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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Sep 03. 2021

열번째 날-스킨십(0903) 스킨십도 구조조정이 필요해

오늘의 나를 안아주세요 - 날마다 욕구 명상

스킨십은
꼭 대상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다쳤을 때 '호~'불어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나를 안아주세요 p56>



1.

'섹스'라는 단어가

인간에 의해 사정없이 오염된 것처럼

'스킨십'이라는 단어도 그러했나 보다.


그러한지도 모르고 이때까지 살았네.


위의 문장을 읽을 때까지

왜 나는 나 스스로가

스킨십의 상대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철저히 타자화되고 왜곡되고 수단화된 개념.


'스킨십'





2.

10대부터 결혼 후 얼마 동안까지

 남자들은 나와 스킨십하고 싶어 안달을 했던 것 같다.

(내가 특별히 예뻤다는 게 아니다.


내가 그때는 상당히 젊은 여자였고,

그들은 혈기왕성한 남자들이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며

스킨십의 대상이 '남자-> 아이'로 바뀌었다.


출산일부터.


요이땅! 하고.


예고 없이!

하루아침에!


(아.. 아줌마 친구들의 수없는 사전 예고가 있었지. 단지 그게 이 정도일 줄 까맣게 몰랐을 뿐)




2017년 7월 7일

OO산부인과 707호.



그날 이후

나는 남자와 나누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무자비'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시도 때도 없는'

아이의 스킨십 요구를 겪어냈다.


(똥 싸고 있는데 울고불고 기어 와서

할 수 없이 안고 싸고

내 생애 이런 굴욕적인 느낌은 처음


몸이 부서지게 아픈 날도

아빠 안되고 함미 안되고 엄마가 안아 재우라고 난리가 나면 이 악물고 업었다. )


2017년 어느날


그리고

서서히 육아 집중기를 벗어나고 있는 요즈음.



나는 이제 젊은 여자도 아니고

신혼도 아니고

갓난아이가 내 몸의 일부처럼 붙어있는 애엄마도 아니다.




그럼 내 스킨십은 어쩌지?



한물간 것인가....


딱.. 요런 생각을 할 때쯤이었다.







3.


그래서 이 문장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스킨십에 꼭 대상이 있지 않아도 된다니!?


누가 꼭 해주지 않아도 된다니?



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 날 이때까지 '스킨십'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어온 내 몸.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으로 사용해 온 '스킨십'이라는 도구를

이제야 진정 '욕구'로 대하면 되는 것이다.



내 몸 구석구석 여기저기

내가 만져주고 쓰다듬어주면

그게 스킨십이지 뭐야.



처량하다고?




처량할게 뭐 있어?



내 욕구를 충족시킬 방법이

타인에게만! 의존했을 때보다 더 다양해지는 건데?




'욕구 명상'의 핵심이 뭔데.


결핍된 욕구를 알아채고,

스스로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과 방법을 찾은 후에,

그리고 그것을 삶에서 구현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에게 부탁하면서

삶을 변화시키는 거잖아 (책, p44)





4.

그래서 나는 이번 주에 내 몸을 자주 쓰다듬었다.


어깨도 만져주고

팔도 주물러 주고

손도 서로 비벼주고

피곤한 눈도 눌러줬다.


스킨십 충만이었다.


그리고, 나와의 스킨십 못지 않게

가족과의 스킨십도 부지런을 떨었다.


퇴근하고 온 남편을 꼭 안아주고,

(코로나 때문에 요즘엔 화장실부터 직행하게 했지만,

어제는 오랜만에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자기 전에 우리 가족의 의식.

서로 뽀뽀해주기.


남편이 아이에게, 남편이 나에게, 내가 남편에게, 내가 아이에게, 아이가 나에게, 아이가 남편에게.

릴레이를 하며


"우린 한 명이 코로나 걸리면 끝장이야. 하하하" 웃으며 잠자리에 누웠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이런 순간들은

대게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을 수가 없다)





5.


"하나. 지금 느낌이 어때?"

나에게 묻는다.



"희망차!"




"뭐가?"



"한물가고 있는가.. 싶어서 쓸쓸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스킨십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날마다 욕구명상 메모



https://brunch.co.kr/@hisilver2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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