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엽서6부

by 문객

기억의 고착화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망각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기억은 우리에게 추억이란 소중한 선물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아픔이란 절망적 상황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린 기억 속에도 ‘삭제하기’의 기능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싶은 기억들은 모두 다 지우고 새롭게 사람과 풍경을 마주 보며 살아가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기억 속엔 ‘삭제하기’의 기능보다 ‘복사하여 붙여놓기’의 기능이 더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안 좋은 기억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무거운 짐이 되어버립니다.


기억의 고착화 현상, 이 현상은 관계의 단절을 초래하고 사람과 풍경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시킵니다. 좋은 말, 좋은 마음, 좋은 풍경 등이 마음에 울림을 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할 수 있는 한 우린 이런 잘못된 기억의 고착화 현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그 노력의 첫 시작이자 마지막 완성은 기억의 고착화 현상을 일으킨 사람, 풍경 등과 더 자주 지속적으로 만나서 잘못된 기억의 풍경을 지워나가야만 합니다.


일반적으로 안 좋은 기억은 그곳으로부터 사람을 멀어지게 만드는데, 이러한 멀어짐이 지속 되면 더욱더 기억의 고착화는 심해지게 됩니다. 따라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빨리, 그리고 자주자주 그 풍경과 만남 속으로 달려가야만 합니다. 그러다 보면 알게 됩니다. 그 사람도 당신을 그리워하며 당신에게 다가오고 싶었다는 사실을.




반항의 힘


‘예’라는 말에너무 귀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순종 형 인간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니 당신의 마음이 맞지 않거나 옳지 않은 것이면 ‘아니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십시오.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예’라는 말보다는‘아니요’라는 말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의 존재를 온전하게 감싸 안아 줄 수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당장 아닌 것은 ‘아니요’라고 소리쳐 보십시오. 주변 사람들이 처음에는 당황하겠지만 그런 당황의 시작이 바로 당신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니 계속 소리쳐 ‘아니요’라고 말하십시오. 그럼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만의 개성과 가치를 지닌 소중한 한 사람이었음을.




뒷골목 정의론


왈처의 복합평등론처럼 돈을 가진 사람은 돈만 가지고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만 가지고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재능만 가지면정말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은 그렇게 무지갯빛처럼 차례로 배열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검은 회색빛이어서 하나를 가지면다른 것도 다 가지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돈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갖고 싶어 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은 또 다른 그 무엇을 원하며 계속 욕망의 바다를 항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린 늘 정의에 목마르면서도 정의로운 세상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유의 의무


한나 아렌트는 말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이다.”


또 그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당신은 근면과 성실이란 미명 아래 사유의 의무를 내버려 두고있는 것은 아닌가?”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그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으며 인간적인 선택이었다고 잘못된 행동 앞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모면하고자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옳지 않은 선택으로 누군가는 옳지 않은 이득을 봤으며 누군가는 억울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유의 의무’


한 번 정도는 옳지 않은 것에 당당하게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중심의 부재


중심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내 안에, 집안에, 지역사회에, 국가에 큰 어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치는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수많은 가치가 제각각 날개를 달고 옳음을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안아 줄 큰 가치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내 안의 분열, 집 안의 분열, 지역사회의 분열, 국가의 분열은 큰 가치의 부재로부터 시작됩니다.


큰 가치가 없다는 것은 곧 함께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큰 가치가 없다는 것은 굳이 너의 도움이 없어도 나는 잘살 수 있다는 이기주의, 원자화된 개인이 삶의 정답처럼 표류한다는 것입니다. 큰 가치를 찾아야만 합니다. 당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당신과 내가 보다 큰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런 큰 가치가 있어야만 당신의 눈물과 내 눈물이 보다 큰 강물이 되어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희망의 날개


꿈꾸던 것이 이루어진 순간보다꿈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순간순간이더 값지고 설레는 이유는꿈꾸는 순간이 바로 우리 삶의 가장 큰행복의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꿈꾸는 사람의 눈빛엔 생기가 돋아납니다.그리고 꿈꾸는 사람의 발걸음에는열정이 살아 꿈틀거립니다.꿈은 결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순간순간의 삶을 더 빛나기 위해우리 곁에 있는 것입니다.꿈꾸는 순간당신의 가슴은 첫사랑의 여인을 만난 것처럼부픈 사연들로 가득할 것이며힘없는 발걸음엔 새로운 생기가 돋아날 것입니다.




기다림의 미학


어려서 어머님은 늘 사람은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욱 소중한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참고 기다리면서 자신의 가치를 더욱더 드높여야만 큰 선물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참고 또 참았습니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기 위해하루의 자유를 참았고 자전거 하나를 얻기 위해 1년을 참았고 통기타 하나를 얻기 위해 2년을 참았으며 내 방 한 칸을 얻기 위해서 5년을 참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차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10년을 참았습니다.


