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2008)

The Reader(2008)

by 안녕스폰지밥

'한나'는 희망 없는 삶을 사느니 죽음을 택한다.

이는 스티븐 달드리가 자신의 전작 ‘디 아워스’에서 로라의 입을 빌어 전했던 메시지인,

‘죽음 같은 현실보다 삶을 택했다.’와 연결된다.

구속된 자아를 일어나게 하고 스스로 묶인 곳을 풀어주는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결국 소외받은 이들의 사랑과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 이외에는 대치할 수 없던 인간의 소중함을 그만큼 절실하게 피워내며

그들의 안에 존재하는 희망, 자유,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d5298-26_pearce35.jpg?type=w2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말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마지막으로 마이클의 몸을 씻겨주고 그의 의문스러운 눈빛에도 할 수 있는 말들을 삼키고

그들은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눈다.

그렇게 한나는 썩은 내가 나기 전에 우유병을 씻어내듯, 마이클과의 사랑을 씻어낸다.

너무 사랑해서 변질되기 전에 내려놓는 것이 그녀에게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마이클은 한나가 떠난 빈 공간으로부터, 다시 건조하고 부자연스러운 가족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그녀와의 이별 후, 강물 속에서 수영하는 마이클을 통해

외로운 자유로움이, 그리고 강물이 주는 눈물과 슬픔, 죽음의 이미지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스티븐 달드리가 ‘디 아워스’라는 영화에서 죽음의 이미지로 차용했던 물이 주는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TheHours_로라.PNG 디 아워스(The Hours.2003)


직업 소명에 대한 그릇된 신념과 무지함으로 결국 나치에 동조하여

유태인의 죽음에 책임을 지게 된 한나는 감옥생활을 하게 되고

이런 한나의 상황을 오랜 세월이 흘러 알게 된 마이클은 그녀가 그에게서 부재했던 시간 속의 공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걷게 된다.

죽음과 슬픔이 묻어나는 이 어두운 공간을 걷는 마이클의 마음만은, 결국 한나와 하나의 시공간상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한나를 직접 만나러 감옥으로 향하게 된다.

이별 후 밟아 온 고통과 상흔의 시간을 지나온 두 사람의 사이에 그녀를 처음 만나던 날 차가운 비와 고열,

구토에 시달렸던 것처럼, 스산한 날씨 속 눈발이 흩날리고 있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 면회를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마이클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치명적으로 그녀에게 빠졌던 첫날의 기억이, 오랜만의 재회를 코앞에 두고 오마쥬 되었던 게 아닐까.

다시 상처가 시작될까 봐 두려워하는 그의 마음이 보였다.


d5298-15_pearce35.jpg?type=w2


한나에게 한창 사랑을 담아 책을 읽어 주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는 마이클은

다시 예전의 책들을 꺼내어 녹음을 시작한다.

덕분에 무기징역으로 복역 중인 한나는 죽음 직전,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으로 회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낭독 테이프를 보내주는 마이클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기 위해 스스로 글을 깨우치기

시작한다.


d5298-30_pearce35.jpg?type=w2


살갗을 대고 가장 은밀한 사랑으로 책을 읽어 주던 시절은 아니지만,

서로가 분리된 공간에서 과거 육체적으로 가장 뜨겁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현재의 낭독은,

깊이 있게 두 사람을 묶어준다.

지금의 절실함이, 죽음과 맞닿은 절실함이

한나가 마이클과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내려놓던 과거에도 있었다면…

한나와 마이클은 이루어지진 못했더라도, 그녀에게 닥친 불행은 그 정도를 감안할 수 있는 것이었을 텐데.

어쩌면 그러한 마이클의 한나를 향한 사랑이, 어른이 되어가는 마이클의 미래에는 부재할 수밖에 없다는

예감이 그녀의 영혼을 흔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의 현실적 불행의 무게는 감안할 필요를 못 느끼게 했던 거 같다.


그저 마이클이 자신의 순수했던 시절을 뜨겁게 달구어 피워낸 사랑에 이제는 더 이상 후회가 없길

기도해 본다.

d5298-02_pearce35.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