


잔뜩 긴장한 카츠류우가 이번에는 구슬을 던지자마자 두 눈을 번개보다 빠르게 가렸다.

그 순간.


‘삐이이이이-!’


귀를 찢는 듯한 초고음이 터졌다. 이내 세상은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카츠류우는 두 손으로 귀를 감싸며 휘청거렸고, 입을 벌려 무언가 말하긴 했지만 자신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참을 수 없는 이명만이 고막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잠시 후, 서서히 주변의 소리가 다시 스며들어왔다. 심장의 고동, 풀벌레 소리, 미카즈키의 고함···. 그리고 코우나이의 화통한 웃음소리까지.


“크하하하! 이게 바로 음옥(音玉)이라네!”


코우나이가 두 손을 귀에서 떼어내며 웃다가 검지로 귀를 툭툭 치며 말을 덧붙였다.


“이번엔 눈이 아니라 귀를 노린 거지. 청력을 잃으면 인간은 순식간에 방향 감각을 잃고 무력해진다네. 고막이야 말로 감각의 핵이지. 시야와 청각, 그 둘을 빼앗겼을 때의 공포는 아주 원초적인 법이야.”

“이걸··· 실전에서도 써 보셨습니까?”

“크하하하! 말도 말게, 한 번은 이걸로 열 명을 그대로 쓰러뜨린 적도 있었지. 그 광경이란, 정말 최고 중의 최고였어.”


미카즈키가 뒤늦게 따라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귀를 후벼 파며 투덜댔다.


“다 좋은데···! 다음엔 제발 경고 좀 해줘요 진짜! 아오.”


그녀는 카츠류우에게 몸을 기울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카츠류우, 그거 알아?”


코우나이의 눈치를 살핀 미카즈키는 카츠류우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말을 이어갔다.


“코우나이 스승님이 얼마나 미친 인간이냐면, 한 번은 자신의 눈썹과 머리털까지 전부 태워버린 적도 있어. 그때부터였지. 저 빛나는 머리 때문에 항상 적의 표적이 되었다는 불쌍한 전설이···.”

“그···그만! 미카즈키! 그건 비밀이라고 했잖나!”


세 사람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카츠류우는 니시아치의 혹독한 수련 뒤, 이 평화롭고 가벼운 분위기가 낯설지만 따뜻하게 느껴졌다.


“자, 오늘 밤은 화약의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 주마. 폭발은 감각을 깨우는 예술이란다.”


코우나이의 눈빛에는, 그 특유의 장난기 뒤에 감춰진 정밀한 장인정신이 빛을 내고 있었다. 이렇게 카츠류우의 이중 수련이 시작되었다. 낮에는 니시아치에게 검술과 체술을, 밤에는 코우나이에게 화약술을 배웠다.




석 달이 지났을 무렵, 카츠류우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그의 어린 손에는 화약 자국이 선명했고, 몸통에는 니시아치의 목검에 맞은 멍이 가득했다. 게다가 이따금 기습해 오는 미카즈키의 일격은 항상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오늘따라 유달리 힘들어 보이네.”


미카즈키가 카츠류우의 옆에 앉았다. 소년과 소녀는 무심곡의 폭포 앞에 앉아 말없이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쉬고 있었다.


“뭐···그럭저럭 견딜 만은 해.”

“허세 부리지 마. 힘들어 죽겠다는 거, 다 알고 있어.”


미카즈키는 품에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내 카츠류우에게 건넸다.


“자. 이거 발라봐. 아버지가 쓰시는 최상급 금창약이야. 슬쩍한 거니까, 비밀이야.”

“고마워··· 그런데, 넌 언제 나처럼 수련받아? 항상 내 훈련만 지켜보는 것 같은데···.”


카츠류우의 말에 미카즈키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시선이 조용히 폭포 아래로 향했다.


“다섯 살. 그때부터였어. 물론, 이 마을의 다른 아이들도 전부 그즈음부터 수련을 시작하지.”


미카즈키는 쓸쓸하지만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보지 마. 여기선 그게 당연한 일이야. 재능이 없다면 더는 가르침도 없어.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거든, 지금 네가 겪는 그 고통은 나도 다 겪었어. 특히 그 옆구리도 말이야.”


카츠류우는 놀란 눈을 크게 뜨고 미카즈키를 바라보았다.


“몸으로 습득시키는 수련 방법인 건가?”

“맞아. 내가 때리는 그곳에는 간장이 있어. 옆구리를 정확히 맞으면 아무리 용맹한 무사라도 호흡을 잃고, 한순간에 무방비 상태가 돼.”

