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쓴이 May 09. 2022

재활용하면 안 되는 것

아들과의 대화록


2021년 12월, 강한 바람이 불어오던 겨울날이었다.



아내의 외할머니께서 소천하셔서 아내는 급하게 채비하여 아이를 차에 태운 뒤 장례식장으로 출발하였고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 원서 업무를 마무리한 뒤 기차로 뒤따랐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른 43개월 아들은 간만에 사람 없는 곳에서 뛰는 것이 즐거운지 마냥 해맑았다고 한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처음 느낄 아들과 조카들이 걱정스러웠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큰 조카는 왕할머니께 편지를 쓰고 왕할머니를 위한 노래를 불렀으며 아들은 이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다고 한다.



아이가 계속 상청에서 춤을 추는 상황에서 아내는 아이를 타일렀다고 한다.



- 아들, 여기는 왕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는 곳이니 그만 내려오자.



- 응? 그래서 춤을 주는 거예요~ 누나가 노래를 부르니까 나는 왕함미한테 춤을 추는 거죠~ 왕함미는 내가 추는 춤 좋아하실걸?



그 이야기에 아내는 허망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지닌 마음은 어른들이 만든 정성과 형식을 초월하곤 하는 것 같다.



뒤늦게 도착한 나는 인사를 올리고 아이들을 챙겼다.



장례식장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조금 지쳐있을 무렵, 아이들이 뛰고 소리를 지르자 나는 평소답지 않게 화가 크게 올라와서 아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했다.



- 아들, 아들이 너무 아빠 이야기를 안 들어줘서 아빠가 화가 나. 속상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 여기에서 자꾸 뛰면 다칠 수도 있고 위험하다고 했잖아.



- 나도 화가 나요. 아빠가 이상하게 자꾸만 화를 내서요.


아차 싶었다. 내 예민한 감정 모서리가 튀어나와서 아이를 찔렀나 싶었다.



순간 머쓱하고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 아빠가 무섭게 이야기해서 미안해. 아빠는 아들이 걱정되는 마음이었는데 그게 화로 나와서 미안해. 음... 아들, 우리 화를 버리러 갈래?



- 좋아요! 화를 버려요 우리



- 그런데.. 화는 어디에 버리면 좋을까?



- 아빠, 화는 일반쓰레기통에 버려야 해요.



- 왜 일반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거야?



- 화는 절대 재활용하면 안 되니까 그렇지!



갑자기 마음이 일렁이며 눈물이 그렁거렸다. 아이가 아는 진리를 나는 또 몰랐구나. 나는 아이를 꼭 안고 함께 쓰레기통 앞으로 갔다.



하나 둘 셋을 외치고 서로의 가슴에서 무엇인가를 떼는 모습을 하며 화를 던졌다. 그리곤 잠시 장례식장 밖으로 나와서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산책을 하였다.



- 아빠! 나오니까 시원하고 좋네요!



아이 입장에서는 분명 갑갑했을 상황, 울지 않고 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인데.. 고작 네 살짜리 아이인데, 나는 얄팍한 어른의 눈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했나.



밀려드는 밤공기는 불그스름했던 마음을 다독이며 부끄러움을 남기고 나갔다.



, 나는 앞으로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될꼬




이전 06화 ‘화’와의 거리두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