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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Apr 18. 2021

투병 고백  - 중증 남성 질투증

1.




언제부터일까.....



조용히 앉아 생각해본다.




아이를 낳고부터인 것 같다.




그전까지는
질투 나는 남자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었다.




2.
병을 자각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1)
<임계장 이야기>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https://brunch.co.kr/@hisilver22/100




비정규직 노인층에 대해
내가 그동안 얼마나 무지했고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알게 되었다.

깊이 반성했고 이전과 같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거룩한 감동 가운데
어떤 특정 내용을 만났을 때.

아주 히스테리컬 한 반응을 보이더라.


'아파트 경비원의 일상은
밤이라고 휴식이 보장되지 않았다.
오토바이 소리, 층간 소음 민원, 배달운 방문 은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블라블라
(주의: 기억으로 적었으니 책과 완전히 같지 않을 수 있음)'

비정규직 직업의 애환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내 마음속에

뾰록.



강렬한 짜증이 솟았다.


'지금 70대 돼서 아저씨는 처음 그런 경험을 해보신 거예요?
그전에는 밤낮이 명확히 구분되셨나 봐요?


엄마고 주부인 사람은 그냥 그게 일상이에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데
돈도 안 주고
감사도 인정도 별로 못 받고
무한히 반복돼요.

집에 혼자 있지 않는 한(아니. 혼자 있어도)
그냥 일거리가 계속 솟아나요.

집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주부에게는 일터죠.
잠 못 자는 건 애 태어나면 2년은 그냥 기본이어요'

한마디로 지금까지 참 쉽게 사셨다.
주부나 애 엄마들은 일상이 그런다.


뭐 그런 얘기다.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보고
내가 놀란다.


지금 아저씨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 얘기가 아니잖아!





어쩌다 이렇게 돼버린 걸까.





2) 두 번째,

언제부터인가 남자 목사님들의 설교가 귀에 안 들어온다.

 
분명 청년 때는
토씨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초집중하며 무한 감동하며 들었던 설교인데.


그분들은 그대로다.

바뀐 것은 나다.

내가 바뀌었다.


나는 요즘 그분들의 설교를 들으며
딴생각을 한다.
그래서 내용이 안 들어온다.

' 저 목사님은 설교 준비할 때
자기 공간에 들어가서 집중해서 설교 준비하셨겠지?
그리고 사모님이 그동안 밥 준비하고 차려주고...

좋겠다...

나도 읽고 쓸 수 있는
최소한의 내 공간.
최소한의 내 시간.
갖고 싶다.'




몇 달 전 옷방에 내 작업을 할 책상 하나를 마련했지만
 무용지물이 되었다.

아이는 책상에 서서
높은 곳에 올려둔 물건을 꺼내는 재미가 들렸다.

 
남편은 그 위에 벗은 옷을 산더미처럼 쌓아두었다.



내 책상...이길 바랬으나...




내 시간은...


하도 하도 없길래
새벽 2시나, 3시까지,
아니면 일찍 일어나서 4시나 5시쯤 확보하려 했더니
직장+엄마 역할+새벽 글쓰기의 합작품은
대상포진이더라.







그래서 최근 2주는 그냥 작정하고 디비 잤다.




그러니

오직 주차장 차 안에서만 쓸 수 있더라.


직장에 일찍 도착한 날 짬 시간 - 주차장(15분 정도)


집에 일찍 도착한 날 짬 시간 -주차장(5-10분 정도)

하고 싶은걸 못하니 다시 마음이





한편,
사모님들의 설교나 여자 목사님의 설교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분들의 설교는
단내 짠내 신내, 급기야 가끔은 쉰내까지 나는
그분들의 버라이어티 한 삶을 우려낸
깊은 맛이 있다(고 느껴진다).


밥하고 살림하고 애 키우고 나머지 가족 돌보며
(이것만으로 풀타임 잡을 넘어서 24 hours job인데)
그 시간 안에 설교를 준비한 고군분투의 자국이 있다(고 느껴진다).


쓰다 보니
맹목적인 팬심이었음을 깨닫는다.



너 너무 미화하는 거 아니니?






3)

세 번째,


남자 작가들이 낸 책을 읽을 때,
맨 앞이나 맨 뒷페이지  감사의 글을 읽을 때
나는 또 억울해진다.


'내가 글을 쓴다고 오래도록 방에 처박혀 있을 때
매일매일 아내는 밥을 챙겨주었고
늘 한결같은 지지를 보내주었다.'

뭐 이런 류의 글을 보면
어김없이 질투가 발동한다.

'A C.
좋겠다.
나는 밥 기획에, 식재료 조달에, 조리에, 쓰레기 뒤처리까지 하고
새벽에 다시 일어나야만 글을 쓸 수 있는데.'



꼬여도 잔뜩 꼬였다.


아니.
자기 부인한테 감사한다 하는데
네가 왜 난리여~



내가 생각해도
내가 왜 난리인지 모르겠다.