“웃자고 한 말인데, 진짜였다니···.”


미카즈키는 카츠류우의 농담에 살짝 미소 지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소녀는 잠시 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옷자락을 들어 올렸다.


물안개가 부드럽게 피어오르고, 흐르는 물소리는 오래된 기억 속의 자장가처럼 은은히 귓가를 맴돌았다. 햇살은 거대한 나무 사이로 흘러 들어와 소녀의 몸을 조용히 비추었다. 백옥처럼 하얀 피부 위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상흔들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칼날에 베인 자국, 타박으로 얼룩진 흔적,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화염의 궤적. 그 흉터 위로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았고, 소녀의 고요한 눈동자에는, 차마 말하지 못한 고통의 시간이 해일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소녀가 지나온 시간을 상상할 뿐이었다.

소년과 소녀는 말이 없었지만,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듯했다.


“미···미안해, 고마워”


카츠류우가 조용히 속삭이듯 말하자, 미카즈키는 얼른 옷을 내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뭐가?”

“그··· 보여줘서. 아··· 아니, 숨기고 싶었을 텐데···. 혼자서 그렇게 버텨줘서···.”


카츠류우의 말끝이 흐려졌다.

미카즈키는 대답 대신 살며시 웃었다.

그 미소는 카츠류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무언가로 남았다.


잠시 후, 미카즈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돌아가자. 니시아치 스승님이 너 안 보이면 또 목검을 마구 휘두르실걸?”


카츠류우도 지친 몸을 일으켰다.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마음만큼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소녀가 앞서 걷고, 소년은 두 걸음 뒤를 따랐다. 그 짧은 거리 사이에, 전보다 훨씬 깊어진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 카츠류우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 위로 흩어지는 가느다란 햇살이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의 등에 업혀 도망치는 남자가 되지 않겠어.’


저녁이 되자 코우나이의 작업장은 지독한 화약 냄새와 수상한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오늘은 새로운 구슬을 연구해 보자꾸나! 카츠류우, 넌 이제 기본 조합법을 익혔으니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면 어떻겠느냐?”


카츠류우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희 가문의 비기가 하나 있습니다. 혹시··· 그걸 접목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 굉장한 가문의 지식을 화약술에 융합하는 것!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나?”


카츠류우는 자신이 기억하는 시바타 가문의 비법을 떠올렸다.

청석.

그것은 시바타 가문에서 피부병 치료에 쓰이던 고급 재료였다. 소량의 청석을 물에 희석해 천에 흡수하여 피부에 사용하면 그 효과가 매우 좋았다. 어느 날 약제를 담당하던 시종 하나가 실수로 불 가까이에 두었다가 기묘한 푸른 불꽃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오니의 불꽃 ···.”


어릴 적 아버지의 시종이 중얼거리듯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말을 곱씹던 카츠류우는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그 불빛이 전장에서도 보인다면, 훌륭한 정보가 될 수도 있겠는걸.’


“스승님, 혹시 청석도 갖고 계시는가요?”

“청석? 청석은 숨 쉬는 돌이라 불리는 만큼 보관이 어렵지.”

“··· 그럼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크하하하! 누가 없다고 하였느냐. 이 몸이 구하지 못하는 재료는 이 세상에 없다.”


코우나이는 작업장 뒤편을 가리켰다.


“그늘진 암벽 사이에 작은 굴이 하나 있지. 그곳에 가죽으로 싼 항아리를 땅속에 묻어 두었다네.”

“그럼 청석 결정을 조심히 으깨어 ‘화옥(火玉)’의 제조식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호오, 화옥은 전투보다는, 도주 시 유용한 구슬인데 이것을 어찌 활용하려는 게냐.”

“글쎄요···, 완성되면 알게 되겠죠?”

“뭐, 좋지! 실험은 언제나 환영이라네! 크하하하, 역시 내 제자라니까.”


잠시 후, 카츠류우는 청석의 결정을 조심히 인계받아 코우나이의 ‘화옥’ 제조법에 융합하여 새로운 구슬을 완성했다. 완성된 구슬은 작은 가죽 주머니에 담겨 코우나이의 손에 올려졌다.


“자. 그럼 바로 확인해 볼까? 크흐흐흐.”


코우나이는 완성된 구슬을 챙겨 작업장 뒤편의 넓은 공터로 나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너희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거라.”


한 번 크게 심호흡한 코우나이는 개량된 화옥을 높이 들어 올린 뒤, 있는 힘껏 멀리 던졌다.


“자아! 화려하게 불타올라라, 시바타 일(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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