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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또 하나의 심장

EP5. 내보청기 착용해 볼래?

by 세아


사람들은 내 보청기를 보면, 괜히 말수가 줄어든다.

조용해지고, 조심스러워지고, 어딘가 숙연해진다.


어렸을 땐 그런 분위기가 참 싫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내 보청기를 유쾌하게 풍자하곤 했다.


친한 친구들에게는

보청기를 바꿀 때마다 직접 체험시켜 주기도 헸다.


“눈 좋은 내가 너희 안경을 쓰면 어지럽듯, 너희도 내 보청기를 끼면 커진 소리에 놀라지 않니? 너의 안경이 나에게 낯설듯 나의 보청기도 너에게 낯설 수 있어. 그저 다른 것일 뿐이야”


나는 그렇게,

나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려 노력해 왔던 것 같다.


그 결과일까,

지금은 23년을 함께한 친구들이

“보청기가 낯설지 않다”라고 말해준다.


요즘엔 이런 농담도 곧잘 한다.

내가 무슨 부탁을 듣지 않은 척하면

“야, 싫은 소리만 안 들리는 척하냐!”

그리고는 덧붙인다.

“근데 너 욕하는 건 기가 막히게 잘 듣더라?”


가끔 친구가 말을 잘 못 알아들을 땐

내가 먼저 말한다.

”야 내 보청기 줄까? “


이런 장난은, 그저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23년이란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이라 가능한 유쾌한 공감인 것이다.


최근 블루투스로 소리를 조절할 수 있는 귀걸이형 보청기로 바꾼 뒤 친구와 함께 드라이브를 한 적이 있다.

차 안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친구는 기분 좋게 볼륨을 한껏 높였다.


“너무 시끄럽다 좀 줄여!”라고 내가 말하자,


“네 보청기를 줄여!”라는 것이다.

그 말에 우리는 깔깔 웃었다.




낯선 사람들에게는 이런 방식이 일방적이면 곤란하다.

오히려 그들은 불편해하고, 당황스러워하기도 한다.


나의 심장, 보청기를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까지는

시간과 신뢰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그 다름을 웃음으로 나눌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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