4)
네 번째,
올해 2월에 복직 연수를 받았다.
코로나로, 집에서 실시간 쌍방향으로 진행됐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가랑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가랭이? 내 가랭이 말이니? ㅡ뱁새ㅡ



차라리 회사에 나가버리는 게 낫지.


한 공간에서
일도 하고 살림도 하고 육아도 하는 것은
진심 버거웠다.  


아침에 깨워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낸다.
그리고 눈썹 휘날리게 와서 원격연수를 받고
점심때는 대충 때우고 저녁거리를 만들고
다시 오후 원격연수를 받고
이제 애를 데려온다.
그리고 벗기고, 씻기고, 저녁을 차리고 치우고 재우고....

연수 내내 무한반복.


그때 엄청 훌륭하고 자상하고 존경스러운 남자 강사분이 (비꼬는 거 아니고 진심. 진짜 진심. 교사로서 리스펙트!)

평일 퇴근 후와 주말에
자신의 맡은 학생들과 단체 카톡창에서 소통한 일화들을 나누어주셨다.

학생들이 코로나로 너무 밖에 안 나가는 것 같아
하늘 사진을 인증하자고 하고,
산책한 사진을 서로 인증했다고 한다.

이런 시도들을 통해
얼마나 학생들과 원활히 소통했는지,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복직 연수받는 교사들과 나누셨다.



나는
갑자기 화가 났다.




참지 못하고 채팅창에 마음을 표현했다.

"훌륭하십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는 건 나를 속이는 것이었으니
이렇게 말해버렸다.  


"사례를 들으니
마음이 답답하고 버겁고 부담이 됩니다.
왜냐면 저는
집에서는 가족과의 시간에 집중하고 싶고,
주말에는 몸과 마음을 좀 쉬게 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단체 카톡창을 몇십 명과 24시간 열어두는 것은 너무 피곤합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떤 분이 또 이렇게 물었다.


"강사님도 집에서 설거지하시나요?" 



나는 폭소했다.

아.. 후련하다.

내가 고상히 도 표현한 말이
바로 저 뜻이야!





결론적으로 강사님은 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으며,
한 학기 동안 했던 유일한 두 가지를 나눈 것뿐이라고 겸손히 대답하셨다.



어쨌든 이로서

나는 병이   '심각' 단계  임을 또 한 번 확인했다.


 


교사가 학생들이랑 행복했다는데
네가 왜 난리여~~~




 


5) 마지막으로...

지금도 식탁에서 보이는 남편의 발.

안방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의 발.

저 발이 부럽다.



밖에서 어떤 소리가 나도 모르게

귀 옆에 크게 틀어놓은 유튜브 음악.

그걸 들으며
비몽사몽을 넘나드는 저 자유가

dog 부럽다.


객관적으로 엄청나게 가사일 많이 하는 우리 남편이라 해도.


11시까지 늦잠 자다가
설거지 한판 해주고
드라이 끝난 옷 찾아와 달라는 거 유유히 찾아와서
다시 누워 잘 수 있는...
 
저 싱글 때와 다름없는 당신의 주말!


몸서리치게 부럽다.




아침 7시에 일어난 아이와
별거별거 다하고
아침 9시에 놀이터까지 다녀왔는데도
아직 1시 반.

 
티브이 하나 틀어주어야만
겨우 한 숨 돌리는 내 주말 일상.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또 한 번 버겁다.


버거워도 별수 없다.
아이에게 엄마는 나뿐이니.


'아빠말고 누구도 말고

엄마여야만 한다'는 너의 고집도 조만간 끝날 테니.

그래서 엄마라는 존재
버티기 기술만 는다.




3.


남의 얘기가 안 들리고
계속 자기 얘기로 돌아오는 사람은
공감이 갈급한 사람이라고 들었다.


자기 공감이 시급해서
남 공감을 할 수 없는 상태라 배웠다.


내가 요즘 그렇다.


나는 요즘 '어떤 남성'의 '어떤 이야기'도
그대로 들을 수 없을 만큼
계속 내 이야기로 함몰한다.



남자들의 군대 얘기랑
할아버지의 전쟁 때 얘기가 지겨워 죽겠는데,

나야말로
주부가 얼마나 힘든지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지겹게 이야기하려 한다.



나는.

인정받고 싶나 보다.

공감받고 싶나 보다.

감사받고 싶나 보다.

보상받고 싶나 보다.

대우받고 싶나 보다.

보장받고 싶나 보다.




'넌 뭐가 이렇게 받고 싶은 게 많냐?'


Mr. Gray 또 등장해주신다.


'짜져라.

나 지금 상태 안 좋다~'



엄마가 되고서
내가 챙기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아니지.

챙기려 해도 좀처럼 얻어내기 어려운
내 안의 수많은 욕구를 만난다.


난감함을 가득 안고
내 마음을 본다.


그리고 인정한다.


그래.
나 중증이다!


아니까 다행이고
아니까 희망이 있다.


치료약은?
모르겠다.


백신은?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COVID 19보다

내 마음의 병이 더 시급한 문제인 것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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