참다 보니 참는 것이 습관이 되어모든 것은 기다림 뒤에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참지 말라고 합니다. 참지 말고 네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바로바로 모든 것을 행하라고 합니다. 어른도 아이도 기다리거나 머무를 줄 모른 채 그냥 생각대로 돌진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 각자의 목적과 방향만 중요할 뿐 다른 무엇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돌진하는 나만 있을 뿐 너와 빈 여백이 없습니다. 기다림의 선물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빈 곳의 여백이.




상처의 몸부림


“레쉬니한 증후군은 몸에 자극이 와도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질병이다.이 질병의 환자 중에서 어떤 이는 손가락 마디가점점 사라진다. 손가락을 깨물어도 아프지 않으니자꾸 물어뜯다가 손마디가 뭉개지는 것이다.이로 입술을 뜯다가 입술 일부분이 잘려나가기도 한다.통증에 대한 자각이 없어 대개 스무 살 이상 살지 못한다고 하니얼마나 무서운 병인가. 통증이란 센서다.”- 김형철의 ‘철학의 힘’에서 인용함.


이 세상 상처 없는 삶은 없습니다.상처는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우리 삶을온전하게 엮어나가기 위한 센서일지도 모릅니다.만약 그 센서가 작동하지 못하면우리 삶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지도 모릅니다.살아간다는 것은 상처의 연속입니다.그리고 그 상처는 내 삶을 지키기 위한최소한의 반응이니 상처 앞에 절망하지 마시고더 큰 희망의 눈빛으로상처를 보듬어 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그 상처는 당신을 지키기 위한마지막 몸부림일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빚은 빛이다


“빚도 오래 두고 갚다 보면 빛이 된다는 걸,우리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는 건빚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걸, 너는 알겠지.사과가 되지 못한 꽃사과야.”- 나희덕 시인의 ‘빚은 빛이다’에서 인용함.


누군가는 말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대출통장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또 누군가는 말합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빚을 줄이는 것이라고.”


결혼과 시작된 빚의 그늘,그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루하루 돈과의 사투 속에서살아온 날들이 눈앞에 선하게 다가옵니다.그러나 되돌아 생각해 보면그 빚이 있었기에 그토록 간절하게 새로운 빛을 꿈꾸며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그러니 너무 빚 때문에 슬퍼하지 말고‘빚이 빛이 되는 순간’을 기약하며힘을 내어 봅니다.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그냥 쉬고자 합니다.그리고 아내나 아이들이 그렇게 쉴 수 있는공간을 만들어 주기만을 바랍니다.만약 그렇지 않고집안이 어수선하거나 아내와 아이들이자꾸 떠들 때면 괜한 짜증이 납니다.


그러나 최인호 작가는 말합니다. 가정이 어떻게 도서관이 될 수 있겠습니까? 가정은 또한 휴게실도 아니에요.직장에서 귀가한 남편이 ‘집까지 왜 이렇게 시끄러워?’하고화를 낸다면그는 휴게실로 가는 편이 나을 겁니다.짐승들이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듯이 가정은 서로의온갖 상처와 불만을 치유해 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밖에서 진을 다 빼고 집에 가서는그냥 쉬기만을 바라는 것은 집을 단순히휴게실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집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가슴을 내비치며가장 따뜻한 숨결로 하나가 되는 공간입니다. 그 공간을 위해 밖에서보다 더 헌신적인 마음으로다가가야만 하는 것입니다.그래야만 그 힘으로 또다시 밖에 나가사랑의 불길을 활활 피울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집에 가시거든 오늘 하루만이라도직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던 그 열정으로 온 힘을 다해아내와 아이들을 안아주셨으면 합니다.




말의 나라


수업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은‘말을 잘해야 성공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만 잘하고 행동은 엉망인 아이를 볼 때면 차라리 ‘침묵하라’라고 소리치고 싶습니다.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는 그런 달콤한 말만 할 거면 차라리 조용히 입 다물고 내 안의 너를 성찰하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요즈음처럼 뛰어난 언변가가 대접받는 세상 속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가진 능력의 부족함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참 많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에서 뛰어난 언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스피치 학원에는 하루가 다르게 많은 사람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대학을 가기 위해 면접을 준비하면서 수많은 시간을 영혼 없는 답변을 준비하는데 소비하고 있습니다.


말의 나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말의 잔치를 배워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영혼과 실천이 상실된 말의 나라에는 말의 유희가 사람의 정신마저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 말, 말

갑자기 ‘말보다는 침묵’을 강조하시던 어머니의 가르침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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