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무야. 이유를 불문하고 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어. 그분은 어려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학자로서의 양심적 소신을 지키기 위해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오신 분이자, 지성인들에겐 등불 같은 분이야. 누군지 알아? 이제는 고인이 되신 신영복 선생님이야.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너를 아끼며 네가 보여준 삶의 모습을 동경하며 살다가셨어. 선생님이 쓰신 글 중 너의 모습을 한번 찾아볼게.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더욱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습니다. 두려워 할 것 없어. 우리들이 자루가 되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니."
"우리가 생각 없이 잘라내고 있는 것이 어찌 소나무만이겠습니까. 없어도 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된 것들을 마구 잘라내고 있는가 하면 아예 사람을 잘라내는 일마저 서슴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말처럼 소나무는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풍상을 겪어온 혈육 같은 나무입니다."
"당신이 나무를 사랑한다면 솔방울도 사랑해야 합니다. 무수한 솔방울들의 저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처럼 선생님은 너를 통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말하기도 하고, 물질문명이 가져다주는 척박한 삶의 풍경을 비판하기도 하셨어. 그러면서 늘 더불어 함께 멋진 숲이 되자고 하셨지. 선생님의 이런 가르침은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이정표가 되어 스스로를 반성하는 지침이 되기도 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한 목표가 되기도 해. 특히 오늘날처럼 진심으로 누군가를 존경하기 어려운 시대 속에서 선생님이 보여준 가르침과 지식인으로서의 길은 더없이 그리운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
나무야, 너는 한 해 한 해를 살아가면서 네 삶의 성장 부분을 둥근 나이테로 표시하며 살아가지. 그런데 자세히 그 선을 들여다보면 신영복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나이테의 굵기가 서로 다름을 알 수가 있어. 그건 아마도 내가 한 해 한 해를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졌겠지. 때때로 가혹한 환경이 그 선을 굵게 만들었을 수도 있고, 좀 더 유연한 환경이 그 선의 굵기를 비교적 가냘프게 만들었을 거야. 그러고 보면 너에게도 우리의 삶처럼 굴곡이 있는 것 같아. 그렇지?
나무야, 너를 정말로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가끔 네가 모여있는 숲 속에서 너를 안고 눈을 감은 채 한참을 머물러 있곤 해. 너에게도 사람과 같은 호흡의 숨결이 있어서 그 숨결과 함께 호흡을 맞추어 숨을 쉬다 보면 마음이 더없이 평온해진다고 해. 숲 치료 상담 선생님들께서는 너에겐 인간의 면역 기능을 강화시키는 아주 좋은 성분이 가득해 종종 너를 품에 안고 빈 마음으로 네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매우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셔. 그래서 가끔 나도 사람들을 따라 네 몸에 살짝 기대어 너의 체온을 느껴보곤 하지. 그럴 때마다 너는 온몸으로 내 몸을 감싸 안으며 뿌리에서부터 저 먼 줄기 끝까지 흐르던 숨결을 몸 곳곳에 전해주지. 그런 너의 모습은 꼭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든든한 형님의 품 안 같기도 해.
나무야, 수많은 네 친구들 중에 나는 수양버들을 가장 좋아해. 특히 바람 부는 날 호수 옆에 있는 오래된 수양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은 더없이 행복해져. 수양버들의 모습은 정신없이 흔들리면서도 작은 잎새마다 일정한 박자를 가진 채 조화롭게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 같기도 하고, 내 온몸을 타고 흐르는 생명의 기운 같기도 해. 그리고 수양버들은 무더운 날 잎새와 잎새 사이의 공간이 넓어 별다른 그늘을 선물해 주지 못할 것 같으면서도 그 아래에 앉아 가만히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잔잔한 바람과 함께 더없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곤 해.
나무야, 요즘에 너는 장례문화가 바뀌면서 죽은 이의 영혼을 네 아래 묻기도 하지. 그러면서 형체를 잃어버린 존재의 모습을 네가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억하며 살아가곤 해. 그럴 때 너는 정말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존재가 되어 누군가에겐 더없이 소중한 기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겐 더없이 슬픈 사연의 주인공이 되기도 해. 죽은 이의 영혼을 묻고 그 이후 네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되어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위로의 몸짓을 선물해 주기도 하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 같아.
나무야, 나무야,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인 중 한 분인 신영복 선생님이 너를 그토록 동경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를 이제 나도 조금은 알 것 같아. 너는 늘 고요하고 침묵하지만 그 묵묵한 몸짓으로 사람들에게 가야 할 길의 의미에 대해 강직하게 곧은 가르침을 전해주는 것 같아. 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같은 자리에서 너를 기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뿌리에서부터 저 높은 줄기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모습과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음을 선물해 주는 고마운 친구야.
나무야, 내일은 네 친구들이 모여있는 숲 속을 가보고 싶어. 숲에 가 가만히 네가 전하는 숨결을 느끼며 나도 너처럼 누군가에게 곧고 강직한 모습으로 긴 세월의 이정표가 되기를 다짐해 보고 싶어. 나무야, 내일 만나러 가면 반갑게 맞이해 줄 거지?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