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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Jul 19. 2021

집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곳

1.

한 학기가 지났다.


개운하고 후련하고 감사하다.


감사한 것이 많지만 특히 감사한 것이 있다.


바로 여기.


집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이곳.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아침마다 들려갔던 이곳.


누가 보면 두 집 살림,

불륜남이라도 숨겨놓은 듯 아침마다 서둘러 뻔질나게 찾아갔던 이곳.


직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OO로 17.










2.

직장에 여유 있게 도착할 것 같은 어느 날.

어딘가 차를 놓고

무작정 좀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이곳.


'아침 8시 15분쯤 여기서 딱지를 떼지 않겠지.

조명도 딱 내 취향이야.

재료도 목조건물에 화이트.

무심히 놔둔 화분 하나.'


사무실인 것도 같고

그런데 작은 주방도 있는

신비스럽고 오묘한 곳.


들어가지는 않는다.

이 플레이스주차하고서는

나는 몇 개월을


때론 멍하니 하늘을 보

매일 성경을 읽고

그 순간 내 마음을 챙겨보고

생각나는 이에게 톡을 하고

심호흡과 성의있게 하기도 하고

때론 분노의 일기를 쓰고

출출할 땐 바로 뒤 편의점에서 반숙란을 사서 쩝쩝대기도 하고

이 나이 돼서 남들은 안 먹는 것 같은

싸구려 달달구리 커피우유를 홀짝대기도 하고.


집 놔두고

사무실 놔두고

뭐하는건가 싶지만.


5분이라도 들리기만 하면.


마법처럼 삶에 '멈춤'이 일어나는 곳.


여기서 나는 엄마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교사도 아니고,

누구의 뭣도 아니고.



한 학기가 지나고 보니

이곳이 하루 힘의 원천이었구나.  


집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나의 힐링 플레이스.


비밀 친구.


고마워.


어느 누구보다.






집과 직장 사이.

힐링 플레이스로 봐 둔 곳이 몇 군데 더 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다.


질리면 가차 없이 다른 집 앞으로 가다.


주인조차 오지 않은 아침 8시 반.

어느 곳이든 내 독차지가 될 테니.

뭐가 문제인가.




옷보다 여기 있는 화분들이 좋다. @8:30a.m.





과장되게 화려한 꽃장식도 좋다. @ 8:30 a.m.






무심코 놔둔 듯한 데코가 무척 맘에 든다. @8.30 a.m.





안과 밖이 예쁜 꽃집.@ 8:3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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